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음을 꿈꾸는 사람이길…
사람들은 ‘여러 번 겪은 일은 좀 덜 힘들지 않은가, 혹은 더 준비를 잘할 수 있으니 수월하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세 번째 선물이 찾아왔다.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있다는 것은 참 신비로운 일이다. 그 신비로움의 시작은 내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아기가 자리 잡자마자 예민해지는 나의 코와 입. 나는 본래 예민한 편이 아니다. 냄새와 맛을 못 본다는 의미가 아니고 식당에 가서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와도 그럭저럭 괜찮다며 음식을 먹는 편이다.
그러나 입덧이 시작되자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갑자기 비빔국수가 먹고 싶어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여러 후보를 제치고 결정한 맛집이라는 곳에 남편과 30여분 가까이 차를 타고 갔다. 그 당시 웬만한 음식냄새가 고역이었던 나는 코를 막고 비빔국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새빨간 양념에 야채가 듬뿍 올려진 윤기 나는 비빔국수가 내 앞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입을 먹고 나서 나는 젓가락을 놓아버렸다. 정말 딱 한 입이었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서 남편이 먹는 동안 한 입도 더 먹지 않았다.
이런 입덧을 한 번 겪었으니 다음은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입덧은 심하게 느껴졌다. 처음 겪는 일은 그 일이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가져다줄지, 또 그 어려움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첫 번째 입덧 때는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이런저런 음식도 찾아 먹어보고, 외출을 하며 바람을 쐬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그 시간을 견디어 내다보니 어느새 괜찮아지고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다며 참을만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처음 겪는 어려움이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이것저것 여러 방도를 찾아내며 그 시간을 지나쳐 보낸다. 그 방도들이 나에게 꼭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어쩌면 그걸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내가 겪어내는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같은 일이 찾아오면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알기에, 또는 그저 시간이 약인 걸 아는 경우에는 더더욱 별다른 시도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면 처음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던 시간이 이번엔 지루하고 지난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임신 기간 동안 나의 열 달은 순조롭게 흘러간 편이다. 첫째를 낳기 전 계류유산을 겪어 걱정했지만 그 이후에는 큰 어려움 없이 세 아이를 열 달 동안 품을 수 있었다. 뱃속의 아기가 자라면서 참아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자주 화장실에 가야 했고, 태동과 그로 인한 불편함과 불면증, 피부질환, 골반통 등등. 하지만 이런 것들도 내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 생각하면 참을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임산부라면 모두 겁이 날만한 일, 바로 아이를 만나는 일, ‘출산’이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다.
사실 첫째를 만날 때는 아이를 건강하게 잘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엄마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의사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통주사도 없이 진통을 이겨내며 출산과정을 겪어냈다. 나는 다른 것 때문에 집중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남편도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소리 한 번 내지르지 않았다. 겁이 나지도 않았다. 그저 잘 해내겠다는 비장함 뿐이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를 잘 낳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게 씩씩한 모습으로 첫째를 만났다.
그런데 그런 내가 셋째를 낳았을 때는 어땠는가? 모두들 세 번째이니 더 수월하게 낳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통을 느끼는 순간 때가 왔음을 바로 알아챘으며 미리 준비해 둔 출산가방을 꺼내고 첫째와 둘째를 빠르게 친정엄마에게 맡기는 등 필요한 과정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한 후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겁이 났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때 가졌던 ‘아이와 건강하게 만날 거야’라는 씩씩함은 어디에 내다 던져놨는지 연신 무섭다는 소리를 남편에게 해댔다. 그리고 누워있는 동안 발이 시리고 오한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이불 좀 덮어달라고 하며 무서워서 떠는 건지 추워서 떠는 건지도 모른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나의 상태를 보고 열을 재더니 38도가 넘는단다. 그때는 코로나19가 시작된 해였다. 간호사들도 당황하고 나와 남편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진통은 시작되었고 곧 아기가 나올 것이므로 다른 방도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아마 간호사 선생님들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려 했던 것 같다.) 일단 항생제를 넣고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께서 들어오는 순간부터 누군가 LED 조명을 들고 들어온 듯 방이 밝아졌다. 적어도 진통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리 보였다. 이미 첫째와 둘째의 출산을 도와주신 의사 선생님은 우는 나를 보고 진통제 안 줬냐며 왜 산모가 이렇게 힘들어하냐고 걱정을 하셨다. 사실 저는 선생님을 보고 눈물이 난 거였어요~~!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거짓말처럼 나의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불안으로 요동치던 나의 마음도 평온해졌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셋째는 그래도 낳는 것이 그나마 괜찮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세 번째가 제일 힘들고 무서웠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에는 절차도 잘 모르고 무슨 어려움이 생겨날지 감조차 잡지 못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처음에는 내가 잘 준비되어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일에 뛰어든다. 용기와 열정과 비장함을 가지고! 어려움이 닥쳐오면 원래 이런 건가 하면서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데 바쁘다. 그 모든 과정이 처음 겪는 것이기에 쏜살같이 지나간다. 끝이 나서야 간신히 한숨을 쉬며 이게 뭐였지, 끝난 건가 하는 얼떨떨함과 그래도 끝냈다는 약간의 흐뭇함이 남는다. 하지만 다음번이 되면? 다음에 어떤 어려움이 따를지, 그리고 그 어려움이 얼마나 나를 힘겹게 할지 온몸으로 느꼈었기에 그 과정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빨리 시작하기를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다음을 생각한다. 이전까지의 경험들이 나를 힘겹게 했을지라도 때로는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행복함을 얻을 수도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느새 성숙한 나를 발견하기도 하며, 다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넷째를 생각하냐고? 노노!! 그것은 좀 다른 문제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