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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Dec 11. 2023

밥을 하기 싫다. 격렬히 하기 싫다.


  며칠째 밥을 쉬었다. 빨래도 청소도 쉬었다. 누가 나한테 휴가를 준 것은 아니고.. 아! 독감이 나한테 휴가를 줬다고 해야 맞나? 그것도 휴가가 맞다면.. 하하


  연이은 아이 둘의 독감으로 밤새 열 재고, 해열제 먹이고를 3일 정도 하며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래도 독감주사치료제 덕분에 아이들의 고열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감기약만 잘 먹으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내 몸이 스멀스멀 녹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열을 재보니 37.5도.. 아이들 감기 이전부터 비염으로 코랑 목이 안 좋아서 내과에서 약을 받아먹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독감인지 애매했다. 아직 둘째는 독감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내가 독감이면 아이와의 거리 두기를 해야 하므로 다음날 아침 내과에 찾아가 독감검사를 하니 맞단다. 아침이 되니 또 정상체온이어서 약간 안심을 했었는데 내가 먹는 감기약에 해열진통제가 들어있어서 증상이 가려졌을 거란다.


  두 아이가 맞은 독감주사치료제가 그 병원에는 없다고 하여 타미플루 5일 치를 받은 것이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그때 꾀가 났다. 집안일을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상태였지만 또 그렇게까지 힘들게 해야 하나 싶었다. 아이들 간호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었는데 독감 핑계라도 대서 실컷 잘 생각이었다. 마침 주말도 얼마 안 남았으니 집안일은 남편한테 은근슬쩍 미뤘다. 그리고 어제까지 4일 동안 밥을 안 했다. 남편이 밥을 해서 친정엄마가 주신 사골국물에 후루룩 말아먹기도 하고, 짜장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먹기도 하며 끼니를 어찌어찌 해결해 나갔다. 그러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 남은 국과 남편이 한 밥으로 대충 저녁을 먹는데 왠지 오늘, 월요일부터는 밥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내일부터는 밥 좀 해주라고 한 것도 아니고, 밥을 한다고 해봐야 제대로 하는 것은 하루에 저녁 한 끼이다. 멋들어지게 한 상 차리는 것도 아니고 사실 마음먹으면 후딱 해서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참 하기 싫다. 밥은 안 하고 있었는데 오늘 하려니.. 아니다. 사실은 밥을 안 하고 있던 어제, 그제, 그 전날도 밥을 하기 싫었다. 분명 밥을 안 하고 있었는데 배달음식을 고르고 있던 그때도, 오후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그때도 내 머릿속에서는 외치고 있었다.

 ‘밥 하기 싫다~ 정말 싫다! 격렬히 하기 싫다~~~!’


  이 정도면 나는 정말 밥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싶다. 그런데 일단 복직 전까지는 방법이 없다. 시켜 먹는 반찬도 있지만 내 월급까지 가져와야 그럴 여유가 생길 것 같고, 친정엄마 반찬도 바라지 않는다. 반찬을 해다 주신다고 해도 우리 식구는 먹던 반찬을 또 내어주면 잘 먹지도 않아서 결국 그날 반찬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첫째 아이는 배달음식마저도 여러 번 시키면 오늘은 엄마가 해주는 밥 먹을 수 있냐는 말을 하니 안 해 줄 수가 없다. 엄마 음식 솜씨가 퍽이나 좋은 것도 아닌데.. 그래도 집밥이 먹고 싶은 건 애나 어른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근데 나도 누가 차려주는 집밥 먹고 싶다~~!!!


  문득 휴직 전이었던 지난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마침 옆에 서계시던 교장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퇴직을 하면 다른 것보다도 제일 아쉬울 것이 급식이라고.. 여자 교장선생님이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셨지 싶다. 그렇다. 누가 이렇게 반찬 서너 가지에 따뜻한 밥과 국을 매일 다르게 챙겨주겠는가. 아이들은 반찬이 맛없네, 안 어울리네 말이 많아도 결혼한 여자선생님들에게는 급식시간이 세 끼니 중에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급식을 먹으면서도 저녁에는 뭐해먹나 서로 물어보는 걸 보면 집에서 밥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찬 고민은 머릿속에서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는 듯하다. 하긴 결국 모두가 하루 세 끼 먹고사는데 사소한 듯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이 먹는 문제이다.


  가끔 맛있는 밥상을 정갈하게 차려서 SNS에 올려두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다. 또 한 편으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나도 음식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가족들에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기 좋게 내어서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텐데.. 그래도 주변에 밥 하기 싫다는 사람들도 많으니 나만 그런 건 아니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런데 이쯤 되니 조금 의심스럽긴 하다. 이렇게 글을 쓸 정도로 밥이 하기 싫은 거면 내가 유독 더 싫어하는 건가, 내가 좀 많이 게으른 건가 하는 그런 의심이..

  어쨌든 오늘도 참 밥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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