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설레는 시간
남편은 월요일에 쉰다. 보통의 월요일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시작한다. 처음에는 쉬는 날인데 아이를 보내는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남편과 나에게도 쉼이 필요하기에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아이를 등원시킨다. 짧은 휴식이 지나면 곧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아이가 하원을 하면 어디라도 간다. 아이가 버스를 타자고 하면 버스를 타고, 동물을 보러 가자고 하면 가까운 어린이대공원에 간다. 시장 구경을 가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한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밤이 찾아온다. 이때부터 나는 살짝 설렌다.
화요일 아침이 되면 간단히 배를 채우고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아이와 다정하게 인사한 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부터 내 시간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재빠르게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널브러진 장난감과 책들을 치우고 식탁 위를 비운다. 청소포로 바닥을 밀고 정돈된 집을 바라본다. 어차피 아이가 돌아오면 곧 어질러진다. 그래도 정리를 해야 마음 편히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는다. 분주함이 떠난 고요한 자리에서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늘 하던 대로 성경을 조금 읽고 짧은 묵상을 한다. 배가 고프면 간단한 간식을 먹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린다. 곧 점심을 먹으러 남편이 오기에 이 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존재하던 시간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짧아서 아쉽고 짧아서 소중하다.
엄마는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외벌이라 생활비를 아끼려고 뭐든지 만들어 먹였다. 삼시 세끼를 갓 지은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봄이면 나물을 주워 하나하나 전부 다듬었다. 산에서 얻은 도토리를 방앗간에 맡겨 가루를 만들어 직접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외출하고 돌아와 모두 쉴 때도 엄마는 쉬지 못했다. 곧장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했다. 엄마는 항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런 엄마가 유일하게 사수하는 시간은 오후 4시였다. 4시만 되면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기도를 했다. 그 시간에는 방문을 두드려서도 안 됐고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있어서 엄마가 고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아이는 예민해서 잠을 깊게 못 잔다. 세 돌이 지난 지금도 밤에 한두 번씩 깨서 나를 찾는다. 덕분에 아이를 낳고 한 번도 아이와 떨어져서 잔 적이 없다. 친정도 시댁도 멀어서 맡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호기롭게 아이를 데리고 주무시겠다고 했지만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셨다. 아이는 굳이 내 베개를 같이 베고 내 옆에 몸을 찰싹 붙여서 잔다. 나는 밤마다 몇 번씩 내 옆에 붙은 아이를 떼어낸다. 아이는 밤에도 엄마를 놔주지 않는다.
이런 아이가 부담스러웠다. 거리를 두는 게 편한 나와는 달리 아이는 무엇이든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럴수록 나는 내 시간을 사수한다. 고요한 시간은 지친 나를 회복시킨다. 이 시간에 집안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나를 충전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마냥 누워서 쉬기도 한다. 짧고 달콤한 혼자만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엄마와 아내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화요일 오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