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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16. 2024

415일 708,000글자

처음 만년필을 배송받던 날이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첫 구정 연휴 직전이었다. 육지로 설을 쇠러 떠나야 했다. 첫 만년필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늦게 주문하는 바람에 구정 연휴 시작일 직전까지 물건을 못 받았던 기억이 난다. 육지로 떠나는 날 아침, 겨우 배송을 받았다. 박스 포장만 겨우 뜯어 펜과 잉크를 백팩에 집어넣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이름이 새겨진 첫번째 만년필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구정 연휴 내내 앉아서 글을 쓰고 싶은 것을 참느라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기는 하겠고, 새로 산 만년필도 시험해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랐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조금 일찍 일어나 서늘한 거실 식탁에 앉아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만년필 전용 노트도 없어서 실핏줄 처럼 잉크가 번졌지만, 왜 그런지도 모른 채 새 펜을 쥔 손은 신나기만 했다. 


처가에 갔을 때 잠자리가 여의치 않아 근처 적당한 숙박업소에 아내와 묵었는데, 그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글을 썼다. 희끄무레한 조명 아래 다 뒤집어진 머리를 한 채로 싱글벙글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기억이 난다. 종이가 다 얇아 번지는 공책을 펜촉으로 긁어가며 글을 썼다. 몇 번의 검색 끝에, 만년필 전용 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노트를 추가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서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처음 주문했던 까만색 로디아 노트의 첫 장은 2023년 1월 26일이라 쓰여 있다. 오늘은 그로부터 415일째 되는 날이다. 세 번 째 노트를 다 쓰고 덮으며, 1년간 손으로 글을 쓰며 느꼈던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글을 쓰며 행복했다. 글을 쓰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평생 글에 끌리는 삶을 살았다. 국어 과목을 좋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시키거나 그렇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글을 써 왔다. 다만 적절하게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글쓰기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좌우되었고, 체계적으로 삶에 쌓이지 못했다. 매일 아침 따로 시간을 떼 내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간 항상 후순위에 두었던 글쓰기를 내 삶의 중요한 자리에 놓게 되었다. 내게 자연스러운 모양 중에 하나인 글쓰기를 삶의 중요한 자리에 놓음으로써 나는 어느때보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글을 쓰는 게 괴롭지 않다. 의무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이고 고요한 아침 시간의 글쓰기 속에서 나는 우주를 유영하는 바람처럼 빛처럼 자유롭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자기 자신다울 수 있다. 지구상에 수많은 동식물을 보며 깨닫는다. 고구마 씨앗이 감자를 맺을 수 없다. 고구마는 고구마고 감자는 감자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고 수국은 수국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는 누구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모두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은 없다. 사회에서 뭔가를 얻기에 더 적합한 쪽으로 자신을 맞춰 가는것 같다. 직업을 얻는데 용이한 기술, 성격, 외모까지 자신을 맞추고 변형시킨다. 그러나 저마다 사람에게는 바꿀 수 없는 근원적인 부분이 있다.


글 쓰기 전의 나는 남이 되고자 열심히 살았다. 나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남이 되고자 애썼다. 남처럼 살기 위해서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YES’했다. 그 결과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점차로 희미해졌다. 남들 같은 삶의 모양을 갖추는 데 어느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댓가는 너무나도 컸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권태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면서 처음 펜을 잡았다. 이대로라면 내가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서 펜을 잡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사는 또 다른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펜은 좋은 대화 수단이 되었다. 오랫동안 귀 기울이지 않아 들리지 않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쓰면서 내면을 청소해 갔고, 내가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진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공적인 글과 사적인 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는 글과, 나 자신에게만 쓰는 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써왔던 글은 나 자신을 위한 글이었다. 나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글, 나를 위해 쓰는 글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이 글이 내 안에 아주 작아져 있던 ‘나’를 살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치의 다정함이라고 한다.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답답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 펜을 들고 잠시 글을 써 보면 어떨까. 지금 단 5분의 글쓰기가 앞으로 어떤 모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밑질 일도 없으니, 본전 생각날 일도 없다. 속는 셈 치고 써보자.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도 아마 결국 쓰게 될 것이다.


돈도 별로 들지 않고,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며, 정답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글쓰기를 한 번 시도해 보자. 글을 써 봐도 도무지 재미도 없고 지속하기도 힘들다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도 좋다. 대단한 문학작품, 멋진 에세이 같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써 보자. 지극히 사적인 글쓰기, 나를 꺼내주는 글쓰기부터 해보자. 글로 뭘 하겠다는 생각 말고, 글쓰기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여기서 재미를 느껴 보자. 


나는 글쓰기가 그리 힘들지 않다. 글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공적인 글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질을 높이려고 하면 더 쓰기 어려울 테고, 매번 쓰는 글을 게시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지금보다 더 어렵게 글을 쓸 것이다. 글의 질이나 공공성을 다 빼고, 글쓰기 자체로 나는 즐겁다. 쓴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모든 보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쓰다 보면 잘 쓰게 될테고, 가끔 공적으로 발행하는 일도 있을 테니 글쓰기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활동이다. 자유롭고 싶은 사람, 읽는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 심심한 사람, 돈 없고 시간 없는 사람, 누구에게나 글쓰기는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1년 남짓 글을 쓰다 보니 글이 더 쓰고 싶어졌다.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대로 지극히 사적인 글을 썼는데, 이제는 더 다양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삶이 한 자루의 펜이 되고,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잉크가 되어서 삶으로 글을 쓰고 싶다. 산다는 것과 쓴다는 것이 내게 비슷한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과 씀이 어우러져 따로 떼 내기 어려운 삶이 내게는 참 아름답게 보인다. 


415일 대부분의 기록이 담긴 세 권의 노트를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몇 글자쯤 될까 텍스트 인식기로 몇 장 찍어 본다. 한 쪽당 1500자 내외, 472쪽이니 708,000글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쓴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다. 나를 억눌러 놓고 타인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글을 쓴 만큼 나는 나일 수 있게 되었다. 쓴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이다. 쓰는 일 만큼 자신과 닮아 있는 일은 없다. 가장 나다운 활동 중에 하나가 쓰는 일이다. 내 손으로, 내가 가진 펜으로, 내 글씨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다. 이만큼 고유한 활동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글쓰기가 정말 좋다. 물론, 워드 프로세서로 써도 내 글은 내 글이니 모두가 편한 방식으로 글을 쓰면 된다. 


작가의 습작은 300만 단어를 쓸때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누군가 아주 고약한 말을 했다. 아마 이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이정도 써 보니 좀 알겠다.’ 정도일테다. 나는 꿈을 꾼다. 많은 글을 쓰고 싶다. 평생 글을 써 오지 않았으니 앞으로 5년간은 열심히 써도 자기 연민 가득한 쓰레기 같은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 


300만 단어면 1000만 글자쯤 되지 않을까. 노트 한 권에 25만자 정도 되니까 같은 노트로 40권 정도 쓰면 ‘습작’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많은 글을 언제 다 쓰나 하는 막막함 보다는, 내가 써낼 수 있는 글이 무궁무진 하다는 사실이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쓰고 또 써내고 싶다. 사적인 글을 쓰며 내게 말을 걸고, 세상에 글을 꺼내며 읽은 이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글을 써내고 싶다.


쓰기를 시작함으로써 점차로 나는 남이 되기를 포기하고 나 자신이 되어 간다. 남이 되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승리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이 되고, 그 순간부터 승리하기 시작했다. 고마운 글쓰기와 평생을 동행하려 한다.


읽는 사람이라면,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 한 번 써볼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단 5분, 단 한 줄이라도 글을 한 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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