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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pr 07. 2024

글쓰기는 멈춤이다

글쓰기는 멈추는 것이다.


일주일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장마철 불어난 강물처럼 밀려드는 업무, 불쑥 찾아온 교통사고, 그중에도 돌아가는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 끼여서 한 주를 살았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모닝페이지 노트를 펼치니 마지막으로 적힌 날짜가 4월 4일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한 편 아침에 해치우고 난 뒤로 세 번의 아침이 지나는 동안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4일 날도, 3일 날도 글을 쓰기는 했지만 두 쪽 쓰던 것을 한쪽으로 줄였고, 쫓기듯 해치우듯 써버렸다. 일요일 오후,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생활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서 바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한 주를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다. 


바빴다고 아무리 둘러대 보아도, 나는 내 24시간 안에 글을 넣지 않은 것뿐이다. 사람의 시간은 단 1분도 늘어나지 않는다. 삶을 살다 보면 생활이라는 이름의 긴급한 일들이 여러 얼굴로 나를 찾아온다. 업무량이 많은 시기도 있을 테고, 학교 수업에 가야 할 때도 있고, 갖가지 모임에 얼굴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긴급하다고 소리치는 일들에 내 시간을 다 내어주다 보면, 글이라곤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살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쫓기듯 다 살고 나서, 청춘도, 인생도 다 써버리고 난 다음에 ‘정말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나를 쫓아오는 여러 일들을 하다 보니 쓰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한 주가 지났다. 일요일 오후 나른한 재즈 음악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봄기운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펜이 지면을 긁어 내려가며 만들어내는 글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쓰면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다시 다짐한다. 앞으로는 절대 바쁘다는 이유로 글을 두 번째 세 번째로 두지 않아야지. 


생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허우적거렸다. 글을 쓰면서 자유로움을 되찾고 내 속도를 찾았다. 바빠 허우적거릴 때도, 글쓰기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 주었다. 인생에 끼어드는 일들이 주로 시끄럽게 나를 부르는 것과 반대로 글쓰기는 큰소리로 나를 부르지 않았다. 다시 글 쓰는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해야 하는 일’, 또는 ‘긴급한 일’ 범주가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 또는 ‘급하지 않은 일’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절대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지치지 않는 기질을 따라 자신의 자유로움을 짓는 일, 이런 것들은 큰 소리로 나를 부르지 않는다. 삶은 이렇게 조용하고 중요한 것들이 바로 세워질 때, 비로소 정돈되고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 반대로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들, 일견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생활은 각종 의무를 부과한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하며, 성장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일은 해도 끝이 없고,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러 다닐 수는 없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을 어찌 다 읽겠는가? 결정적으로 인간에게 하루란 24시간이며, 단 1분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삶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모험이다.


‘생활’이라는 이름 하에 큰 소리를 내는 것들에 먼저 눈길을 주고, 그들의 뒤꽁무니를 좇다 보면 하루하루가 이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삶 속에 정말 중요한 요소들은 언제까지고 삶 한 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나는 쫓기느라 그것들에 눈길을 줄 수 없게 되고 만다. 


나에게 글쓰기는 잠시 멈추는 것이다. 계속 달리라고, 쉬지 말라고 하는 목소리에 잠시 귀를 닫는 것이다. 멈추고, 나에게 묻는 것이다. 모두의 삶은 저마다 고유하다. 누구도 타인의 삶에 정답을 말해줄 수 없다. 설령 거대한 삶의 미스터리에 단 하나도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물어야 한다. 잠시 멈춰 서서 물어보자. 어디를 그렇게 가는지, 지금 내 삶이 좋은지 말이다. 쓰기가 좋은 동반이 되어줄 것이다. 


파도에 떠밀리듯 시류에 편승해 30여 년을 살아왔다. 지금도 시류 속에 살고 있는지 때로 ‘내가 걸어야 할 길’보다 ‘남들이 가는 길’을 신경 쓰곤 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 누구도 타인과 같지 않기에, 타인의 길을 답습하는 것으로 그치는 인생은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험과 교훈이 있다. 저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그러나 자기의 길이 아니기에,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허우적댄다. 쓰는 것은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시류라는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가기보다,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내는 방법이다. 글 쓰는 인간은 강하다.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인간이다. 사람은 부정적인 반응을 긍정적인 반응에 비해서 5배나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삶’으로 포장된 의무가 나를 보챌 때, 글을 쓰는 사람은 거기에 맞설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찾고 내 삶을 되찾았다. 이전에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자유를 맛보고, 펜 끝에서 창조되는 힘을 만끽한다. 나는 이제 떠밀려 다니지 않고 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힘을 글 속에서 발견한다.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생활의 수레바퀴에서 잠시 나와 보자. 펜을 드는 순간 잠시 멈추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물어보자. 


글을 쓰는 것은 잠시 멈추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이 고유한 것이라고, 계속 내게 말해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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