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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an 29. 2024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

오늘 저녁엔 뭘 먹지?

매일 하는 고민이다.

휴대폰 알림 메시지를 열어보니 집 근처 마트의 세일 정보다.

무 한 개에 천 원이란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지인이 주었던 콩나물이 있다.

겨울무와 콩나물의 조합이라면? 게다가 양지 국거리를 할인한다면?

그럼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달리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소고기 뭇국'은 운명처럼 그날 우리 집 저녁 메뉴가 되었다.

사진은 맛없어 보이게 나왔지만 그건 나의 비루한 사진 실력 때문이지 맛과는 별개일 수도 있다. 선입견을 버리자

서울에 이사 와서 지인의 집에 초대되어 갔던 어느 날이었다.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기에 당연히 사진에서 보던 빨간 국을 생각했던 나는 허연 소고깃국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남편에게 소고깃국을 끓인다며 처음 이 음식을 해 주었던 날, 자기 평생 맑은 소고깃국을 먹고 살아왔던 남편은 이것은 육개장도 아닌 것이 소고기 국밥도 아닌 것이 정체 불분명한 음식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소괴깃국'이라 하면 콩나물도 한 움큼 들어가고 대파도 길쭉길쭉 크게 썰어 넣은 데다 고춧가루와 고기가 어우러져 고깃기름이 빨갛고 영롱하게 떠오르는 스펙터클한 국을 떠올리게 된다.


맑은 국이나 빨간 국이나 소고기 뭇국을 끓이는 방법이야 비슷하겠지만 고기를 볶을 때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든다는 것과, 콩나물이 들어가 풍성해 보인다는 점(맑은 국에도 콩나물이 들어가기도 안들어가기도 한다), 대파를 어슷 썰기보다 4-5센티 길이로 크게 썰어 육개장과 비슷한 형태로 끓인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것이야말로 따로국밥의 정석이며 겨울에 어울리는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 소고기 뭇국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무'라는 식재료의 특성을 살펴보자.

겉보기엔 크고 단단하여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할 것 같지만 열을 가하면 물렁물렁 해 지며 어떤 재료를 넣어도 맛과 양념이 잘 베어 든다는 장점이 있다.

본연의 색깔 또한 하얀색이어서 고춧가루 물을 여과 없이 잘 빨아들인다.

게다가 기관지와 위에 좋은 디아스타제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속이 더부룩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하며 단백질과 지방의 소화를 돕는 에스테라아제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짜장이나 치킨 등을 먹을 때 단무지나 무 초절임, 일명 치킨무를 함께 먹는 것이 다 일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무에 함유된 시니그린이란 성분은 호흡기 점막을 자극해 점액 분비가 활발해져 끈적한 가래가 묽게 되어 배출을 용이하게 해 주는 데 이는 열을 가하면 파괴 되기에 무김치나, 무생채 등의 생채류의 형식으로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무수'라고도 하고 경상도에서는 '무시'라고 불리는 이 무는 생으로 먹어도, 익혀 먹어도,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훌륭한 식재료이다.

그리고 겨울무는 산삼 위에 동(冬) 삼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남자가 칼을 빼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는 말은 어쩌면 무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말인 듯하다.

산삼 위의 것과 비교되는 식재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콩나물은 우리가 익히 알듯 콩으로 재배하는 음식인지라 콩이 가진 영양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콩에는 없는 비타민C가 생성된다.

거기에 숙취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여 시원한 맛을 더 하니 국물 음식에 제격인 데다 가격이 싸서 일반 가정에서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식재료이다.

보통 콩나물을 다듬는다는 표현을 할 때 껍질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나 식감을 위해 머리와 꼬리를 떼는 경우도 있으나 오히려 줄기보다는 머리와 꼬리에 영양분이 더욱 많다고 하니 나는 웬만해서는 콩나물 전체를 요리에 다 이용하는 편이다.

열을 가하더라도 무처럼 식감이 크게 변하지 않는 탓에 국에 넣으면 씹는 재미도 쏠쏠하다.


항상 부재료로 쓰이는 대파는 육개장이나 경상도식 소고기 국에선 그 위상이 한껏 올라간다.

한식의 향신 채소로써의 역할만이 아니라 길쭉길쭉 크게 썰어 넣어 마치 대파가 주재료의 하나인 듯한 느낌을 주며 음식을 더욱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다.

특히 잡내를 잡아주고, 은근한 단맛으로 감칠맛을 극대화하며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성분이 있어 고깃국에서의 역할이 다 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맑은 소고깃국과 시각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고춧가루이다.

대파, 마늘, 고춧가루는 한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삼총사로 여겨질 만큼 여러 음식에 첨가되는 다재다능함을 지니고 있다.

캡사이신 특유의 매운맛이 자칫 느끼하기 쉬운 고깃국에 칼칼함을 더 해 주고, 색감이 더 해 져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고춧가루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하는데 흔히 쓰이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로 오히려 일본보다 한식에서 거의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는 재료가 되었다.

특히나 윗지방 보다 아랫지방인 경상도에서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 음식이 많은 건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향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다.


7-8십 년 전쯤 친정 엄마가 어렸을 때 세 살 터울인 오빠가 가끔 힘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다며 대청마루에 드러누울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외할머니가 한달음에 달려가 소고기를 사 와서 가마솥에 펄펄 끓여낸 '소고깃국' 한 그릇이 약이 된 까닭인지 고기가 먹고 싶었던 심산이었던지 모를 일이지만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가끔 엄마가 소고깃 국을 끓여주던 어린 시절,  내가 고기를 이리저리 밀어내었다가 마지막에 남은 고기 건더기만 숟가락으로 퍼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외삼촌이 어렸을 때 꼭 그랬었다며 그런 나를 보면 오빠 생각이 난다고 했었다.


맑은 국은 그것대로 고소하고 적당한 기름진 맛에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부담 없는 한 끼가 되고, 얼큰한 국은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으니 이 겨울이 다 가기 전, 동삼이라 하는 겨울무를 넣고 끓인 소고기 뭇국을 식탁에 한 번쯤 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배추김치나 무 김치 외에는 다른 반찬을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으니 식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그것만큼 부담을 더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일명: 소괴깃국) 레시피


1. 적당히 열이 오른 냄비나 웍에 2~3센티로 나박나박 얇게 썬 무와 키친타월로 적당히 핏물을 뺀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다 고깃기름이 생길 때,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고 고춧기름을 낸다는 생각으로 볶아준다.(고기만 넣고 볶다 7~8십 프로쯤 익었을 때 무를 나중에 넣기도 하나 나는 처음부터 같이 볶는다. 때로는 마늘과 국간장을 넣어 함께 볶기도 한다. 고춧가루가 타지 않게 볶는 것이 관건이다.)

2. 재료가 적당히 볶아지면 육수(다시마, 채수 또는 각자 좋아하는 국물의 베이스), 또는 생수를 넣고 뚜껑을 덮는다.

3. 국이 끓어오를 때쯤, 다진 마늘, 4-5센티로 길쭉길쭉 썰어낸 대파 1-2대, 콩나물을 모두 넣어 콩나물의 비린 맛이 나지 않도록 다시 뚜껑을 덮는다.(이때 각자의 기호에 맞게 버섯과 다른 재료를 넣기도 하나 나는 콩나물과 대파만 넣는다)

4. 국이 끓어오를 때 간을 하는 사람도, 아까처럼 처음부터 밑간을 하고 보충하기도, 중간에 간을 하기도 하는데 각자 기호대로 국간장, 액젓, 소금으로 간을 한다. 맛있는 국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이긴 하다.

5. 다 끓여진 국에 후춧가루를 뿌리기도 하고, 각자 개인 그릇에 국을 옮겨 담은 뒤 후춧가루로 향과 맛을 더 한다.

6. 음식은 각각의 가풍과 기호에 따라 방법과 순서도 달라지니 각자 좋을 대로 그 맛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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