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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Oct 05. 2024

누수 그리고 그 뒷 이야기

누수 사건이 벌어진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오늘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아랫집 사모님께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누수 이후 최소한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젖었던 콘크리트가 바싹 마르면 도배를 해야 한다고 누수업자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도배를 하실 때가 되셨다고 생각하셔서 전화를 하셨을 게다.    

           

먼저 벽지업체 사장님께 전화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벽지 아래 나무 판넬을 뜯어보아야 콘크리트가 잘 말랐는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시공 날짜는 내가 아랫집 사모님과 의논 후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다. 자신들이 섣불리 날짜를 잡았다가 다시 작업을 하게 되면 그 책임을 지기가 곤란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곧이어 누수업체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다시금 두 달 정도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콘크리트를 말린 후에 도배를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집 근처에 가서 아랫집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근처인데 10분 후에 방문 드려도 될지 여쭈었다. 사모님은 전화로 의논하면 되는데 하는 뉘앙스였다. 그리고 빨리 도배 작업을 마쳤으면 하셨다. 벌써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다. 통화를 하는 동안 우리 동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 엊그제 사둔 두 팩의 키위 중 한 팩을 사뿐히 들었다. 그리고 아랫집 초인종을 조심스레 살포시 눌러보았다. 사모님께서 나오셨고 웬 과일까지 들고 왔냐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천장의 누수 부분에 떼어둔 도배를 살핀 후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마침 남편분도 계셔서 한꺼번에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 허리를 80도까지 정중히 숙여 인사를 드렸다. (몸이 뻣뻣한 나에게 맥시멈 각도인 듯 하다.)               

남편분도 아니라고 하시며 한층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얼른 핸드폰 달력 앱을 열어서 5월 3일에 누수가 되었으니 7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날짜를 잡으면 어떻겠냐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딸이 7월 달에 놀러 와서 한동안 지낼 예정이니 그때 상황 봐서 셋째 주에 하던지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농사지은 거라며 갓 딴 싱싱한 오이 두개를 꺼내주셨다. 자그마한 텃밭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키워내신 농작물인데 나에게 건네시는 걸까 싶어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누수로 골머리를 앓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그러고 있을게 아니라~"     

뾰족한 수라도 있나 싶어 반색하며 내가 되물었다.      

"응~ 그러고 있을게 아니라 뭐?"               

"과일이라도 들고 죄송하다고 찾아가보는게 어때?"     

"..."               


누수 때문에 보일러 수리에 배관 공사까지 게다가 앞으로 있을 천장 판넬교체와 도배까지 하면 적어도 150-200만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될터인데 이 남자는 참으로 관대하고도 여유롭다. 내가 일부러 누수를 한것도 아니고 나도 어찌보면 억울한데 말이다.  

             

하지만 남편의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남았던가 보다. 평소 사람 대하는 방식이 부드럽고 관계를 잘 다루는 남편 말대로 했을 뿐인데, 일순간 양쪽의 날선 관계가 상당히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복잡 다단한 관계 속에서 살면서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누수라는 풍파(?!) 속에서도 여전히 좋은 이웃을 잃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덧. 지난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지루하고 길기만 했던 누수 사건(?)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보험사에 처음부터 누수 사고 신고를 안 한 탓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하는건지 무려 실사까지 나오셨지만 수리해야 할 것들을 잘 고쳤고 보험 처리도 나름대로 잘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여요. (생각보다 비용은 더 들었어요~ㅜㅜ) 다음부터 누수가 생긴다면 보험사에 사고 신고부터 하고 사고 전후 사진을 잘 찍어두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업자들도 놓치는 사진이 있어서 사진이 없으면 보험 처리가 어렵더라구요)


퇴고 작업을 미루고 미루느라 이 이야기의 발행이 늦어졌네요. 건강을 돌보느라 그랬기도 하구요. 다시금 브런치 작가로서의 활동을 조금씩 재개해 보고자 다짐해보는 요즘입니다. 모두들 건강 유의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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