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스터 에그'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본래 '이스터 에그(Easter Egg)'는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부활절에 본 적 있는 알록달록한 달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단어가 게임, 영화, 책 등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나 기능을 부를 때 쓰이기도 한다. 이것의 시작은 어느 게임 개발자가 게임 안에 숨겨둔 메시지를 사용자가 찾아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장난 같은 것이었다. 서양 문화에서 부활절날 집안이나 정원에 숨겨둔 부활절 달걀을 아이들이 찾도록 하는 풍습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스터 에그가 게임 진행에 어떠한 악영향을 주지는 않으며 순전히 재미를 주기 위한 순수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말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의미로 쓰이고 있다니 신기해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 읽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인생의 이스터 에그는 무엇일까.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들 틈에서 우연한 기회에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이 나에게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것이 내 인생에 숨겨져 있던 이스터 에그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참 복잡하고 어려우면서도 또 단순하게 느껴지는, 알다가도 모를 것이어서 그 어떤 게임에도 비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게임 속 이스터 에그처럼 인생을 살아가며 나와 타인에게 어떠한 악영향도 주지 않고, 순수하게 재미를 주기 위한 기능을 가진 것 한 가지쯤은 찾아내는 것 같다. 운동, 독서, 외국어, 음식, 노래, 춤, 자격증, 그림, 공예 등등 세상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재미와 매력을 지니면서도 인생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일들이 무수하다. 이러한 것들 중에 취향에 맞는 것이 우리에게 취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취미가 이스터 에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어릴 때부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 글로 써내는 것이 좋았던 나였다. 중학생이었을 때는 항상 교환일기를 쓰는 대상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내 마음속 이야기를 펼쳐내며 정성스럽게 공책을 채워나갔다. 20대를 보내면서도 기쁜 일이 있거나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마다 찾게 되었던 내 일기장이 항상 책장 구석에 꽂혀 있었다. 나의 일상에서 해소되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그 안에 쏟아내고 잠듦으로써 다음날의 나를 건강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들은 사진앨범 안에도 많이 들어있지만 글로만 저장할 수 있는 내용들을 메모장에, 공책에, 일기장에 차곡차곡 적어나갔다. 그러다 어느덧 30대가 되어 하루동안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자 점점 글쓰기는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아주 가끔, 정말 어쩌다 한 번 메모장에 그날의 단상을 토해내듯이 적어내고는 몇 주를 또 지나 보내곤 했다. 그리고 40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발견해 놓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이스터 에그는 글쓰기였다. 내 인생의 재미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찾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것에 다가서 있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갖는 메시지와 기능을 이제야 새롭게 깨닫는 중이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소소한 장면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고,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서도 어떠한 의미를 찾게 해 주었다. 어렵고 힘든 마음이 들 때 그 누구보다도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해 주었으며, 그 안에서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감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터뜨리고 투정 부릴 수 있었다. 소중한 추억과 기쁜 일들, 그 안에서 나눴던 대화와 그때의 내 감정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글만큼 세심하게 기억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도 잊었던 일들을 내 글들은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던 나는 내가 적어낸 문장들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고 내 입에서 빠르게 나와 세상에 흩어졌더라면 몰랐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생겨난 그 의미들을 글 안에서 찾아내며 스스로에게 놀라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글쓰기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아내는 느낌이다. 꾸준히 글을 써내며 그러한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나를 보며 뿌듯하다. 이 순간들은 별 것 없다 생각한 내 일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주었고, 어느 날 던져진 단어 하나에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덧붙이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더 보고 듣고 느끼려고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도 그 이면에 있을 깊은 의미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가끔 생겨났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글쓰기였다.
10대 때 엄마와 교환일기를 쓴 적이 있다. 사춘기가 찾아온 시기였다. 원래도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였는데 사춘기가 되니 더 내 안에 숨어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전과 다름없이 지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 엄마에게 가끔 써서 드렸던 일기장이었고, 또 그 일기장을 통해 엄마의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요즘 들어 제2의 사춘기가 온 듯이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서 글이라는 나만의 이스터 에그를 찾아냈다. 세상과 교환일기를 쓰듯이 이렇게 글을 쓴다. 그리고 세상의 대답을 듣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
앞으로도 내 인생 안에 숨겨진 다른 이스터 에그들을 더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생각하다 보니 이것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스터 에그였구나 싶은 것들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발견한 가장 오래된 이스터 에그는 글쓰기와 독서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러나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과는 그 희열과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내 인생의 이스터 에그. 게임과 달리 인생에서는 그것을 누군가 일부러 숨겨두지 않았다. 찾으려고만 한다면 언제든지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찾아낸 나만의 이스터 에그 안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유의미한 경험과 성장이 함께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과 성장에서 다시 한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나만의 이스터 에그를 더 찾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A%A4%ED%84%B0_%EC%97%90%EA%B7%B8
https://blog.naver.com/ytower2282/222437221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