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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l 19. 2024

세계 유일,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세계 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3%에 해당하는 약 2억 명의 인구가 시각장애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그중 음악을 전공한 이들은 얼마나 되며 그것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정도의 시각장애인은 몇 프로나 될까?

그전에도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 거의 대부분은 국가에서 합헌으로 인정하는 안마업에 종사한다.

그만큼 현실의 벽을 넘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치도 보이지 않는 수십 명의 단원들이 족히 두 시간이 넘도록 단지 머릿속에 저장된 악보의 기억만으로 함께 연주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을까?

오직 서로의 숨결과 교감을 의지한 채 시작을 열고, 각 장과 장 사이를 연결하여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절정다다른 후, 나비가 사뿐 내려앉듯 조심스러운 끝을 맺는다. 그리고 잠시의 정적을 깨고 관객들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그들의 감동스러운 연주에 화답하게 되는 은 어쩌면 지극히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들이 일생에 한 번 서기도 힘들다는 카네기홀, 그 꿈의 무대에 두 번이나 섰던 이력이 있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한다.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


# 한 소년, 음악을 만나다...

이리저리 총알을 피해 목숨을 걸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미국에서 귀국하며 집으로 사 들고 온 것은 교향곡 전집 LP판 70장과 전축, 이름도 들어보기 힘든 릴테이프 등이었다.

다른 집엔 다이아몬드를 사 왔느니 재봉틀을 사 왔느니 하는데 국을 끓여 먹을 수도, 삶아 먹을 수도 없는 클래식 전집이 웬 말인가...

그렇다고 아버지가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무언가에 끌리듯 들고 온 그것들훗날 아이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될 줄 누가  예견했겠는가?

소년은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했을 다섯 살 나이부터 레코드 판에 바늘을 올리는 법을 배웠고, 영어가 한가득인 헨델, 하이든, 베토벤 교향곡 등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이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사고를 당하며 그 후유증으로 눈이 멀어버렸다.

별안간 맹인이 된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의 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70년대 지방의 맹학교에서는 오직 일주일에 딱 한 번인 조회 시간에만 봉인 해제 된다는 풍금 한대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애국가 연주가 끝나고 나면 누가 훔쳐갈세라 자물쇠가 채워져 한 번 만져 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봤지만 피아노 학원은커녕 피아노를 구경해 본 집도 없을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노래를 해 볼까 싶었던 소년은 교내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고, 기독교 방송 월장원 전에서 2등을 하고 점자지 200장을 상품으로 받았더란다.

그랬던 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를 하며 서울 맹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명실공히 국내에서 최초로 세워진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 있는 맹학교에는 지방과는 달리 클래식 합주부가 존재했다.

음악이 하고 싶던 소년은 당장 합주부에 들어갔고,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권했지만 왠지 모르게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때도 천날만날 음악을 듣는 일이 습관이어서 당시 꽤나 고가이던 2500원짜리 휴대용 카세트에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니 슈만 피아노 협주곡이니 하는 테이프를 꽂아 듣던 중 클라리넷 소리에 묘하게 끌리며 소리에 푹 빠져들게 된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소년이 밴드부에 가입하자 선생님은 색소폰을 연주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권유했지만 아이는 평소 귀 기울여 들었던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싶다는 뜻을 비췄고, 선생님은 그럼 색소폰을 연주하기 전 클라리넷을 먼저 연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흔쾌히 그 의견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합주부에서 잠깐 스쳐갈 인연인 줄만 알았던  클라리넷으로 소년은 대학까지 가게 되었다.

요즘처럼 장애인 특례입학 제도가 있던 때도 아니었던 80년대 그 시절, 쟁쟁한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시험을 보고 당당히 입학하여 피나는 노력 끝에 학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다.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 설고 물 선 타국에 떨어져 한치도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음악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지 않았을까?

결국, 수년 세월을 바친 각고의 노력 끝에 석사 학위에 이어 박사 학위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인 자신이 음악으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눈이 보이지 않아 지휘자를 볼 수가 없으니 오케스트라를 할 수는 없던 그는 지휘자 없이 서로의 느낌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실내악은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미국에서도 목관악기, 현악기 등으로 구성된 3-5중주의 실내악을 한 학기에 2팀씩은 할 만큼 실내악에 대한 애정이 컸던 그였다.  


#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시작

97년도에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을 찾았지만 몇몇 있는 그들도 모두들 먹고살기가 바빠 음악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십 년 세월을 별 소득 없이 이런저런 활동을 이어가던 중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는 복지 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모아 오겠으니 시각장애인 합주단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했고, 어찌어찌 끌어모은 열명 남짓한 음악인들이 모여 2007년 3월, 복지관 산하의 '하트-하트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창단되었다.

5월 초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그 해 7월 19일 산 아트홀에서 창단 공연을 끝내고 나니

그날 방송 3사신문에서는 '세계최초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생겨났다는 기사로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맛대로 순순히 움직이지 않는 그를 마뜩지 않게 여기던 복지관은 결국, 2009년 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원을 끊으며 해체를 해 버린다.

그가 어렵게 사람을 모아 지금까지 이끌어왔는데 단원들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 보낼 수는 없는 이었다.

그러나 교통비, 식대, 연습실 대관비 들어갈 곳은 태산 같은데 이름도 빛도 없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에 기꺼이 투자를 할 만한 단체가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자산으로 갖고 있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집값이 오를 때마다 수억 대의 대출을 내어 지금의 '하트 체임버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어렵 운영해 가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택시비를 지불하려고 카드를 내밀었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급하게 주머니 이곳저곳을 털어 현금으로 택시비를 지불했지만 그나마도 300원이 모자란 값을 치르고 화가 많이 난 기사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해야만 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 짓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대출 한도도 나오지 않고, 처자식들과 박스를 들고 길가에 나 앉게 생긴 이 마당에 내가 이 짓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음악을 전공한 시각장애인이 다른 이들처럼 무대에 설 수 있는 세상을 꿈꿨을 뿐인데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기만 했다.

2010년 11월, 그가 가진 무수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오케스트라를 결국 해체하자고 마음먹는다.


# 세계의 무대, 카네기홀에 서다....

이제 더 이상 오케스트라를 운영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털어놓자 주위 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획기적인 기획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 연주를 한다던지 배를 띄워 놓고 연주를 해 보라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누가 관심이나 있겠나... 당장의 이슈는 될지 모르겠지만 웃음거리만 안되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의 머리를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가 카네기홀이 아닌가... 거기서 연주를 한다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연주를 할 수만 있다면.... 그래.... 기필코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해야겠다!!!'


2011년 1월, 첫 연습을 시작하기 전 그가 단원들에게 가슴 뛰는 포부의 말을 선포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올해 카네기 홀에 가서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다!!!"


"참 나.... 카네기가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아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우리는 올해 기필코 카네기홀에 간다!!"


비장애인 단원중 한 명이 무심코 내뱉은 비아냥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당연한 실을 그대로 말한 것일 테지만 그는 묘한 오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어떻게 해서든 카네기 홀에 꼭 선다. 내가 그걸 꼭 증명해 보이리라!!!!....'


그날부터 그는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 인연을 맺었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교수와 동기, 선, 후배, 선교사님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고, 그러던 중 뉴욕 필 하모니 부악장으로 있던 미셸신이라는 한국인과 연결이 된다.

그는 당장 자신들의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보냈고, 그것을 본 미셸신에게서 딱 한 단어의 답장이 왔다.


"브라비!!!"


더군다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카네기홀에 서게 된다니 정부에서의 지원금과 기아자동차, 현대 자동차 등 굴지의 기업들에게서 1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물다섯 명의 단원과 악기가 미국을 오가는 데는 그 돈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3500만 원이 모자라는 경비를 메꾸기 위해 그는 집문서를 들고 또다시 은행을 찾아가 그만큼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드디어 2011년, 불가능할 것 같던 카네기홀에서 성황리에 연주를 마쳤고, 미국과 한국의 방송에서는 난리가 났었더랬다.

카네기홀 개관 121년 만에 세계최초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것이다.

카네기가 서울로 이사를 오지 않아도 우리가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 일로 인해 한낱 호기로운 시도로 끝나버렸을지도 몰랐을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기사회생으로 살아나는 전환점이 되었고, 다행히도 그 로 많은 공연 제의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4년 후, 카네기 홀에 한 번 더 서 줄 수 있겠느냐는 초청 제의와 함께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인 메인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었다.

4년 전 그때보다 더욱 강하고 섬세해진 그들은 2015년 두 번째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인 거장 노빌리스 피아노 트리오협연을 하며 38분이나 되는 베토벤 3중 협주곡을 머릿속 기억을 더듬어 서로의 호흡을 의지한 채 연주하게 되었.

2015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 모습

 

# 빛을 볼 수 없는 그들이 빛이 되다!!!

지금까지 이들이 암기한 연주곡이 250 작품에 달하며 690회의 공연을 해 오고 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제1호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선정되었고, 두 번째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가 끝나자 이듬해인 2016년부터 문화체육 관광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며 크게 넉넉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을 만큼 운영되고 있단다.

지금까지 많은 단원들이 오케스트라를 거쳐갔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고, 연주 횟수가 일정치 않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제 갈길을 떠나고 많은 세대교체가  까닭에 창단멤버는 3명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현악기부터 타악기에 이르기까지 시각장애인 15명, 비장애인 10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시각장애인은 연주곡을 모두 암기하여 연주한다. 

연습곡의 악보가 점자 악보로 점역되고, 가녹음된 곡을 들으면서 각자의 파트뿐 아니라 전체의 파트를 익히고, 거기에 감정을 입힌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단원들이 모두 모여 하나가 되는 연습을 거듭해 나간다. 

비장애 단원들은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들도 연주를 암기해야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단원들의 보행과 식사 등을 돕기도 하며 단순히 연주자가 아닌 스텝으로서의 몫을 감당하기도 다.  

지금까지 차례의 미국 공연과 모스크바, 런던, 일본, 루마니아 등의 공연을 마쳤다.

특히 올해는 2017년에 했던 미국 공연이 너무 좋았다며 앙코르 제의가 오게 되어 미시간 국제음악회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가리타 쉐브첸코와 함께 협연을 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공연장면

또한 국내에서는 지자체에서 후원하는 문화회관에서의 연주, 직원을 위한 대기업에서의 연주,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산간벽지의 해양 경찰관 또는 시간을 내기 힘든 소방관, 경찰관 등의 관공서 직원을 위한 음악회에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땅 독도 음악 회'와 같은 뜻깊은 행사에서 연주 하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전남 고흥군 녹동의 한 고등학교의  관계자가 이들의 연주 영상을 보고는 학교에 직접 와서 연주자를 해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 있었단다.

버스로 이동하는 데만 왕복 11시간이 꼬박 걸려 겨우 한 시간을 연주하고 돌아와야 하는 무척 피곤한 일정이다.

크고 작은 악기들과 시각장애인들을 비롯한 수십 명의 단원들이 움직여야 하기에 돈을 떠나 너무 무리한 일정이 아닌가 싶어 처음에는 정중하게 고사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눈앞에서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이니 플루트이니 하는 악기를 구경조차 해 본 경험도 없는 학생들에게 더군다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눈앞에서 직접 연주를 한다면 아이들에게 얼마나 뜻깊은 시간이 되겠느냐며 수차례 연락이 온 탓에 8월 22일, 공연 일정을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요청을 받을 때마다 그는 행복해진다고 한다.


'참 잘했구나,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이토록 감동을 받고, 또 우리를 계속 원하는 멋진 일이구나'


# 더 강하고 밝은 빛이 되어 더 큰 세상 곳곳에 이르기를....

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걸어온 음악 인생길에 얼마나 많은 우여와 곡절이 존재했겠는가....

또 그에 따른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막힌 사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어쩌면 이들의 연주는 지금까지 그들이 흘려온 눈물과 땀방울이 모인 결정체가 아닐까 매번 생각한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이 음악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해 안마를 하러 가야 하는 서러운 현실을 바꿔보고자 했던 일이었다.

인생을 살며 힘든 날이 왔을 때, 배우자에 대한 선택, 직업의 선택 등 자신의 선택이 근복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던가...

그러니 음악을 선택했던 지난날의 그의 선택이 잘못된 일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먼저 음악을 시작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그러한 믿음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근간이라고 다.


그는 '와~ 시각장애인이 저 정도면 연주를 잘하네?'가 아닌 '와~ 연주 진짜 잘한다. 그런데 그게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 다 외워서 저렇게 하는 거래'라는 말을 듣는 것이 그의 비전이라고 했다.


그들을 응원하는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우리나라에 BTS와 블랙핑크가 있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세계최초, 세계 유일, 시각장애인 실내관현악단인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비록 스스로 빛을 볼 수 없지만 세상에 빛을 밝혀주는 존재들이여!!!....

그들의 마음을 통해 보는 그것은 그 어떤 밝음 보다도 비교될 수 없는 찬란함 가득한 세상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특히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과 가족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오고 가는 단원들의 불협화음 또한 넓고 깊게 아우르는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감독(지휘자가 따로 없기에 감독이라 지칭한다)이자 동시에 클라리네티스트(지휘자 역할을 하는 감독 또한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한다) 이상재 교수(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의 노력 끝에 지금까지 오케스트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의 무한집념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지방에서 기차로 오가며 연습실에서 군말 없이 연습하는 이들과 혹시나 악기 소리로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하며 점자 악보를 손으로 읽으며 외우고 또 외우고 수백 번씩 연습하는 시각장애인 단원들을 포함한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에게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뜨거운 마음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해마다 12월이면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21회 정기연주회가 12월 19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혹시라도 이들의 음악을 현장에서 듣고, 진한 감동을 느끼고픈 들이 있다면 기꺼이 공연장을 찾아가 뜨거운 함성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https://youtu.be/whingChqE-0?si=NXhuV4HtxqlmExEF

2014년 스테판 푸르츠먼과 함께 협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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