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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y 04. 2024

26주 3일

D-95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오늘로써 26주 3일이 되었다. 아이는 아내 뱃속에 맡겨두고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아빠의 육아일기’를 쓴 지도 10주나 되어 버렸다. 또 오랜만에 커서 앞에 앉으니 낯설기는 하지만, 더 기억이 희석되기 전에 남겨두고 싶다.


이제 일수로는 95일, 개월 수로는 3개월 남짓 예정일을 앞두고 있다. 아이는 꽤 많이 자랐다. 신체 기관이 모두 다 만들어졌고, 이제는 신장도 30cm도 넘고, 1kg 가까이 체중도 늘었다. 이제 초음파로 보면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내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매일 경이로움을 느낀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대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호꼼아 아빠 회사 간대.”

“호꼼아 사랑해.”

“호꼼아 아빠 회사 갔다 올게.”

“호꼼아 아빠한테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하자.”


아내는 이따금 3인칭으로 얘기하는 습관도 생겼다.


“여보, 호꼼이가 단 게 먹고 싶나 봐.”

“여보, 호꼼이가 일찍 들어오래.”


마침 외할머니가 되실 장모님이 찾아오셔서 이런 현상에 대해 여쭈었더니, 이건 산모의 특권이라 하셨다. 


이제 아이는 뱃속에서 부모가 하는 얘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자주 목소리를 들려주고, 쓰다듬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어느 순간부터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던 태동은 이제 더 선명해졌다. 아내 배에 손을 올리고 아이를 부르면, 마치 아이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말하는 듯하다. 아내 뱃속에 있는 생명을 느끼는 감각,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나는 매일 신비로움을 느끼고, 경이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호꼼아 안녕 아빠야

엄마 뱃속은 어떠니?

고마워 찾아와 줘서


또 하나의 존재가 우리 부부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찾아온다는 게 놀랍다.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듯, 비슷한 생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고유하고, 존재만으로 특별한 한 존재가 우리 부부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아내는 이제 꽤 임산부 티가 난다. 집에 하나 둘 아기 용품도 들여놓고 있다. 우리 부부 둘만 지내던 풍경도 이제는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앞으로 사는 날 동안 쭉 같은 풍경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아내는 엄마가 될 준비를 여러모로 하고 있다. 육아 공부를 하는 것은 물론, 아이를 중심으로 삶을 조정해 나가고 있다. 나도 곁눈질로 목욕시키는 방법도 찾아보고, 하나 둘 아기 물건도 같이 사러 다니고 있다. 이런 것도 준비를 한다고 준비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를 만나면 그때부터 부딪혀 나가야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뱃속에 있었던 시간의 절반 남짓 지나면 호꼼이와 만날 수 있다. 뱃속에서 지내는 동안 무럭무럭 잘 자라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아이로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생명 본연의 고유함을 간직한 삶을 살고, 고유함을 삶에 꽃 피우는 인생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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