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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22. 2024

막무가내 셀프 인테리어

근본 없이 인테리어 하기

나는 인테리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자이다.

약 십여 년 전 열 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놓고도 돈이 없어 인테리어를 못하고 덩그러니 소파 하나와 프린터기 한대만 가져다 놓고 몇 달이 지나던 어느 날, 구청직원이 텅 빈 사무실을 보고는 국가지원 사업을 하려면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허가를 내주겠다며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인테리어를 완성하라며 다소 냉정하게 쏘아붙이고 가 버렸다.

무척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재정도 인력도 없는 탓에 그냥저냥 시간만 보내며 출장으로만 국가 바우처 일을 하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 들어가 견적을 안 내 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얼추 천만 원 단위는 우습게 넘어가야 하고 거기에 비품까지 들여놓으려면 상당한 금액이 필요한데 일주일이라니...

물론 구청직원은 영세한 1인 소상공인인 우리에게 완벽함을 바란게 아니라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어 놓으라는 의미의 전달을 하고 간 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 남편에게 손 벌릴 처지가 아니었던 나는 인터넷을 뒤져 바닥재와 폼보드, 스티커 등을 사다 붙이고 꾸미는 등의 근본 없는 인테리어의 첫번째 시작을 열었다.

우연히 가게에 들르신 시부모님을 보니 천군만마를 만난 듯했다.

 아버님께는 칼로 재단한 바닥재를 붙여달라 하고, 어머님께는 폼보드를 붙여 달라고 부탁드리니 두 팔을 걷고 도와주신다.

손이 부족한지라 폼보드를 붙일 때는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도 뒷면 스티커를 떼라며 닦달을 하기도 했다.

벽을 장식할 스티커를 붙일 때는 '당신이 스티커를 거꾸로 붙여 새가 배를 보이고 날아간다', '당신이 붙인 건 똑바로 되었는지 아느냐'시며 시부모님 두 분이 투닥거리기도 했다.

중고 비품들을 들이고, 커튼을 다는 등 이틀 만에 대략의 인테리어를 끝내고, 구청 직원을 부르자 이토록 짧은 시간 동안 어쩌면 이렇게 꾸몄느냐며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별 볼 일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그런 미천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우릴 입소문을 통해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 덕에 그냥저냥 먹고살 수 있게는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코로나라는 위기가 심각하게 찾아왔다.

직접적인 대면 서비스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어느 날 장애인들은 어떻게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는지 취재하기 위해 기자분이 우리 가게에 다녀가셨고 그 까닭에 남편이 SBS 8시 뉴스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평소 매출의 20%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상공인들은 임대료가 몇 달 치씩 밀리고, 종업원이 자의 반 타의 반 그만둔다는 뉴스를 보며, 지금 우리 앞의 현실을 보자니 우리 또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고 치자..."


"무슨 사고?"


"우리 사무실의 같은 층에 빈 사무실이 생겼는데 그거 우리가 하나 더 얻자..."


"음... 그래....?"


"사람들이 소비는 어떻게든 하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게다가 건물 뒤에 전부 재개발 돼서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하고 있잖아... 이걸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많았지만 아닌 말로 눈먼 내가 이거 그만 두면 또 뭘 하겠어. 그러느니 그냥 초강수를 두자..."


"돈은??"


"소액 대출 내야지...."


나는 알았다.

소액 대출이라면....

텅 빈 사무실을 얻어 놓기만 한다면 인테리어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고 허접한 몸뚱이를 놀려서라도 어떻게든 해 내고야 말 것이라는 굳이 갖지 않아도 될 나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믿음이 단단하다는 것을.....


소상공인 코로나 지원금과 대출을 더 한 금액에서 보증금을 제한 예산 천만 원으로 비품과 인테리어를 어찌할 것인가...

시작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

이 황량함을 나는 무엇으로 메꾼단 말인가....

14평이 아니라 140평과도 같은 체감이다.


이날부터 줄자를 내 분신처럼 들고 다니며 바닥에 저렇게 굴러다니는 대부업체 메모장을 주워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이상한 도면을 수십 장씩 그려 대기 시작했다.


일단 청소를 하고 가벽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가벽을 내가 혼자 세운다는 걸 이리저리 궁리를 해 봐도 이건 이래서 힘들 것 같고, 그건 그래서 힘들 것 같아 '인기통' 카페에 들어가 가벽 목수님들께 견적을 내 보았다.

260만 원에 시공해 주시겠다는 분이 계셨다.

공사 기간 중 전기선을 따로 빼야 할 것 같아 가벽 목수님의 아는 분을 모셔다 50만 원을 드렸다.

나는 그동안 수시로 햄버거, 만두, 초밥 등을 사다 나르며 기분을 맞춰 드렸다.

창도 예쁘게 내주시고, 가벽 공사가 끝나니 인테리어의 반은 끝난 듯하다.

이제 남은 금액 690만 원.....


두번째로,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무슨 색으로 칠해야 하나....

어떤 색으로 칠해야 너무 튀지도 않고, 너무 안 튀지도 않고....

머리가 아프다.


'그래... 여기에 대한 해답은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순수한 우리 막내, 일곱 살 딸이 해 주실 거야!!!!'


"내 사랑~~ 우리 가게 인테리어 엄마가 하는 거 알지?"


"응, 그때 목수 아저씨가 벽 만들어 주셨잖아..."


"근데 말이야... 여기 무슨 색을 칠하지?"


"엄마 보라색 좋아하잖아.... 나도 엄마처럼 보라색 좋아하고... 그러니까 벽은 연보라색으로 칠하고, 문이랑 창문 이런 데는 좀 더 진한 보라색으로 칠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으래??? 알았어... 고마워 엄마딸~~~"


나는 어떤 보라색을 칠하면 좋을까 또 밤낮으로 눈을 치 뜨고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에 앞서 바닥에 모두 보양재를 깔아놓고 테이프로 마무리 한 채, 가벽에 난 수백 개의 타카 구멍, 크랙들을 메꾸는 퍼티 작업을 하기 위해 온갖 재료를 구매해서 물에 개어 바르고 펴고 하기를 2~3일에 걸쳐 작업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페인트칠.....

안 되겠다. 아버님과 큰아들을 불러서 함께 해야지 안 그러다간 공사가 끝나기 전, 목숨을 다 할 것 같았다.

일단 문짝 3개는 떼어서 복도에 기대어 놓는다.

 

옆사무실과 붙어 있던 곳이라 저렇게 퍼런 문까지 있다니... 손잡이를 떼어내고 뻥 뚫린 곳은 메꾸고 비전문가 세 명이서 며칠에 걸쳐 죽도록 페인트칠을 한다.

나는 아버님과 아들이 페인트칠 한 곳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메꾸고 다시 칠하고를 반복한다.

복도에도 비닐을 널찍하게 깔아놓고, 아들과 둘이서 떼어둔 문과 현관을 색칠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다른 사무실 직원들과 청소 아주머니, 관리 소장, 경비실 직원 분들이 오며 가며 파이팅 해 주었다.

아..... 드디어 페인트칠이 끝나는 순간이다...

아무리 먹고사는 일이라지만 어떻게들 하시는지....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바닥 공사를 해야 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패널을 깔기로 했는데 전기 패널 시공을 내가 직접 하자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사람을 쓰자니 어쨌든 나는 돈을 최대한 절약해야 하기 때문에 이 궁리 저 궁리를 하지만 머리만 아프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전기 패널 DIY 제품이었다.

패널 한 장에 전기 선이 내장되어 있어 피복을 벗겨 연결만 해 주면 되는데 그 한 장 가격이 비싸기에 모서리나 잘리는 부분엔 전기 선이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구매를 하면 된다고 한다.

대략의 도면을 그려 메일로 보내드리며 견적을 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전기패널을 150여만 원에 구입한다.

페인트와 부자재비 27만 원쯤, 기사님 간식비 등 어쩌고저쩌고 해서 잔액은 약 5백만 원이다.

전라도 영암에서 전기패널을 화물택배로 보내주신다는데 화물택배야 실어주기만 하는 것이지 하차와 짐 옮기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몫인데 아들내미는 학교 가고, 연세 많으신 아버님을 계속 부르기도 뭣 해서 나와 남편이 나가 서 있었다.


시각장애인 남자와 쪼그마한 여자 한 명.......

패널 한 장만 해도 안에 내장된 게 많아 크고 무거운데 그 많은 것을 변변찮은 둘이서 들고 간다고 생각하니 기사님은 그 기막힌 광경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다.

기사님은 팔을 걷어붙이고 물건을 내려 주시고 그나마 남편이 아래서 조심조심 패널을 받아 한쪽에 세워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자 지나가던 청소 아주머니가 우리 위층 고시원 아저씨들 몇 명을 섭외해 도움을 청하신 모양이다.

모두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5층까지 열심히 무거운 패널을 날랐다.

너무나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그 친절을 거절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으니 나는 대신 슈퍼에 가서 음료수라도 몇 상자씩 사 들고 와 사례를 하니 모두 안 받으시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걸 간신히 안겨 드렸다.


이제 도면대로 패널 작업을 해야 하는 고독하고 혹독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보양재를 걷어낸 후, 바닥에 먼저 우레탄을 깔고 누런 테이프를 붙여 밑 작업을 한 뒤, 그 위에 도면대로 패널을 깔아야 한다.

바닥 난방이 잘 되는지 실험을 해야 했기에 직원 대기실 작은 공간부터 시작해 본다.

우선 전기선이 내장되어 있는 패널부터 깔고 각각 암, 수 피복을 벗겨 연결하기를 수십 번이다.

그리고 조절기를 전동 드릴로 벽에 고정하고, 적당한 길이에 맞추어 쫄대를 붙인 후 피복을 벗겨 연결했던 전기선을 쫄대 안에 넣고 커버를 씌우는 등....


꿈에서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짓을 하고 있는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이제 정말 바닥에 온기가 느껴지는지 확인할 차례......

떨리는 마음으로 코드를 꽂고 버튼을 누르니 숫자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가 따뜻해진다....


"와~!!! 된다... 돼~!!!!!!"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르키메데스가 황금률을 발견하고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옆사무실 남편에게도 달려가고, 아들 딸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자투리나 벽 끝은 일일이 길이를 재어 자를 대고 네임펜으로 선을 긋고 패널을 잘라야 하는데 만만하게 실톱으로 자르다가 어깨고 뭐고 작살이 날 지경이다.

아니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의 패널을 잘랐을 뿐인데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골이 울려서 그날 일을 그만두어야 할 지경이었다.

당장 지역 중고 시장에서 전기톱을 검색해 보고는 버스를 타고 가서 딱 한 번 썼다는 가정용 전기톱 세트를 사 왔다.

그것 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마스크를 쓰고 안 쓰는 패널을 쌓아놓고 발로 한쪽을 밟고 '지 이이이 잉' 소음을 내며 일일이 패널을 자른다.

덜덜 떨리는 통에 그려둔 선대로 잘라지고 있는 건지 착시현상이 일어 판별하기도 쉽지가 않다.

미세한 나뭇가루를 치우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다.

패널 틈새를 실리콘으로 메꾸고 모서리엔 쫄대를 붙여 마무리 작업을 한다.


저녁엔 짜장을 시켜 먹고, 막내는 큰아이들이 교대로 돌보며 나는 열한 시, 열 두시나 돼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

부족한 것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점점 완성되어 가는 내부를 보며 나 스스로에게 아끼지 않는 칭찬을 퍼붓는다.

이 사람, 저 사람들도 수시로 들어와서는


"예전에 인테리어를 해 본 적이 있어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허, 참.... 이걸 어떻게 했대 그래??"


자, 이젠 커튼레일 작업을 해야 한다.

그냥 업자를 불러서 할까 하다가도 돈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절절 흔든다.


이런 이상한 메모들을 하면서 커튼레일 코너를 몇 도로 구부려야 할지... 레일색은 어떤 것으로 할지, 커튼은 벽과 같은 보라색 계열의 어떤 것이 좋을지 또 머리가 아파온다.

인터넷 쇼핑몰의 사장님과 통화를 하며 이게 길어서 화물에 실리는지 안 실리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드디어...  커튼레일 또한 도착했다.

큰아들을 불러다 한쪽을 잡아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내가 잡고 전동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으려는데 너무 무거워 팔이 후들거리고 도저히 도저히 내 힘으로는 커튼레일을 천정에 시공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남편은 건물 관리소장님께 우리가 사 둔 레일 조명과 커튼레일 작업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니 우리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우리는 소정의 금일봉을 챙겨 드렸다.

커튼레일과 커튼값 47만 원, 레일 조명 9만 원, 경비 아저씨와 소장님, 청소 아주머니와 함께 설치비로 25만 원, 약 80만 원이 들었다. 남은 금액 420만 원...

이제 비품을 사 넣어야 한다.

싸면서도 예쁜 것을 고르려 눈알이 빠지게 고른 것들이었다.

냉장고 44만 원 정도, 건식 사우나 나란히 두 개 112만 원, 신발장 9만 5천 원, 거울 3만 원, 휴지통.....

남은 금액 250여만 원... 

자그마한 공간 안에 사야 할게 수십 가지다.

배선함과 옆 사무실 문짝을 가리는데 필요한 가림막은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들을 사다 꼭꼬핀으로 고정하고, 침대를 새것 같은 중고로 네개를 들여 두개의 방에 나누어 설치했다.

각 방마다 냉온풍기 3대를 설치하는데만 해도 남은 금액이 다 들어갔다.

침대보, 휴지 케이스 약간 오버되는 자잘한 금액은 돈이 벌리는 대로 충당한다.

그리고 간판 없이 영업하던 우리는 동영상이 나오는 led 간판을 320만 원에 할부로 구입해 건물 외벽에 부착했다.


몇 년 후, 우연히 만나게 된 교회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면 우리 가게 건물을 지나며 간판을 보게 되는데 그걸 보며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며 지나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어찌나 감사하던지....

집사님의 예쁜 마음씨에 눈물이 날듯 했다.


불경기인 탓에 물밀듯 고객이 밀려오지는 않아도 남편의 예상대로 재건축된 아파트 단지의 손님이 심심찮게 찾아오고, 또 알음알음 우리를 찾아주시는 덕분에 우리 여섯 명의 가족이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다른 샵은 번쩍번쩍, 사진만 보아도 혹한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곳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인테리어라고는 한 개도 모르는 일자 무식꾼 아줌마가 이뤄낸 쾌거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결핍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고...

돈이 없고, 손님이 없어 시작된 일....

적당한 결핍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말은 나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위에 이렇게 얘기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셀프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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