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정오류에 대한 지적이나 피드백은 환영합니다. 2050년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벨 식사 중에는 청소하지 말라고 했지.”
엘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가정집의 저녁식사 풍경이었다.
“내가 시켰어. 밥 먹는 동안 미리 치워두면 좋잖아”
아서가 엘레나를 보며 대꾸했다. 한 치의 비효율도 용납하지 않는 듯 그의 입안엔 음식이 가득했다.
“저녁 시간은 우리만의 시간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먼지가 날리면 건강에 안 좋아요.”
[아벨은 먼지 발생 경로를 계산하여 작업 중입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벨, 그냥 조용히 해”
아들 줄리안이 낮게 읊조렸다. 어린 딸 마야가 천진난만하게 끼어들었다.
“아벨도 이리 와서 같이 먹으면 돼!”
마야의 순순한 제안에 부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우리 딸 착하구나. 그런데 로봇은 유기물을 섭취할 수 없단다.”
“여보, 좀... 애한테 맞춰서 말해요.”
아서는 딸과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엘레나의 타박을 피하지 못했다. 기가 죽은 아서는 화살을 아들에게로 돌렸다.
“줄리안 이제 대학교 입학 준비를 하는 건 어떠니?”
부담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엘레나 역시 동의하는지 숟가락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빠,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대학이에요. 제 친구들 전부 안 가요”
“그렇다고 마냥 놀 수만은 없는거란다.”
“아빠, 이제 전 세계가 이렇게 살아요. 어차피 AI가 저보다 똑똑한데 제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안 그래, 아벨?”
[동의합니다. 아벨은 줄리안보다 똑똑합니다.]
아서는 한숨을 쉬며 포크 끝으로 아벨을 가리켰다.
“아벨,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어.”
[네, 이해했습니다.]
아서는 다시 줄리안을 응시했다.
“줄리안,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아. 결국 세상은 쓸모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할거란다.”
“그럼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 될게요. 아빠 엄마 같은 훌륭한 분들이 계속 쓸모있는 사람 하세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줄리안이 방으로 사라졌다. 엘레나가 머리를 감싸 쥐며 남편을 원망했다.
“여보, 왜 그렇게 매번 이성적으로만 몰아세워요?”
“왜! 당신도 궁금했던 거잖아? 아니면 내가 말을 꺼냈을 때 막았어야지.”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졌지만, 마야는 자주 있는 일인 듯 아무것도 못 들은 아이처럼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아벨의 센서 앞에 갖다 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벨은 유기물 섭취가 불가합니다.]
방으로 돌아온 줄리안이 안경을 썼다. 허공에 친구들의 메시지와 온갖 뉴스들이 쏟아졌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발견된 괴생명체 소식, 지구 온난화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소식, AI의 역사에 대한 글… 줄리안의 흥미를 끄는 건 없었다. SNS 속에는 화려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아는 듯한 그들의 총기 어린 눈빛이 줄리안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주방에서는 여전히 부부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 좋아졌어. 모든 사람들의 정신연령이 너무 낮아진 탓이야. 그러지 않고서야 줄리안이 아직도 사춘기라는 게 설명이 안 돼.”
아서는 음식을 씹으며 열변을 토했다.
“세계 평화, 세계 통일? 나는 믿지 않아. 보편적 부는 빛 좋은 개살구야. 이 질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건 매한가지야.”
“그냥 두세요. 우리도 못 겪어본 세상이잖아요”
아서는 엘레나의 말에 더 신이 난 사람처럼 떠들었다.
“그래 우리! 우리 대학교 졸업할 때는 진짜 심했잖아. 생각해봐 기업들이 전부 AI에 빠져서 채용은 하지 않고 AI가 선별한 사과라면서 일반 사과보다 더 비싸게 팔았잖아”
엘레나는 속으로 괜히 말을 이었다고 생각했다.
“성장통인 거죠…”
“하! 줄리안도 성장통인 거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엘라나도 머리로는 여기서 그만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레나의 성격상 반박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이제 필수교육과정이 다 끝났을 뿐이에요. 그동안 줄리안이 본 어른들은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뿐이었으니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죠.”
마야는 격해지는 대화가 익숙한 듯 아벨에게 빈 그릇을 건넸다.
“잘 먹었어! 아벨!”
아벨은 마야에게 그릇을 받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아서는 거실로 걸어가는 마야를 잠시 쳐다보았지만, 말을 끊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뿐이라니. 바로 우리만 해도 그 폭풍을 해치고 각자의 몫을 하고 있짆아.”
“줄리안을 스쳐간 모든 어른들이요! 줄리안의 세상에 얼마나 많은 표본이 있는데요. 그 중에 우리 둘만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설득력이 있을까요?”
엘레나도 아서도 누구 하나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가 더 중요한 표본인 거지. 줄리안은 우리 말을 귀담아들어야 해.”
“아서, 지금은 2050년이에요. 2020년이 아니라고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나도 알아! 왜 이래? 나 AI 엔지니어야! 내가 이 세상을 바꾸는 중이라고! 누구보다 잘 알아.”
“네 그렇겠죠.”
“나는 줄리안을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었어! 앞으로도 빨리 바뀔 거라고…”
엘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도 아서의 말에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모든 기업과 국가 공공기관이 AI와 로봇을 도입하기 전까지 세상은 잔인했다. 소수 기업이 이윤을 독식하고 채용은 줄이고 물가는 치솟던 축제와 절망의 시대가 있었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소수기업만 이윤을 독차지했고 사람은 뽑지 않았다. 인건비를 줄였지만 다른 평범한 기업의 생산원가에 맞춰서 이윤을 남겼다. 때로는 AI를 통해 품질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홍보하며 프리미엄을 붙였다. 사람들은 고용지수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기업들의 담합으로 물가는 계속 올라갔다. 기업에게는 축제였지만 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AI 도입과 로봇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파산했다. AI는 기업 간의 경계를 허물었고, 경쟁은 극에 달해 물가가 폭락했다. 사람들은 내일이면 더 싸질 물건을 굳이 오늘 사지 않았고, 재고를 쌓아둔 기업들은 무너졌다. 결국 국가가 개입해 생산 구조를 재편하면서 ‘재고’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재고’가 사라지니 돈의 ‘축적’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졌다.
그런 세상이 단 20년 만에 지나갔다. 사회는 매년 폭풍이 휩쓸고 갔다. 그런 사회가 이제 뉴스에서는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시대에 돌입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아서와 엘레나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20년간 격변한 세상처럼, 언제든지 세상이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공포가 경험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아벨 이제 정리해줘”
[네 주방 정리와 빨래, 청소를 이어서 하겠습니다. 두 분의 서재는 이미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서는 서재로 들어갔고, 엘레나는 마야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엄마, 목이 뭐야?”
“목? 우리 몸에 있는 목 말이야?”
엘레나가 마야의 목을 가리켰다.
“으음 아니, 아까 아빠가 각자의 목을 했다고 했잖아”
“아~ 그 몫을 했다고? 아니야 아빠랑 엄마만 각자의 몫을 한 건 아니야”
엘레나가 멋쩍은 미소를 짓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야는 답답한 듯 소파에서 일어나 엘레나의 양 볼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목’이 뭐냐고!”
엘레나가 마야의 손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내가 맡은 책임을 다하는 걸 제 몫을 했다고 표현하는 거야”
“책임?”
“그래, 아까 아벨이 청소를 이어서 한다고 했지? 아벨이 엄마가 청소하지 말라고 해서 못 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어서 하는 게 바로 책임을 다하는 거야.”
마야가 이해했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그렇구나! 그러면 줄리안은 몫을 안 하고 있는 거야? 마야도?”
“아니야. 그렇지 않단다. 세상은 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야”
“아벨이 청소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엘레나는 마야의 통찰력에 조금 놀랐다. 다 듣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잊어버렸다.
“그래, 맞아. 하지만 그 시간을 알기가 어렵지. 마야도 세상에는 언어가 많은 걸 알고 있지?”
“알아! 영어, 한국어 음 그리고 음..”
마야가 손가락을 접다가 기억이 안난다는 듯 웃으며 엘레나를 바라봤다.
“그래, 한국어도 처음에는 모두가 싫어하는 언어였고 몇 십년 전에는 아주 효율적인 언어였어. 하지만 지금은 비효율적인 언어가 됐지.”
“왜? 한국어가 뭘 잘못했어?”
“아니,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야. 한국어는 그대로였지만 이 세상이 바뀌어서 그래.”
“음 잘 모르겠어! 어쨌든 마야는 마야 몫을 할 시간은 아니라는 거지?”
마야가 엘레나와 시선을 맞추면서 웃었다.
“그래그래 마야는 학교를 잘 다니고 숙제를 열심히 하면 돼.”
“나는 줄리안이 이해될 것 같아. 몫을 다하는 건 어른이 되는 거잖아. 나는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있고 싶어.”
엘레나는 따뜻한 포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평화로운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엘레나의 팔찌에서 진동이 울렸다. 얇은 팔찌 위로 각인된 것 처럼 이름이 떠올랐다.
[연구소 - 마일즈 박]
엘레나가 귀걸이 형태의 수신기를 터치하자 목소리가 들렸다.
“오 엘레나 늦은 시간에 정말 미안해”
“무슨 일이야?”
“혹시 뉴스 봤어? 태평양에서 괴생명체가 발견됐거든.”
“설마, 또 심해 괴물이야기야?”
엘레나는 괴생명체라는 단어에 심각했던 표정을 풀었다.
“아니야, 내가 그거면 전화를 했겠어?”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뭐야?”
엘레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그 괴생명체 PCR 반응이 없대!”
엘레나는 놀란 표정으로 소파에 걸터 앉았다. 뉴스 기사를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벨, 내 휴대폰좀 가지고 와”
[네. 알겠습니다]
마야가 엘레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피시암은 뭐야?”
엘레나가 휴대폰만 바라보고 대답하지 않자 마야는 아벨에게 물었다.
“아벨, 피시암이 뭐야?”
[네 CPR은 심폐소생술을 의미합니다. CPR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화 너머로 마일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엘레나, 아직도 그 구형 로봇을 쓰고 있구나? 정말 요 근래 들은 것 중 제일 웃겼다.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살아있는 상태는 아니니까.”
“조용히 해. 나이가 들면 뭘 바꾼다는게 쉽지않아. 새로 적응해야한다는 의미거든.”
“엄마 누가 죽었어?”
“아니야. 아벨! CPR이 아니라 PCR이야.”
[네 정보를 수정합니다. PCR은 종합효소 연쇄 반응입니다. PCR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DNA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야가 아벨의 몸체를 두드리며 다시 물었다.
“좀 애한테 맞춰서 말을 해. 아벨.”
[네 생명체에서 PCR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생명체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가짜이거나, 지구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생명체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가짜였다면 마일즈 박이 전화를 하지 않았겠죠. 따라서, 태평양에서 발견됐다는 괴생명체는 외계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