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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16. 2024

봄, 봄, 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제주도 강수 일수가 43.8일이라고 한다. 석 달 동안 눈, 비가 내린 날이 44일이니 이틀에 하루쯤은 눈이나 비가 내린 셈이다. 체감상 2월은 내내 비가 왔던 것 같고, 12월 1월엔 몇 번쯤 눈이 와서 출퇴근 길에 엉금엉금 차를 몰았던 기억이 난다.


3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과 내리쬐는 햇살이 반갑다. 아내와 아침을 간단히 지어먹고, 부서지는 햇살을 마음껏 누릴 요량으로 ‘공원’을 검색해 길을 나섰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아내와 나, 그리고 아내 뱃속의 호꼼이도 함께 느긋한 걸음을 걸었다. 아주 천천히, 한 발 한 발 옮기며 온몸으로 봄기운을 들이마셨다. 


공원 곳곳은 어느새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곳곳에 맺힌 꽃망울과 한껏 더 푸르러진 잔디와 식물들이 어느새 봄이 왔음을 말하고 있었다. 초록빛으로 물든 잔디와 그 사이를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꼬마 아이들, 무엇을 찾는지 잔디밭을 헤집고 다니는 흰색 새끼 고양이가 한 풍경에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 토요일 오전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새 해는 1월 1일부터 시작되지만 나는 꽃이 피고 얼음이 녹는 3월이 새 해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깨어나고, 겨우내 웅크렸던 식물들도 하나 둘 싹을 틔운다.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간다. 개학과 동시에 출근길은 조금 더 붐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곳곳에서 보이고, 따뜻해진 날씨 덕에 거리는 한층 더 북적인다.


봄이 좋다. 겨우내 추위를 참아낸 식물이 싹을 틔워서 좋고, 계속 내리던 비가 한 차례 개고 따뜻한 봄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나는 곳마다 사람이 있어 좋고, 휑하던 들판에 목련이며 유채꽃이며 식물들이 피어나서 좋다. 왜인지 기운이 솟는다.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봄을 맞는다. 올해는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 봄의 또 다른 이름은 희망이다. 생명이 싹트고, 한 해가 다시 힘찬 기운으로 시작한다. 봄은 부드러우나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다. 봄이 주는 설렘과 생명력에 흠뻑 빠지고 싶다. 봄을 누리는 모든 분들에게 희망이 가득하면 좋겠다. 


한 차례 공원을 거닐며 봄기운을 들이마신 후에 아내와 자주 가는 카페에 들어와 앉았다. 토요일 아침 여유로운 산책과 향기로운 커피 한 잔, 그리고 글 쓸 수 있는 시간, 함께하는 아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롭다.


카페에는 느긋한 재즈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사가 있지만 가사 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카페 안은 커피 원두 가는 소리, 사람들이 저마다 대화하는 소리, 음악이 은은하게 퍼지는 소리로 채워져 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가사 까지는 들리지 않고, 저마다 대화하는 소리는 들리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까지는 알 수 없다. 고요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다른 소리가 내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와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것들을 한 편으로 의식하면서 내가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를 가장 크게 듣고 있다.


평화로운 토요일이다. 시간이 있어서 참 좋다. 마음껏 평화로울 수 있어서 참 좋다. 쫓길 필요 없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봄기운 가득 담긴 햇살을 맞을 수 있어서 좋다.


삶을 누릴 줄 아는 지혜가 생겼다. 이전 같았으면 나 스스로를 다그쳤을 것이다. ‘느긋한 소리 할 때가 아니다.’ 라며 ‘뭐라도 해야 한다.’ 고 했을 것 같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들을 할 만큼 여유가 없던 때가 있었다. 모든 일에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쫓아다니는 삶을 살았다. 물론 주어진 시간 속에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내 노력이 나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고구마 씨앗인데 포도나무가 좋아 보인다고 포도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씨앗이 되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씨앗을 잘 품고 관리하여 이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이다.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되고자 하지 않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삶을 찾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을 나는 성공이라 정의한다. 


내 속에 무슨 씨앗이 있는지, 나는 어떤 모양이 될지 지금 다 알 수는 없다. 계획은 하지만 꼭 그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는 묘미이며 그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유라는 생각을 한다. 


파아란 하늘과 따뜻한 색깔의 햇빛은 어느새 구름에 조금 가리었다. 찾아보니 오후에는 비 소식이 있다고 한다. 잠깐이었지만 햇살을 만끽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맞은편에 앉은 아내는 다음 주 수업 준비를 한동안 했다. 그러고는 다음 주 가기로 한 여행지 정보를 찾아보았는지, 내게 정리된 리스트를 보여 주었다. 이따금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턱을 괴고 마우스 휠을 드르륵 굴리기도 한다. 맞은편 대각선에 앉은 아내를 관찰하느라 눈을 흘깃 쳐다보면 아내도 나를 바라본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봄날이다. 


읽으시는 분들께 봄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되면 좋겠다. 모두 봄기운 가득한 하루 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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