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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n 14. 2024

그들은 무얼 먹고살까?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그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미래의 내 남편이 시각장애인일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주위에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의 삶을 생각할 계기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였나?


 "시각장애인의 생존을 보장하라!!!"


"시각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토요일에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텔레비전에서는 시각장애인이 거리에 모여 데모를 하는 장면이 뉴스의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한 기자가 시각장애인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려드리겠다며 취재한 영상이 나온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여자 맹인이 지팡이가 없이 더듬더듬 양쪽에 주르륵 붙어있는 복도식 어느 방 하나에 들어가고, 닫힌 문 앞에 벗어둔 약 3~4센티 높이의 검은색 통굽 슬리퍼 한 켤레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마 시술소에서 일하는 상황이었을 테고 익숙한 장소이기에 지팡이가 없이 손으로 더듬으며 손님이 기다리는 방으로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뜨거운 땡볕 아래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에 앉아 절규하던 그 장면은 비장애인들도 합법적인 안마를 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라는 데 대한 반대집회였을 것이다. 아마 그 당시 남편도 그 집회에 참여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에게만 국가 공인 안마 자격을 인정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 외의 자격증은 단체에서 주는 수료증으로 민간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선을 그어 이야기하자면 시각장애인이 운영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이 직접 지압 서비스를 하지 않는 여타 다른 안마는 불법 또는 편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운영하는 특정 마사지샵을 신고한다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안마사들도 많이 없다.

예전엔 지금처럼 비장애인이 안마 사업을 하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공급이 한정되어 소위 연예인, 사업가, 외국인 관광객, 돈 많은 주부, 성매매에 종사하는 아가씨 등이 누리는 고급 서비스 문화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지금은 비장애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시장이 저변화되다 보니 서로 가격경쟁을 하며 베트남 안마, 중국 안마 등이 대거 유입되고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개인병원에서 도수 치료로 실비 보험까지 적용되다 보니 수기 치료, 마사지, 안마는 대중적인 여가문화로 바뀌어 가고 그만큼 문턱이 낮아졌다.


"우리의 생존권을 절대 보장하라!!"


이런 구호를 외치며 삭발을 하고, 투신을 하기에는 이젠 비장애인 안마 시장이 너무나 거대해져 버렸다.

그러니 안마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아 좋을지 모르겠으나 어떤 일이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게 되는 법....

당연히 시설, 자금, 아이디어 등의 모든 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의 마사지, 안마, 지압, 침 사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주도권을 가질 수 없으니 대기업과 정안인들에게 그 자리를 뺏기고 있다.

종종 성공하는 시각장애인들도 있지만 모든 시각장애인들이 사업성과 기획력을 가졌겠는가? 자금이 있겠는가? 그나마도 약시, 또는 중도 실명자로서 기존에 다른 일을 해 봤던 사람들이 전맹인 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안마업을 하며 생존을 유지하던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은 그럼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정말 비참하지만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현재 '기초수급권자'로 내몰리며 장애인이기에 장애인처럼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점점 더 확대 조성 되고 있다.

그게 어쩌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사는 나로서는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을 벌면 수급권이 없어지게 되니 언제 잘리게 될지도 모르는 좁디좁은 안마업에 온전히 종사할 수도 없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와 인식이 바뀌지 않으니 예전에 한때 돈 좀 벌었다는 기성 시각장애인들을 제외하고는 하루하루 그냥저냥 국가의 좀을 먹으며 사는 그야말로 장애인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엔 사십 대 초반의 여자 손님이 남편과 통화로 상담 할 때는 호의적이었는데 막상 남편을 보자 몸이 뒤로 젖혀지도록 깜짝 놀라며 저 사람이 내 몸을 만지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차마 내가 그의 부인이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유일하게 국가공인 안마자격을 가졌다고 하자 그걸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말을 너무 씩씩하게 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검색만 해 봐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을 마치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는 듯 의심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35년 동안 이 일을 해 온 남편에게 어떤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받았는지 다 얘기해 보라고 했다.

이미 수십 년 전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그 분야에 대한 수없는 임상과 연구의 데이터가 쌓여있는 그를 보고 말이다...

결국, 서비스를 받지 않고 아주 불쾌한 얼굴로 다시 돌아갔지만 내 가슴속엔 그와는 비교 될 수 없는 불쾌감과 커다란 생채기가 남게 되었다.


매 해마다, 분기마다 비시각장애인 마사지사들이 의료법 관련 조항에 청구하는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한 의료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으며 의료법 82조 1항에도 안마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시각장애인으로 안마교육, 수련 과정을 거쳐 시도지사에게 자격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82조 3항에 따르면 시도지사에게 안마사 자격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안마원이나 안마 시술소를 개설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88조 3호에는 안마사 자격 없이 영리 목적으로 안마를 하면 형사 처벌을 하도록 하는 조항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안마업을 시각장애인에게 독점시키면 그 외 다른 국민의 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가 침해된다고 생각할 테고 그게 사실이지만 안마업은 시각장애인이 유일하게 생존권을 보장받는 직업이기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 시각장애인 안마원에 찾아가 안마를 받는 비율이 몇 프로나 되는가... 만약 실낱 같은 그 고삐마저 풀린다면 들은 거의 대부분이 직업을 잃고, 또는 자율권을 비시각장애인에게 박탈 당해 그들이 고용주가 되고 시각장애인은 을의 입장에서 일하는 환경이 만들어질게 너무도 자명하다.

아니... 사실 그런 수순을 서서히 밟아가고 있고, 이들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생존의 위태로움을 표면적으로 느끼고 있다.


각장애인 안마 교육은 중도 실명자는 수련원에서,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맹학교에서 2년 동안 정식 교과 과목으로 교육 받는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2년 동안 체계적인 실습 및 이론 수업을 비롯해 해부학과 침 수업을 함께 받게 된다.

이들은 팔꿈치나 손바닥으로 누르거나 돌리는 등의 방법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고타, 유연, 압박 등의 수기요법을 이용하나 주로 손가락을 이용한 지압법을 가장 많이 구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엄지 손가락인데 그러다 보니 안마를 처음 배울 때는 숟가락도 제대로 쥘 수 없을 정도로 엄지 손가락(엄지구: 엄지 손가락 아래 볼록한 손바닥 부위)이 퉁퉁 붓고 열이 오르내리는 일이 수십 차례 반복 되며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니 안마사들의 아귀힘은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강하고, 촉각이 발달되어 있으니 병증과 뼈의 상태를 판별하는 것도 굉장히 정밀하다.

물론 모든 것이 개인의 역량에 따른 것이니 배운 것을 잘 활용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비장애인보다 안마를 잘할 수도, 그보다 더 형편없는 실력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의 남편은 점역된 의학서적도 많이 보고(남편은 한의학적인 이론으로 침을 놓지 않고 양학의 방법인 신경체계 전달법을 이용한다), 워낙 감각도 뛰어난 데다 자신의 몸에 직접 임상도 하면서 열심히 연구하며 축적된 35년의 세월이 있다.

남편이 생각하는 명의는 직접 그 사람의 병을 잘 고치는 것도 해당되지만 알맞은 치료기관에 빨리 보내드리는 것도 명의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판별하여 치료가 될 수 없는 환자는 즉시 다른 곳으로 보내드린다.

예를 들면 이미 갑상선 검사를 하고 온 고객을 보고 갑상선이 있으니 병원에 가 보라 했다.

자신은 이미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남편을 믿었는지 병원에 다시 찾아가 정밀 검사를 요구하니 갑상선 초기 증세가 나타났다며 일찍 약물 치료를 받고 완치를 받았다고 했다.

또는 어떤 분의 뱃속에 덩어리 세 개가 잡혀 빨리 병원으로 가 보시라 했고,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혈액이 굳어 덩어리가 네 개가 있다며 시술을 받고 큰 일을 면 할 수 있었다는데 의사가 이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고 놀라서 물었다고 다.

그 외 때로는 의사가 사진상으로도 잡아내지 못하는 오십견, 디스크, 족저 근막염 말하자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부터 부인병과 오장육부의 질환을 손 감각으로만으로도 정확하게 알아내고 교정 및 침치료, 수기 안마를 하여 낫게 하니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못 하게 된 경우도 물어물어 알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가끔은 촬영이 연일 있어 수술은 절대 할 수 없는 연예인들도 찾아오거나 출장을 가게 되는 일도 있다.

때로는 우울증 여부까지 알아내어 몸을 벌떡 일으켜 놀라는 일도 있고, 집안의 유전병을 알아내기도 하니 가끔 점집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치료, 클리닉'이란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면 의학계에서 이들을 가만 두지 않고, 침을 이용한 방법도 3호침 이하만 가능하며 그 이상의 것을 사용하면 한의학계에서도 고소, 고발을 하거나 법적 제재를 받게 되어 실제 법정에 서는 일이 왕왕 있다.

그렇기에 남편은 절대 침 치료만으로 돈을 받아 본 일이 없다.

광고도 하지 않고, 나 잘났다고 하지도 않으며, 어려운 이들에게는 공짜 침도 많이 놔주기에 우리 둘은 큰돈을 벌기는 틀린 사람들이다.


또한 시대 변화에 따라 성매매 업소가 단속 대상이 되면서 안마 시술소 또한 퇴거의 대상이며 이는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도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것이다.

자정해야 하고, 없어져야 하는 나쁜 유물이지만 한 때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시술소에서 일을 했던 정서가 있기에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지금 시각장애인계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 중 안마 시술소를 운영하며 꽤나 많은 금전적 이익을 보았던 이들이 많기에 뒤집어엎으려 해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의사에게 치이고, 한의사들에게 치이고, 비장애인들에게 마사지 시장도 점점 빼앗겨 입지가 좁아진 이들의 살 길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

며칠 전에도 남편 윗세대 선배들은 거리에서 피리를 불며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면 안마가 필요한 아무 집에서 이쪽으로 오라 부르고, 그 소리를 따라 걸어가다 청계천에라도 빠지게 되는 날이면 일도 못하고 낭패만 보고 돌아갔다던 이야기를 하며 병신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발버둥 치며 일구어 놓은 시각장애인 안마 시장이 점점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을 보며 씁쓸해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업 다음으로 많이 종사하는 직업이 음악인데 이 또한 그 가정에 경제력이 있어야 그 과정이 순탄하며 그나마도 업을 삼아 입에 풀칠하며 일하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귀가 발달되어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일반인 비율보다 많기는 하나 그중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겨우 두 사람밖에는 없다.

그중 한 사람이 시각장애인 국회 의원인 김예지 의원이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을 그 당시 남편과 함께 만난 게 처음이었다.

남편이 고등학생일 때 맹학교 유치부였으니  요즘도 가끔 '선배님'이 아닌 '아저씨'하며 전화가 오기도 한다.

또 한 사람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남편의 4년 선배인데 학창 시절 연습실을 혼자 사용하는 것을 알고는 남편은 부러움에 몰래 숨어 레슨 받는 소릴 들으며 혼자 익히고, 눈물을 삼키고 그렇게 살아야 했다고 했다.


내가 이토록 재미없고, 관심 밖인 이야기를 매주 늘어놓는 이유는.....

누군가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주는 이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누군가라도 이러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약간의 배려와 양보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루한 이야기를 매번 하는 것이다.

그들도 이 땅에서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며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이 역차별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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