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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n 28. 2024

목숨을 담보로 걷기

만약 내가 안대를 착용하고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어떤 이의 도움도 없이 혼자 길을 걷는다면 과연 얼마나 똑바로,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우선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관공서까지 눈을 감고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공사현장, 인도를 거의 반 이상 메운 노점상, 인도 위에 불법 주차된 차량과 길가에 자빠져 있는 자전거, 길 가운데 서 있는 뜬금없는 전동 킥보드, 휴대폰만 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사람 등 모든 상황과 사물이 무기이고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맹이든 약시이든 시각장애인이 단독 보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에피소드와 어려움이 있게 마련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나의 남편도 여태껏 수없이 많은 사고를 겪어왔지만 다행히도 불사조처럼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한창 혈기 넘치던 80년대 중반쯤 감각이 워낙 뛰어났던 그이기에 지팡이도 없이 객기를 부리며 길을 걷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한쪽 발이 푹 꺼지는 듯하더니 몸 전체가 점점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더란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두 팔을 뻗어 손바닥을 편 채 자신을 살려줄 썩은 동아줄이라도 없는지 훑어보며 떨어지던 중 수평의 쇠막대가 만져졌고,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찰나보다 빠른 그 순간 얼른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아챘고, 죽을힘을 다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더란다.

다행히도 공사 현장에 출근했던 인부에 의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고, 알고 보니 그곳은 1985년 개통된 경복궁역의 공사 현장이었다고 했다.  

그것뿐인가? 지금이야 지하철 스크린 도어라 불리는 안전문이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그전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는 시각장애인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어떤 이는 지하철 선로 아래로 떨어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 만에 깬 사람도 있다. 

남편 또한 선로 아래로 떨어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급히 위로 올라오려 했지만 곧바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놀라 벽을 더듬어 보니 옆에 작은 공간이 있더란다.

 벽에 찰싹 달라붙어 꼼짝 없이 앉아 있으니 자기 앞에 멈춰선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 열차가 또다른 승객을 태우고는 코를 베어갈 듯한 거센 바람과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굉음을 일으키며 앞을 지나갔다고 다.


건널목은 또 어떤가...

남편이 출장 일을 끝낸 후, 흰 지팡이를 들고 강남 테헤란로의 건널목을 건너던 새벽 시간, 멀리서 내달리던 차량 본닛에 부딪혀 공중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때로는 차량 진입을 막으려 세워둔 볼라드에 정강이가 찍히며 공중제비를 돌며 떨어지는 일도... 고개를 쳐든 리어카의 손잡이가 얼굴로 떨어진 일도, 광고물 부착을 막으려고 전봇대에 둘러놓은 우툴두툴한 피복에 한겨울 케인을 들고 가던 손등이 부딪혀 갈라지며 피가 줄줄 흐르는 일도... 수십 수백 가지도 넘는 위험 천만한 일들이 전쟁처럼 벌어진다.

그러니 남편의 정강이는 마치 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처럼 세월을 달리 한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하다.

어느날은 새벽녘 일을 끝내고 길을 걷는데 두 세명의 사람이 말없이 자신을 봍잡고 외투의 안주머니든 어디든 사정 없이 뒤지더란다.

누군지 물어도 대답도 없고, 돈을 찾는게 뻔한 그들에게 깔끔쟁이 남편은 그 위험 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필요하면 돈은 제가 직접 드릴테니 옷은 훼손하지 말아달라'고 했단다.


그러나 꼭 그렇게 위험천만한 사고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나 시장 안의 생선을 케인에 찍어오는 사람도 있고, 남편 또한 노점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의 바구니를 케인으로 다 들러 엎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어느 하루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웃긴 일이 있었다며 아침에 막 집에서 나와 걷고 있을 때 평소에는 없던 무언가가 가랑이 사이로 끼어 들어오더란다.

그러자 이내 "아아악~~~!!" 하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중 남편이 오가던 길을 종종 보아서인지 여자는 다행히도 오해를 풀었다는데  이유인즉슨 어떤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잠시 멈춰 서 있던 상황이었고, 이것을 알 리가 없는 남편이 평소처럼 길을 걷다 하필이면 자전거 바퀴가 가랑이 사이에 끼며 그 여자의 등에 몸을 밀착시켜 뒤에 앉은 형국이 되어 버렸으니 그 여자분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

또 요즘은 길에서도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걷는 일이 많다 보니 앞이 안 보이는 남편과 부딪히게 되는 일도 종종 있는데 어떤 사람은 흰 지팡이를 보면서도 '똑바로 보고 다니라'며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남편 혼자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마주 올라오던 사람과 부딪히게 된 모양이었다.

보행 속도가 꽤나 빠르고 덩치가 있는 남편과 부딪히면 그 탄력에 상대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자칫 큰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군지도 모를 그 사람을 두 팔로 세게 꽉 끌어안고 말았단다.

"어머!!" 하는 비명 소리에 그 상대가 어린 아가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가씨, 잘 보고 다녀요. 잘못하면 죽을 뻔했어!"라며  바쁘게 걸어내려가던 중 계단을 오르던 그 아가씨가 다시 뛰어내려오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연신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휴대폰 화면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아가씨가 미처 남편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히게 되었던 일이었다.


어떤 친구 중 한 사람은 젊은 시절 비장애인 여자분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좌식형 음식점으로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어디까지 안내를 해야 하는지 생각지 못했던 걸까? 가 신발을 벗고, 턱을 오르니 작은 계단이 하나 더 있기에 별 생각 없이  올라갔더란다.

그러자 곧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곳은 다름 아닌 좌식 밥상이었으며 손님들이 식사를 하중이었던 것이다.

손님들은 무슨 봉변인가? 설마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던중 누군가가 상 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그러니 남의 밥상 위에 덩그러니 올라서 있었던 그 일만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두고두고 창피했던 기억이라 하자 남편은 "아이고... 봉사야... 봉사야...." 하며 배꼽이 빠지게 웃었던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가 있다.

동일인물인 그 친구가 어느날 혼자 우리 집을 찾아온다기에 그날따라 남편 혼자 그 친구를 데리고 오겠다며 나가게 되었는데 영업이 끝난 식당 앞의 음식물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넘어졌는지 그때 그 옷과 신발에 밴 냄새가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아 그냥 버려야 했던 일도 있다.


그러니 그나마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도움을 요청하면 벌레 잡듯 옷자락 끝만 살짝 붙잡고 도와주는 사람, 자신은 뒤에서 리모컨 조종 하듯 '앞으로 두발, 아니 아니 왼쪽으로 세 발...' 이런 식으로 길을 알려주는 도 있다.

이거 예전에 어떤 학생이 길을 가다 귀신을 만났는데 귀신이 '앞으로 세 발발발발... 옆으로 두발발발... 학생 똥 밟았어~~~' 하던 귀신 시리즈와 비슷하지 않은가?

어떨 때는 그런 태도가 너무 기분이 나빠 혼자 알아서 가겠으니 그만하시라며 화를 내는 시각장애인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을 따라간 자리에선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좁은 인도를 따라 네다섯 명씩 기차를 만들어 보행을 돕기도 하고, 남편은 급한 대로 안전한데 세워두고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맹인을 먼저 돕는다던지 불러놓은 콜택시의 번호표를 보고 이 사람 저 사람 태워주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쁘게 움직인다.


요즘은 여름이라 동네 산책할 때는 남편도 샌들을 신을 때가 종종 있는데 나는 제대로 지나갔더라도 돌멩이나 턱에 발가락이 부딪혀 다치게 될까 봐 푹 파인 길, 높은 턱이 있다면 돌아서 간다.

할 수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면 약간 액션을 과장되게 하며 올라가는데 얼마 전 남편과 약시인 다른 지인의 보행을 동시에 돕던중 내가 잘못 돕다가 다치게 될까 봐 우려한 지인의 말에 그 사실을 이야기했었다.

웬만하면 완만한 길로 돌아서 가고, 턱이 있을 때는 약간 과장된 몸짓을 하며 올라가는데 남편이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다 하니 둘은 찐사랑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일이 있었다.

어쨌든 내가 이래 봬도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 많은 베테랑 보행 도우미이다.


나도 혼자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듯한 이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멀리서 지켜보다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 싶은 순간 지체 없이 달려가 "제가 혹시 도와드려도 될까요?"라며 먼저 손을 내민다.

그들이 혹여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저희 남편도 시각장애인이에요"라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지하철역에서 남편과 만나기로 했던 어느 날은 남편이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삐 지하철역 개찰구로 향하던 중 반대로 계단을 올라오는 젊은 시각장애인 청년을 도저히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었다.

그곳엔 대형 콘서트가 여러 개 열리는 주말의 올림픽 공원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자리에서 전화를 할 겨를도 없었기에 영문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마음이 불안했지만 혼자서 씩씩하게 가수 '김범수'의 콘서트를 찾아왔다는 그를 콘서트장 앞까지 안내해 주고 간 적이 있었다.

그도 사실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는데 생각지 않은 도움을 받게 되어 너무나 다행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생각나지 않는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존재하며 이러저러한 삶을 살면서 그들의 체면이 구겨지고 자존심 따위는 무참히 버려야 하는 흑역사를 종종 경험하다 보니 괜히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혹시라도 시각장애인에게 "혹시 제가 도와 드려도 될까요?"라는 물음에 거절을 당하더라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는 게 마음의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다.

남편과 함께 걷다가도 '저도 시각장애인입니다. 저와 아내가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정중하게 물어도 소리를 지르며 거절당하는 때도 있는데 우리도 기분이 좋을 리도 없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오죽하면 저러겠나 싶은 양가감정이 교차한다.

만약 길을 묻거나 보행에 대한 도움을 받았거나 내가 먼저 도와주어야 할 때가 있을 때는 그들 앞에서 가볍게 팔을 갖다 대면 자연스럽게 나의 팔꿈치를 잡을 것이고 반보(또는 한보인데 반보가 가장 적당하다) 정도 앞서 걷는 것이 가장 알맞은 보폭이다.


# 표지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라 불리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엘 카미니토 델 레이'라 한다.

'왕의 오솔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약 1m의 폭과 100m 이상 높이의 절벽으로 1905년 수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4년간의 공사 끝에 만들어졌으나 이후 보수 공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무너져 내릴 정도로 위험한 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사망자가 생겨나며 폐쇄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암벽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최상의 스릴을 느끼기 위해 찾는 클라이밍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단독보행을 하는 것이 마치 이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하여 연관 사진으로 올려보았다.

길을 걷거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서바이벌이기 때문이다.

혹시 어려움에 직면한 장애인들을 보게 된다면 용기 있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설혹 매몰찬 거절에 뻘쭘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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