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와 네 절친의 소소한 그림일기
가방은 짝퉁을 들지언정 경이로운 절친들 덕에 명품 조연으로 인생을 즐기는 중이라고 자부한다. 아이들 덕에 날마다 진화하니 이또한 당연한 일이다.
2호(은하수)와 4호(우주)는 미국에 살고있어 명품인생의 주역은 I호(하준)와 3호(하은) 하하남매가 전담 중이다.
절친 1호 하준이는 초딩 2년차다. 최근 하준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단어가 '의자'와 '환호'다.
학부모참관수업날, 엄마 대신 할머니가 오실 거라며 담임선생님께 자랑하던 아이 덕에 교실 안에 퍼지는 왁자지껄한 햇살 번지는 창가에 의자 하나 얻어 앉는 호사를 누렸다. 하준이를 향한 선생님의 배려와 할머니를 향한 하준이의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 운동회 때 계주로 뽑혔어, 할머니. 그러니까 아침에 8시 반까지 와서 나랑 같이 학교가야 해." 그 아침 한시간 반이나 걸려 달려간 학교운동장엔 12반이나 되는 2학년 아이들의 함성으로 우렁찼다. 그 가운데 바람을 뒤로 거느리고 당당하게 달리기 꽃등한 아이가 내 절친 1호, 장하준이다. 그때 쏟아낸 9년치의 환호로 국민학교 6년 내내 달리기 골찌였던 할미의 찌질했던 흑역사가 사라졌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늘 손을 꼭 잡던 아이가 할미와 따로 걷는다. 이젠 친구들 앞에서 손잡는 게 어색한 초딩이 되었고 야구에 이어 친구가 한 자리를 차지하여 할미는 곧 3순위로 밀려날 것이며 순위하락은 지속적일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건 할미에게 1순위는 내 절친들이라는 것이다.
오십 중반부터 은둔할미로 살았다. 지금 난 도도할미다. 하준할미도 하은할미도 은하수할미도, 우주할미 되는 도도할미.
느리게, 게으르게, 더디게 집 안에서만 서성이던 걸음이 아이들 덕에 밖으로 이어져 세상을 도도하게 산책 중이다. 그 산책 길엔 우하하하와 동숙이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