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바람 Jun 07. 2024

 어둠 속의 대화

시각장애인 체험(1)

곧 완전한 어두움이 시작된다.

희미한 불 빛 속,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긴장감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이제 완전한 어두움의 세계로 접어들자 방금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공포와 두려움이 내 안을 꽉 채운다.

나는 하마터면 이 체험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어두움 속에서 일어나는 내 안의 공포가 나를 잡아먹을 듯하다.

나는 수초 동안 그 녀석과 치열하게 싸운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이런 건가....

절망과 긴장을 넘어선 극도의 공포.....

이 체험이 끝나면 나는 곧 밝은 빛을 보게 될 테고 예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말 잠시의 일인데도 나는 왜 이리 두려울까.....

내가 여기서 기권을 해 버리면 네 명의 아이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날 때부터 이미 어둠 속에 익숙 해 져 있는 자....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읽어버렸는지 한 손엔 케인을 들고, 다른 한 손을 뒤로 돌려 내 손을 꽈악 잡아준다.


"여보.... 나 무서워......"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이제 내가 지켜줄게...... 내 손 꼭 잡고 잘 따라와...."


남편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구간에서는 바닥에 닿는 케인의 소리와 느낌으로 거리와 공간과 질감을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판단해야 한다.

그나마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으며 걸을 때는 괜찮지만 벽이 없어지는 구간에서는 의지 할 것을 잃고 더욱 공포스럽다.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한 발 두발....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처럼 조심스레 걸음을 떼고, 두 팔을 뻗어 휘저어가며 나를 위협할 사물이 없는지 조심조심 걷는 것이 내가 위험상황에서 보던 시각장애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잠깐 멈춰 선 공간에서는 몇 발짝을 더 걸어가 여기가 어딘지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냥 이 공간 속에서 잘 버틸 수 있는 데 급급 할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남편은 이것저것 만져보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다 알아냈는지 내 손을 잡고 몇 발짝을 걸어가 허리를 굽혀 아래, 또는 손을 뻗어 위, 옆을 샅샅이 훑어보게 한다.

그렇다..... 평소 내가 남편에게 했던 일이었다.

아.... 얼마나 고맙던지... 암흑천지 공포의 공간이라고만 느껴졌을 이곳에 어떤 것이 있는지 느껴지게 함으로써 마음의 긴장감이 풀리고, 궁금함이 해결된다.

아마 남편도 랬을까? 다른 이들보다 유난히도 만져보게 하고, 쓸어보게 하고, 조형물의 모형을 설명하고, 간판의 글을 쉴 새 없이 읽어주던 내가 그리도 고마왔었을까?


긴장감으로 땀이 흐르던 나는 어둠 속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걸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마스터가 있지만 아빠의 진두지휘로 우리 가족은 어둠 속에서 더욱 똘똘 뭉쳐져 한 덩어리가 된다.

90여분의 그날의 기억은 훗날 우리 아이들의 잠재 속에 저장되어 필요한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소환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인 '어둠 속의 대화'는 북촌점과 수원 동탄점 두 곳이 있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이색 데이트', '이색 놀이터'라고 소개한 블로거들도 몇몇 보이는데 실제 시각장애인과 동거하는 우리 가족의 입장에선 특히 '놀이터'라는 단어가 가벼운 말장난과 같다는 생각에 불쾌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고귀하고 숭고한 체험이었고, 슬픔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앉은 의자의 색이 궁금하다...

나는 이곳을 나가면 시각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만 남편은 아무리 확인하고 싶어도... 궁금해도.... 절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기에 가슴 깊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가족과 한 팀을 이루었던 연인에게 체험이 끝날 무렵쯤 어둠 속에서 남편이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느냐고....

이색 데이트 장소로 좋을 것 같아 찾아왔는데 진짜 시각장애인이 와 있어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이색 놀이터'라는 이미지를 넘어서는 공간이 되었을까?  


그곳에 온 사람들 중 실제 나처럼 공포를 느껴 체험을 포기하는 이들이 종종 있기도 하고,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도 있단다.

그러니 시각적인 단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저 불편함과 상실감을 넘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우릴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길이가 긴 하얀 지팡이만 보다가 우리 막내에게 쥐어준 어린이용 케인을 보니 마음이 더욱 짠하고 아련하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고, 우리 시부모님들의 지난날은 하루하루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먹먹한 마음이다.


우리가 살면서 잊어가는 감사와 소망, 우리가 살면서 축적하는 괜한 욕심과 불평 불만이 생긴다면 시각장애를 비롯한 장애체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지 아마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공기를 들이마시듯 그저 그냥 일상이된 많은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가질 수도 가져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욱 겸손하게 그리고 더욱 감사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잠시의 체험이 내 못된 마음을 전부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지만 티끌만큼이라도 성숙한 내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이전 02화 여러분은 훈맹정음을 아십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