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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l 05. 2024

깻잎을 일일이 떼어 준다고?

남편이 '시각장애인의 진로와 직업 생활'에 대해 맹학교의 고등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외부에 나가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뭐죠?"


'그거야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단독 보행이 아닐까?'


그러나 내 예상을 깨고 여기저기서 가장 많이 들리는 대답은


"밥 먹는 거요!"


"다른 사람들이랑 식사하는 거요!"


"그렇죠? 맞아요.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게 가장 어렵죠?"


학생들과 남편이 되받아치는 소리에 아주 뾰족한 수십 개의 바늘가슴을 콕콕 찌르듯하다.

물론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안위의 문제보다 사회 구성원 속에서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켜가며 당당히 함께 하고픈

그들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다소 충격이었고, 남편과 함께 하며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날  듯 한 격한 감정이 잠시 휘몰아쳤다.


내가 처음 시각장애인들의 식사를 돕게 되던 날 반찬으로 나온 깻잎을 한 장씩 떼어주던 일이 생각난다.

여태껏 수없이 많은 밥을 먹어왔지만 시각장애인들이 깻잎을 어떻게 먹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것을 일일이 밥숟가락 위에 올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터라 잠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저 깻잎 좀 올려주세요~"


"아~ 네!!!"


"선생님, 저도 올려주세요"


"선생님. 저도요"


"선생님. 여기도요"


정해진 시간에 나도 함께 식사를 끝내야 하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사는 남편의 지인은 어머님이 두고 가신 반찬을 꺼내 식사를 하려고 젓가락으로 한 움큼 반찬을 집어 입안에 넣고 보니 깻잎 장아찌 수십 장이 더란다. 생각지도 않았던 장아찌의 짠맛이 입 안 가득 퍼지며 오만상이 다 써지고 몸서리가 쳐지는 까닭에 물을 마셔봐도 뭘 해 봐도 짜고 텁텁한 기운이 가셔지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다는 얘길 해 준 적이 있었다.

그래도 혼자, 또는 같은 시각장애인들끼리 있을 때는 황당하기는 해도 부끄럽지는 않으나 외부에서 또는 정안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그 문제가 달라진다.

중화요리 집에 가서 볶음밥이나 덮밥 종류를 주문했을 때, 이걸 눈을 감고 먹는다고 생각해 보자.

사방이 뻥 뚫린 평평한 접시에 짐승처럼 입을 대고 숟가락으로 밀어 넣지 않으면 마지막쯤 남아있는 밥알을 끝까지  다 먹을 수 없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할 때 밥종류의 음식을 주문할 때는 사장님께 부탁을 드려 면기에 달라고 하거나 각각 음식이 따로 나오는 곳을 선호한다.

누군가에게 식사 대접을 받게 되어 횟집을 갔다고 가정했을 때도 회접시 아래 수북이 깔린 무채나 한천 등을 다른 반찬 위로 줄줄 끌고 와 입 안에 넣게 될 수도 있고, 반찬 아래 데코레이션용으로 깔린 모형잎이나 경계를 지어둔 은박 접시도 함께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예쁘고 정갈하게 썰어놓은 김치도 어디에 겹이 나 있는지 몰라 끝부분을 잡으려다 아랫것이 집히며 아래위가 다 섞이거나 네댓 쪽을 들고 가다 흘리기 때문에 우리 집에선 예쁘게 김치를 썰어놓지 않는다.

흐뜨러트리듯 아무렇게나 썰어놔야 집어먹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점잖게 예의를 차리고 식사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보니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가 얼마나 수치스럽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떤 지인은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가 빈번하게 마련되는 직업을 가졌지만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처음 본 정안인들과는 절대로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 모두 구겨지기 때문이다.


이토록 체면 따위가 구겨지는 일은 일상 다반사이다.

남편을 따라 간 지인의 장례식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시간이 지나며  끈끈한 양념으로 서로 달라붙어 있는 진미채 한 덩어리를 그대로 입에 넣는 장면을 목격했다.

급히 달려가 말릴 새도 없었다.

또 한 번은 옆에 앉은 시각장애인이 반찬 아래에 깔려있는 초록색 모형잎을 반찬과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려는 것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그분을 말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도시락에 경계를 만들어둔 은박 포일을 함께 집어 반찬이 뒤섞이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음식점 내부에서도 흡연을 하던 시절엔 식탁 위에 재떨이가 떡 하니 함께 올려져 있었는데 반찬 그릇 안에 든 반찬인 줄 알고 담배꽁초를 집어 들기도 하고 뼈가 나오는 음식을 먹을 땐 뱉었던 것을 모르고 다시 집어 먹을 수도 있다. 그나마 자신의 뼈를 집어 먹으면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이 먹던 것을 먹게 된다면 그런 낭패가 없다.

그러니 시각장애인의 뼈 뱉는 통은 각자 옆에 놔두거나 가까이 두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

어느 날은 시각장애인들끼리 설렁탕을 먹던 중 앞에 있던 반찬을 집어먹던 이가

"야, 여기 김치찌개도 파는 데였어? 내가 반찬 집어 먹으려다 모르고 얘 걸 먹었는데 얘는 김치찌개를 먹고 있어"라는 말에 "야, 이거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를 설렁탕에 계속 떨어뜨린 거야"라고 했단다.


시각장애인과의 식사 시간엔 그것을 돕는 사람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학창 시절 동아리 활동을 마친 후 가끔 선생님이 중국요리 집으로 데리고 갈 때가 있었는데 삼십여 명 가까운 학생들의 짜장면을 일일이 비벼주다 보면 정작 본인 것은 퉁퉁 불어 떡처럼 붙은 것을 드셔야 할 때가 있었다며 참 감사한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어떤 선생님은 자신부터 비벼서 후루룩 마시듯 얼른 먹고 나서 일일이 비벼주는 분도 있고, 배달된 짜장은 랩이 씌워진 채로 세게 흔들도록 하고 나머지를 비벼 주시는 분도 계시단다.

나 또한 남편 친구들 여러 명과 식사를 할 때면 비빔밥이 나올 땐 일일이 다 비벼드려야 한다.

그러니 고기라도 먹는 때는 뜨거운 불 앞에서 일일이 구워서 접시에 덜어드려야 하고, 밑반찬에 대한 정보, 쌈장이나 고추, 마늘 등을 채워 넣거나 추가 주문을 하는 등등의 이유로 정말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하지만 자기가 내키는 대로 고깃집에 갈 수도, 구워 먹을 수도 없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그까짓 것은 수고도 아니다.  

나는 그래도 아이들이 여럿이니 어린 시절 항상 정신없는 식사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단련이 되어 그나마 능숙하게 해 내는 편이다.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기에 사정을 봐주지도 않기 때문에 어렵기가 더 하다.

여행을 가서도 다른 집은 다들 아빠들의 몫인 일이지만 나는 혼자 숯불을 피우고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려가며 고기를 구워야 했다.

그럴 땐 남편이 이것저것 어설프게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어 주는 것이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금이야 성인이 다 된 아이들이 고기를 구워 막내와 아빠를 챙기고 딸내미는 이제 손 하나 까딱하지 말고 쉬라며 고기를 구워 내 앞에 놔주면서 '엄마는 이 힘든 일을 혼자서 어떻게 다 해 내었느냐' 묻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식사를 돕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남편 친구들도 미안한지 내 쪽으로 손을 뻗어 직접 음식을 입 안에 넣어주기도 하고, 젓가락에 짚이는 반찬이 뭐냐고 일일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들이 '야, 좀 그냥 먹어라'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식당에서 나오는 고추나 마늘 등을 찍어먹는 장이나 소스가 가운데 한 두 개 있는 것을 일일이 찾아 먹기가 힘들기에 각자 따로 주는 것이 좋은데 우리 집을 찾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소스 그릇과 접시가 일체형인 것을 여러 개 장만해 두니 설거지 또한 쉬워졌다.

만두를 먹어야 할 때는 숟가락으로 간장을 만두 위에 미리 흩뿌려놓고, 부침개가 나올 땐 잘라서 간장을 흩뿌려 각자의 앞접시에 미리 덜어놓고 위치를 알려준다.

생선은 장갑을 끼고 미리 가시를 발라내어 각자 그릇에 덜어주거나 손이 덜 가거나 깨지거나 쏟아지기 쉬운 물병과 컵 등은 미리 한 옆이나 다른 테이블에 옮겨두어 사고를 막는다.

보쌈이나 찌개처럼 함께 먹도록 나오는 음식은 남편 숟가락 위에 보쌈김치, 고기, 마늘 등을 얹어 흘리지 않고 한 번에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단체로 모임이 있는 장소에 가서는 적어도 내 반경에 있는 사람들을 두루 살펴가며 옆테이블로 옮겨가 필요한 것을 묻고 도와드려야 하기에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나 또한 비슷 시간에 식사를 마치려고 노력한다.

언젠가는 도우미가 없이 혼자 오신 약시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백숙으로 나온 오리 고기를 일일이 발라 그릇에 옮겨 드리고 밑반찬을 챙겨 드리자 '아이고...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받게 되어 너무 편하게 식사를 하게 되어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를 들으니 가슴 한편이 찡하다.

눈 뜬 사람들이야 아무것도 아닐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니....

그러니 어찌 내 남편만을 챙겨가며 음식을 먹을 수가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식사 보조를 해야 할 때는 젓가락을 쥔 손을 가볍게 잡아 시계방향으로 젓가락이 음식 중앙쯤 닿도록 올려가며 음식의 이름과 위치를 알려준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산해진미가 가득하더라도 시각장애인들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샵에 자주 오시는 단골손님 중 휠체어를 타고 오는 분이 계셨는데 남편과 뷔페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뷔페에 가본들 뭐 하겠느냐 보이질 않으니 목석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아 떠 주는 음식이나 먹어야 하고, 가져오지 않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 몰라 먹어 볼 수도 없다'라고 얘기하니

'아이고, 원장님 우린 휠체어와 음식 사이가 멀어 떠 갈 수도 없고, 그걸 밀고 다녔다간 민원 들어와요. 차라리 안 보이고 못 먹는 게 낫지 뻔히 보이는데 못 먹는 건 어떻겠어요'

라는 신세한탄들을 하며 한바탕 웃었더란다.

그러니 뷔페식당에 가선 멍하니 앉아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보다 갑각류 껍질을 잘 까는 남편을 위해 새우나 게 등을 먼저 가져다 놓는다.

그럼 하릴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초밥과 같은 것은 미리 간장을 뿌린 후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초밥을 집어 먹도록 돕는 것이 좋으며 섞이기 쉬운 것은 수프그릇처럼 오목한 그릇에 떠 둔다.

식판이나 따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음식은 괜찮은데 하필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큰 접시에 밥과 반찬을 배식해서 설거지가 용이하도록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밥과 반찬 간의 경계가 없어지는 데다 평평한 접시에 대략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나는 미리 국대접을 가져가 거기에 밥을 담고 접시에 반찬을 담았었다. 그나마도 생선이 나오는 날엔 포기해야 한다.

남들 이목이 집중되도록 생선을 바르고 깻잎을 올리는 등의 행위를 남편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회차에 얘기한 보행에 비하면 생명의 위협도 덜하고, 그만큼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지만 시각장애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정안인과 함께 하는 식사라고 한다.

어떨 때는 유난히도 식사를 하는 남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궁금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눈치껏 힐끗 보면 좋겠지만 자신은 식사를 할 생각도 없는지 다른테이블에서 고개를 틀어서라도 빤히 쳐다본다는 것을 남편이 안다면, 자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동물원의 원숭이를 쳐다보듯 빤히 쳐다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럴 땐 내가 강렬한 눈빛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면 얼른 고개를 돌리곤 한다.

하긴 어떨 때는 익숙한 우리 사이의 식사에서도 유난히도 반찬이 잡히질 않아 자꾸 미끄러질 때는 자괴감을 느끼곤 할 때가 있다.

어려운 것을 못하는 것은 괜찮은데 기껏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일인가 할 때마다 마음이 참 괴롭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남편이 아무런 불편 없이 우리 가족과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을 세팅한다.(실상은 난리인데 남편이 다 이해해 준다. ^^)

그가 자괴감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며 입 안에 음식을 넣어 주는 것은 동정이 아닌 그저 사랑과 배려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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