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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n 21. 2024

체험 삶의 현장

시각장애인 체험(2)

'나를 똑바로 데리고 가는 걸까?'

'지금 이 사람들은 왜 웃고 있지?'


두 눈에 안대를 착용하고 그 위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까지 들고 보니 흡사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5월의 밝은 햇살 한 줌도 들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 다른 사람의 팔을 붙잡고 길을 걷는데 어쩌다 움푹 파인 구덩이에 발목이 살짝 접질리자 괜한 의심이 든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에스컬레이터 입구 중앙에 설치된 보호대에 무릎이 찍히니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누가 어떤 표정을 지었고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웃는데 아무도 설명을 해 주지 않으니 나만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가만히 앉았거나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맞추려 애를 쓴다.


한 팀에 네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 장애, 그리고 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각각 한 사람씩을 전담해서 체험을 하는데 우리 조에서는 내가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겠다며 자청을 하게 된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본 뒤 식사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반나절 일정인데 나가기 전 모두들 점심 식사 메뉴를 뭘로 정할지 얘기하느라 시끌시끌하다.

어떤 식당을 가자 하니 그곳엔 휠체어가 넘어갈 만한 경사로가 없어서 안된단다. 그럼 어디 백반집은 경사로도 있고 값이 싸고 맛있다며 모두들 찬성하는 분위기다.


'아니 지금 백반을 먹는다니 그럼 나는 어쩌라는 말이냐... 오늘 처음 시각장애가 된 내가 뭐는 어디 있는지 뭐는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한들 질질 다 흘리고 난리가 날 텐데!!'


팀원들이 모두 바로 '아~~'하며 수긍한다.

우린 결국 김밥을 포장해 와서 공원에 앉아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김밥을 사 들고 공원에 들어서려는데 마침 교회 앞에서 전도지와 요구르트를 나눠주는 듯하다.


"어머... 자매님 같은 사람은 꼭 예수 믿어야 해요.. 꼭이요!!! 안 믿으면 안 돼요.. 꼭 예수 믿으세요!!"


'자매님 같은 사람?? 어떤 사람? 장애를 가진 불쌍한 사람?'


다른 이들에게는 한 개씩 나눠주는 요구르트를 나에겐 특별히 빨대까지 꽂아 양손에 하나씩 두 개를 쥐어주었는데 그걸 받아 들고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속 없는 웃음이 '풋'하고 터져 나온다.

그 사람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나... 하지만 중년의 여자가 빨대까지 꽂힌 요구르트를 양손에 받아 들고 있으려니 어디서부턴지 '욱' 하고 올라오는 나도 모를 서글픔은 왜일까...

'자매님 같은 사람....'이란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며 괜한 반감이 이는 것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보는 묘한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단어 하나하나가 왜곡된 가시가 되어 몸과 마음을 찔러대니 그 기분은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 쉽게 잊히지 않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박제되어 종종 떠오른다.

상대에 따라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차별, 꽤 괜찮은 사람이면 동정...

장애인이 사는 삶은 이런 건가 싶다.


그렇지... 그게 참 어렵다.

내가 시각장애인과 몸을 섞고 십수 년을 살아도 그 입장을 온전하게 알 수 없고 그들의 불편을 감소시키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것....

그들의 불편과 고충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절제된 마음... 그것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천차만별이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이제 막 시각장애인이 되어 그 입장이 된 나로서는 그들이 베푸는 선의의 말과 행동에도 배알 꼬이는 이상하고 옹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세월이 지나면 좀 무뎌질 텐데 말이다.


동네를 한 바퀴 걸어서 이동하려는데 마주 오던 자전거가 내 팔을 부딪히고는 사과도 없이 지나친 상황인 듯 하다.

나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람과 주위 팀원들이 불러 세워 항의를 하자 '내가 뭘 어쨌기에 그러느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높인다.

당사자인 나는 정확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 있고, 다른 이들과 삿대질까지 하며 싸움이 시작되려는 걸 간신히 말려서 자리를 피했다.

남편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잘못해 놓고 내가 그것에 대해 따지려 들면 남편은 자신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게 싫어서인지 나를 잡아끌었었다.

다른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고, 자신 때문에 문제가 생겨 소란스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그러한 상황일 때 너무 흥분하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잠시나마 겪어보았던 마음이다.

보행자가 있어도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삭신이 쑤시고, 주위 상황을 살피느라 바짝 신경을 쓴 탓에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다른 이들과 부딪혀 불편을 줄까 싶어 잔뜩 긴장했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 힘들어하던 일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들은 괴물과 부딪힌 것처럼 '어머!!!'하고 큰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떨어대서 민망하게 하거나 '아이씨!!'라며 한 대 칠 기세인 사람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체험을 마치고 안경과 안대를 벗겨내니 마치 성경 속의 바디매오가 눈을 뜬 것처럼 세상천지를 다 얻은 느낌이다.

갑갑하던 세상에 환한 빛이 가득하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앞으로 내가 더 잘 할게~'라며 남편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콧소리를 내자 '어이구 오늘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네~'라며 등을 쓸어준다.

시각 장애를 비롯한 여타 다른 장애인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잠깐 그들이 되어보니 안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 생각보다 더욱 만만치 않겠구나 싶다.


다른 이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아낄줄 아는 성숙한 내가 되길....

나와 너, 너와 내가 각자, 그리고 함께인 균형잡힌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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