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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l 12. 2024

귀로 보는 드라마

남편과 데이트를 하며 종종 뮤지컬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곤 했었다.

그날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맨 앞열에 예약된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그곳을 찾았었고, 각장애인 남편을 위해 극이 시작되기 전 무대 전체의 분위기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중간중간 음악이 크게 나오는 때를 틈타 남편의 귀에 대고 배우들의 표정, 행위 등을 소곤소곤 설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옆좌석에 앉은 관객이 나를 툭툭 치더니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쉿!' 한다.

나의 육성은 들리지 않도록 소곤소곤,

 음악소리가 들릴 때만 그 사람의 반대 방향에 앉은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면 안 들릴 것을 뻔히 아는데도 그러는 자체가 보기 싫었는지 설명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했다. 시각장애인이라 어쩔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자 결국은 직원한테 항의를 했는지 휴식시간 직원이  우리 앞에 쭈그리고 앉아 민원이 들어왔다며 귀에 대고 설명을 하지 말란다.

다시 한번 시각장애인이니 남들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설명하겠다고 해 봤지만 옆의 관객은 검지 손가락 두 개를 엑스자로 포개며 안된다는 표현을 했고, 표정에 화가 가득하다.

그러니 직원인들 어쩌랴....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더러 설명하지 말고 뮤지컬을 보란다...

남편더러 앞이 안 보이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으란다...

우리도 장애인 티켓을 판매하기에 엄연히 그 값을 치렀지만 안 보이는 건 니 사정이니 그냥 앉아 있으란다.

한치의 이해도 없는 옆사람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이 상황 자체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더 크게 항의하고 싶지만 자신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남편을 위해 억지로 참아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기억은 우리에게 큰 트라우마를 만들며 그 이후로 뮤지컬을 보러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황전개가 빠르고 소리가 왕왕 울리는 영화는 화면해설이 없다면 이해하기가 더욱 힘들어 찾지 않게 된다. 

우리는 대신 대학로의 소극장에 가서 작은 연극을 보며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상황을 이해하기가 수월하고 영화처럼 전개가 빠르지 않아 내가 설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또한 가족적인 분위기라서 편안하다.


이처럼 눈을 감고 귀에 들리는 소리만을 의지한 채 영상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몇 프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는 그나마 이해가 쉽지만, 대사 없이 표정과 행동만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뭘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전쟁 장면이나 치고받는 액션씬에서는 뭘 하고, 누가 쓰러졌고, 누가 죽었는지 뭘 들고 어찌 싸우는지, 소리 없는 눈물만 흐르는 장면과 눈빛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영상은 뭘 하고 있는데 말이 없는지 설명이 없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러한 이유로 나온 것이 화면해설 방송이다.

화면 해설 방송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내가 함께 드라마나 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해 주곤 했는데, 무서운 장면이라도 나올 때면 설명은 고사하고 중간중간 소리를 지르며 못 보겠다고 남편 등에 숨거나 감동스러운 장면에선 나도 감탄에 빠져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는 등 정말 가관이었다.


이 글을 쓰며 화면해설방송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기 위해 나무위키 자료를 찾아 아래와 같이 첨언해 본다.


화면해설 방송: 소리에만 의존하여 TV를 시청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영상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높이기 위해 장면의 전환,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몸짓, 대사 없이 처리되는 영상 등을 해설하는 서비스이다.

방송법,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3조(방송통신의 공익성, 공공성 등) 제4항 등에 근거,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에서 화면해설방송을 실시하며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제작하여 방송통신발전자금을 지원받아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kbs와 mbc를 시작으로 점차 케이블 방송 및 민영방송으로까지 확대돼 2015년부터 전국의 모든 방송사에서 이용되기 시작했다.

화면을 음성으로 해설해 주는 음원을 녹음하여 주음성과 믹싱한 후 부음성에 실어서 음성다중으로 송출한다.

종합편집 후에 다시 사운드 믹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복잡하고 제작기간이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화면해설방송이 더욱 자리를 잡아가며 '화면해설방송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게 되었고, 2022년 중반부터는 화면해설작가, 더빙 성우를 작품 말미에 언급하거나 시작 전 음성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대세인 관찰 예능이나 사실적 예능, 스포츠 중계방송은 화면해설 방송이 전무한 상황에 가깝고, 그나마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일요일 밤마다 ebs에서 방영해 주는 화면해설영화가 참 고마운 프로 이기는 하지만 주로 2-30년 전 영화를 방영해 주기 때문에 최신작도 가끔은 방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해 열리는 부산국제 영화제에도 '베리어프리' 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선호도가 많이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라 아쉬움도 있다.

요즘은 눈으로 보고 있어도 무엇을 광고하려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감각적인 cf 장면이 많다 보니 광고가 끝난 후 남편에게 '무슨 광고했는지 아느냐'라고 물으면 헛웃음을 웃는 때가 많다.

위에서 언급한 뮤지컬과 같은 현장 영상해설방송을 시도해 보려는 노력도 해 보았다.

시각장애인 복지관이나 모바일 도서관 등에서 공연장과 협의한 뒤 현역 아나운서를 초빙해 시각장애인에게는 이어폰을 나눠주고 뮤지컬을 들으며 성우의 실시간 해설 음성을 직접 들어보는 작업도 해 보았다. 

그때 성우분의 의견을 들어보니 해설을 위한 부스가 따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비장애 또는 정안인 관객이 앉아 있는 가운데서 해설을 하려니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옆자리 앉았던 관객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날 우리 모두는 다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배려해 주신 관객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큰 진전은 없었고, 아직도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은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그나마 KBS에서 시청자들에게 징수하는 2,500원의 TV수신료가 면제된다는 것이 시각장애인 가정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까?

언젠가 일론머스크가 창립한 신경과학 기업 뉴럴링크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전 칩'(뇌에 소형 브레인 컴퓨터를 내장하여 외부 기기와 무선 접속을 할 수 있는 뇌 임플란트)을 개발중이고, 몇년 내에 상용화 될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언제 가능해질까?

그런 세상이 온다면...

실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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