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순례길과 다시 떠나는 다섯 번째
‘인사하다’를 사전을 통해서 찾아보면 여러 뜻의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의 인사하다는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하는 행위라고 적혀있다. 우리나라 말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의 뜻에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듯이 우리가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는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례길에서도 하루 종일 듣게 되는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말이 있다.
부엔 까미노는 스페인어의 부엔 [buen : 좋은]과 까미노 [camino : 길]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로 직역하면 좋은 길이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오늘 하루 행복하고 즐겁게 좋은 순례길을 맞이하면서 걸어가라는 순례자들만의 특별한 인사말이다. 물론 반드시 순례자끼리만 나누는 인사말은 아니다.
스페인 현지인들도 길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에게 건네주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기도 한다.
스페인의 9월은 아직 한 여름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한 채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뜨거움을 선사하고 구름 한 점 없고 비도 오지 않아서 내가 한 발씩 내 디딜 때마다 작은 흙먼지가 일 정도로 건조했다.
곧 쓰러질 것처럼 더워 주저앉고 싶었으나 아직은 가야 할 거리가 많고 목마름으로 수없이 물을 마셔보아도 갈증은 쉬이 없어지지 않아서 걷는 내내 속으로 생전 하지도 않던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순례길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환상에 젖어 무턱대고 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남편에게 탓하지도 못하고 애꿎은 다른 순례자들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짜증이라고 했지만 특별히 어떤 말을 하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수없이 나를 앞지르며 걷는 순례자들이 건네는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어느 순간부터 답인사를 하지 않고 마치 나는 지금 너무 화가 나서 인사를 해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만 보면서 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사를 해야 되는 것조차 너무 귀찮고 하기가 싫어졌다.
걸으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세계 곳곳에서 온 순례자들의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말에 대꾸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자꾸 인사를 하는 거야? 쟤네들은 힘들지도 않나? 그냥 조용히 걷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 쟤네들이 하는 인사 다 받아주다간 걷다가 더 지칠 것 같아. ”
평소에 자주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편이 아니고 게다가 내가 원해서 걷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계속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점심때쯤 도착한 마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겸 점심과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숨 고르기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잠깐의 휴식으로 인해 에너지가 보충된 탓인지 마음도 한층 누그러져 있었고 힘들 땐 보이지 않던 주변의 가을 풍경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마음에 괜히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이후 여전히 걷는 내내 다른 순례자들로부터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받았다.
한참 걷다가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내가 먼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늘 먼저 부엔 까미노라는 말이 들려오면 답례처럼 나도 그제야 인사를 건넸을 뿐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순례자가 있으면 나도 따로 인사를 하지 않고 걸었다.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때로는 그렇게 인사 없이 지나쳐줄 때 살짝 고맙기도 했었다.
그러나 인사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일까 싶지만 그 길을 걸어보면 알게 된다.
인사가 주는 에너지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힘들지만 같은 길을 걷는 동지에게 건네는 응원의 마음을 그들은 말로써 표현했던 것이다. 그걸 깨닫기 전까지는 나는 그저 인사는 귀찮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들 그냥 묵묵히 길을 걸어가고 싶을 텐데 각자 체력적으로 힘든 걸 참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마음에서 고마움이 느껴져 낙오하지 않고 오늘 도착해야 하는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내는 것이다.
나는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인사를 먼저 받고 그제야 나도 인사를 건네면서 걸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앞으로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닌데 더 이상 투정보다는 이 길을 즐기면서 같은 길을 걷는 동지들에게 나도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순례자가 되어야 이 길을 걷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즐김의 시작은 부엔 까미노라고 힘차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다.
기분 좋은 인사로 아침을 시작하면 그날 하루가 행복하듯이 까미노에서 건네는 부엔 까미노는 어쩌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