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인사 드립니다.
홈런 못 쳐도 괜찮습니다. 대박 안나도 괜찮습니다.
글은 자주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다가 한 번 쓰는 글은 부담스럽습니다. 자주 쓰는 글이 아니기에 잘 써야 합니다. 매번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이왕 쓰는 거 대박이 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글에 힘이 들어가서 글을 쓰기가 더 부담스러워집니다. 잘 써야 되고, 멋진 문장을 뽑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검열관 녀석이 활보하기 딱 좋은 상황이 됩니다. 검열관은 늘 이렇게 속삭입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더 잘 써야 하지 않겠어?’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에 다 못 쓰면 다음에 또 쓰면 된다.’
‘홈런 못 쳐도 된다.’
‘내일 쓸 것도 남겨놔야 한다.’
자주 쓰는 글에서 홈런도 나오고 대박도 나옵니다. 어쩌다 한 번 글 쓰는 사람은 잠깐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자주 쓰는 사람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한 번 한 번에 더 많은 힘을 싣게 됩니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글을 써 보면 머릿속이 뒤엉켜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떤 소재를 하나 꺼내려고 해도 다 같이 엉켜 있어서 하나를 꺼내려면 다 같이 덩어리가 되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자주 글을 썼다면 훨씬 더 정돈된 형태로 꺼낼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죠.
자주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더 좋은 상태에서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고, ‘쓸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로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퇴근 후 회사 일로 신경을 잔뜩 쓰고 난 후에 집에 오면, 글을 쓰는 일이 꽤 어렵습니다. 생각의 전환을 빨리 이루어내기도 어렵고, 괜찮은 소재를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잠시 씨름하고 나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책만 몇 자 읽다가 하루를 맺곤 합니다.
또 뭔가 쓸만한 것이 없나 자꾸 찾게 되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좋은 글쓰기 소재가 되겠지만, 특별한 일만 일어나는 일상은 없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는 특별한 일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일상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이 들면 글로 쓰기가 힘들고, 쓰지 않은 일상은 더더욱 비슷한 모양이 되어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서로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한동안 일기만 썼습니다. 발행하는 글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지만 일기는 그래도 부담이 덜하니까 괜찮았습니다. 잘 쓰려고 할 것도 없고, 쓸만한 것을 찾으려 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열흘도 더 지나서 글을 발행하려고 보니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글들이 뒤죽박죽 엉켜 글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글은 자주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습니다.
피곤해서, 더 잘 쓰고 싶어서 쓰지 않으면 이 작은 욕심은 점점 더 커져서 좋은 상태가 되었을 때도 글을 쓸 수 없게 만듭니다. 더 나은 글, 더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지금 쓸 수 있는 만큼 쓴다는 생각으로 써야 합니다. 나는 결정적 순간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아닙니다. 그저 매일 꾸준히 훈련하는 모양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야속하게도 ‘더 잘 못써도 괜찮으니 쓰겠다.’고 하는 다짐 위에 조금씩 채워져 갑니다. 생각만큼 글이 쓰이지 않아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좀 덜 쓰면 어떻습니까? 내일 또 쓴다고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쓸만한 일상만 글로 써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글로 쓰는 순간 평범해 보이는 같은 일상도 저마다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써 왔습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뭐가 그리 다를 수 있나 싶지만 지난 1년의 기록을 뒤적여 보면 단 하루도 똑같은 모양의 하루는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 일상이라 불리는 하루에 색깔을 부여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특별하기 때문에 글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 썼기 때문에 특별해집니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지금이라도 오늘을 글로 써 보십시오. 분명 지난날과 별반 차이 없는 날이라 생각했음에도 분명 다른 글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번번이 하면서도 또 시간이 흐르면 ‘글을 더 자주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매번 소용없는 짓을 하는 것인가 싶어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더 자주 쓰게 되고 있습니다. 타석에 100번 올라간 사람이 10번 올라간 사람보다 경험도 많고 더 노련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더 자주 쓰자’고 글을 씀으로써 저는 더 많은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쓰고 또 쓰면서, 쓴 만큼 더 잘 쓰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지요.
모닝페이지는 1500자 분량에서 3000자 분량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녁에도 펜을 듭니다. 글쓰기란 건 쓰지 않으면 도무지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침 첫 시간에도 쓰고, 일과 중에도 쓰고, 밤늦게도 씁니다. 쓰는 삶은 실제로 글을 쓰는 장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만 바닥난 쌀독을 긁는 기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한편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왕 쓰기로 마음먹은 것, 할 수 있는 대로 더 써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좀 엉성한 글도 브런치 작가님들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것 같아 괜히 기운을 내 봅니다.
브런치북 연재를 기획 중에 있습니다. 아는 게 많이 없어서 알고 싶어서 쓰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미루고 미루는 저를 잘 알기에, 여기에다라도 써서 저를 몰아붙여 보려고 합니다. 꾸준히 글 쓰시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4일간의 연휴가 다 지나갑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글을 통해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늘 별것 아닌 제 일상과 생각에 공감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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