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편이 살던 1.5룸 자취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주말부부였기에 집이 작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곧 아기가 생겼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는 아기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이사를 가야 했다. 내가 바라던 이사 갈 집의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지금 사는 집보다 넓고 저층인 집.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남편이 몇 군데 집을 알아봤고 급하게 이사 갈 집을 정했다. 낡은 빌라였지만 원하던 대로 방이 세 개였고 2층이었다. 이 동네에서 이 가격에 이런 조건의 집이 나오는 건 드물었다. 예산도 적었기에 지체 없이 계약했다. 하지만 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집은 어두웠고 하수구 냄새가 났다. 매트리스를 치우면 바퀴벌레가 나타났고 벗어놓은 옷을 들추면 좀 벌레가 기어 다녔다. 모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나타났는데 하루에 30마리씩 모기를 잡았다. 모기장 안에서 아기와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방 안 곳곳에 붙어있는 모기들을 잡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방문을 다 닫고 자도 모기는 항상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집이었다. 새시도 오래되어 아무리 난방을 해도 추웠다. 방충망도 다 찢어져서 오래된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천장에는 물이 새는 건지 물 자국이 있었고 당연히 곰팡이도 생겼다.
집이 어두워 전등을 바꿔 끼워도 집 자체가 전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오래된 장판은 아무리 닦아도 여전히 더러워 청소 의지가 상실됐다. 시트지도 사서 붙여봤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5층보다는 나은 2층이지만, 아기를 든 채로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큰 문제는 집을 떠날 때 생겼다.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남편이 이직을 하게 되어 이사를 가야 했는데 전세금을 받을 수 없었다. 다음 세입자가 없어서였다. 계약이 끝나면 다음 세입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당연히 전세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순진한 내 생각일 뿐이었다. 집주인 할머니는 돈이 한 푼도 없다며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에는 절대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내가 여기저기 부동산에 다니며 집을 내놓고 돈을 받기 위해 종종 거려야 했다. 은행 대출도 기한 연장을 해야 했고 법무사와 상담을 해서 내용 증명도 써야 했다.
남편의 출퇴근이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지 못한 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전세금을 받지 못하면 우리의 전 재산은 물론이고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과 친정 부모님이 빌려주신 큰돈이 사라진다. 법적인 조치를 완벽히 하고 온 게 아니었기에 집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돈을 안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잘 지내다가도 전세금만 생각하면 답답함이 밀려오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기적처럼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게 되었고 계약 종료 기간이 세 달 가까이 지나 전세금을 받게 되었다. 아직도 전세금을 돌려받은 날의 기쁨과 감동을 잊지 못한다. 우리가 살지 않고 있을 때의 각종 공과금과 필요 없는 은행 대출 이자도 고스란히 부담했기에 금전적인 손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세금을 받을 수 있어 기뻤다.
집은 나의 민낯을 들춰주었다. 집이 내 인생의 결과인 양 스스로 위축이 됐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아이를 재우는 캄캄한 방에서 매일 밤 후회를 곱씹었다. 집값이 비싼 서울이 싫었다. 목사는 월급도 적고 대출도 다른 사람의 1/4밖에 안되는데 사택을 주지 않는 교회를 원망했다. 모은 돈 하나 없이 결혼한 남편이 한심했고 도움을 주지 않는 시부모님을 남몰래 미워했다. 돈에 초월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전세금 때문에 잠 못 자는 나날이었다.
그래서 집이 고맙다. 집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아이를 키울 땐 고생스러워 그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당시에는 몰랐지만 힘들었던 그 시간은 나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집이 감사하다. 현재는 우리 형편으로는 구하기 힘든 작고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1년 전의 나는 삶이 힘들어 많이 종종거렸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감사해지는 지금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