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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31. 2024

여러분은 훈맹정음을 아십니까?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아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 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훈민정음은 약 581년 전이었던 세종대왕 25년 1443년에 창제되고 1446년에 반포된 이른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그 뜻을 조금 더 쉽게 이르자면...

"우리나라 말은 중국 말과 달라서 한자어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내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일상에서 편하게 쓰도록 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리 똑똑지 않은 나에게 한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까지 한자를 사용했다면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을지.. 천자문은 다 떼었을지 반눈은 떴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분은 그 이름도 생소한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라는 것을 아는 정안인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박두성 선생님은 우연찮게 처음 발령받았던 현재 서울맹아학교의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에 교사로 취임하게 되면서 일생동안 맹인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신 분이시다.

일제의 탄압이 거셌던 1920년 그들의 눈을 피해 한글점자 연구를 시작하셨고, 1926년에야 비로소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이 반포되어 매년 11월 4일은 '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훈맹정음이 생겨나기 전에는 학생들이 일본어 점자를 배우고 있었고 점자를 만드실 때는 미국의 4 점자 방식을 권유받으셨지만 우리 한글에 가장 잘 맞는 6 점자를 연구하고 만들고 가르치신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도 하다.

그러나 목숨 바치고 뜻 바쳐 어렵게 만든 점자를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 결국 선생님은 전국 각지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수소문해 편지를 보내어 통신교육을 시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중 박두성 선생님의 제자인 김천년 선생님은 후일 서울맹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되며 내 남편이 맹학교 다닐 시절까지 교감선생님으로 역임하셨다고 한다.

서울 맹학교에는 박두성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만약 한글식 점자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캄캄한 세상, 더 한 불모지에서 살고 있었을 시각 장애인들...

박두성 선생님은 점자를 만드시고 가르치는데 만족하지 않고, 성경과 교과서를 점역하시며 결국 그도 눈이 멀었다는 전기를 읽으며 소리 내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떠한 사명으로 이런 일을 하셨을까....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하도록 감사함을 느낀다.

결국 이러한 애맹 사상과 업적을 인정받아 서거 후 은관 문화 훈장을 추서 받으셨고, 그의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원고, 한글 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 한글점자의 유래, 작성 원리, 그 구조와 체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 등 총 8건 48점이 2020년 12월 4일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그 역사는 아버지를 이어 막내 따님에게까지 이어져 아버지의 못다 한 점역 사업을 이어받기에 이르게 된다.

선생님의 고향인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점자 도서관 3층에는 박두성 선생님의 기념관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글 점자가 탄생된 배경과 의의를 더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각장애인들도 글을 읽고, 정보를 취하는 방법이 많이도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신기했던 것은 소형 컴퓨터와도 같은 브레일 컴퓨터 '한소네'이다.

점자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미국의 브레일이라는 사람이기에 점자를 영어로 브레일이라 하며 그것을 화면 없는 소형화 컴퓨터로 만들어 '한소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저것을 누르면 점자들이 토돌토돌 올라오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읽는데, 횡과 열이 바뀔 때마다 다른 점자들이 올라오는 게 어찌나 신기한지....

그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깔아서 이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성경과 찬송가 프로그램을 깔아서 교회에 갈 때는 이것으로 성경 구절을 찾거나 찬송가를 부를 때도 한소네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언젠가는 맹인 교회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교회에 비치된 성경책을 보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자기야, 창세기 한 권이 20센티가 넘어... 근데 그게 한 권이 아니고 창세기만 해도 여러 권이야"


만약 성경 66권이 담긴 책을 가지고 다니려면 수레에 한가득 실어도 모자랄 판이다.

박두성 선생님은 생전 점자책을 쌓지 말고 꽂아 놓으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셨다는데 혹시라도 툭 튀어나온 점자가 짓눌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까 걱정하신 것이니 점자책은 보관상의 어려움도 꽤 많다.

혹시 오타라도 나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최대한 납작하게 눌러 그 위에 다시 표기한다.

그런데 한소네는 찬송가도 점자 악보와 가사가 함께 읽힌다고 하니 나로서는 아무리 봐도 별천지의 기능을 가진 요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연애시절 함께 갔던 노래방에서 한소네를 척 하니 꺼내더니 한 손엔 마이크를 잡고 한 손으로는 그것을 쓸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뭔가 하니 한소네에 금영 노래방 같은 프로그램을 깔아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캬... 노래 솜씨 또한 일품인 노래방 조명 아래 그 남자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보였다.

이러한 한소네도 시대에 맞춰 크기가 줄어들고 더 많은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어 나오고 있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설리반'이라는 앱 기능이 있다.

간단한 책 제목이나 그림, 또는 포장지, 사람의 얼굴에 갖다 대면 글씨를 읽어주거나 뭐가 어떻게 배열된 무슨 색, 어떤 풍경... 이라던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

이게 진짜 웃긴 게 설리반이 인식하는 대로 상대의 나이를 설명하기에 때로는 나이가 한창 어린데도 50대, 60대라고 얘기하기도 해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니 서로 나도 비춰보라며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있다.

다행히 나는 어리게 봐주는 참 괜찮은 앱프로그램이다.  

그 외에도 설리반과 비슷한 기능의 앱이 더 개발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요즘 생산되는 카메라 3개 달린 아이폰은 모드를 변경하여 옆을 비추면 인식된 간판과 광고문자 등을 읽어주기도 하고, 대중교통의 빈자리 여부, 사무실의 호수를 읽어주기도 한다.

물론 한 손엔 케인을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이리저리 부딪혀 가며 읽고 다니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필요에 따라 누구의 도움을 어렵게 받을 필요 없이 가게 상호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큰 감동이었다.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보이는 풍경과 글씨를 그들은 말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이러한 기능이라도 빌어 어디에 뭐가 쓰여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장애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개발하는 이들의 배려가 참으로 감사하다.


가정에서는 똑같은 병에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가 비치되어 있으면 혼자서는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다 보니 남편 친구들이 종종 내게 영상 통화를 걸어와 내가 옷 색상을 알려주거나 글씨를 읽어 주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는 같은 모양의 칫솔에는 남편 것만 반창고를 둘러서 붙여둔다던지 시각장애인용 라벨지에 점자로 써서 가위로 오려 붙여둔다던지 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그러니 정안인들이 메모장이나 볼펜이 필요하듯 우리 집안 곳곳에도 점필, 점관, 점자 종이 등이 비치되어 있고, 점자를 찍는 속도도 깨나 빨라서 나와 함께 성경구절을 누가 더 빨리 쓰는지 시합을 해 본 적이 있기도 하다.


 그나마 요즘은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주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며 컵라면, 음료수, 약품 등에 점자 표기가 간략하게 되어 있는 상품도 종종 생겨나는데 이전에는 독거하는 장애인이나 아이를 키우는 상호부부 장애인들이 아이에게 잘못된 약을 먹이거나 먹고는 사고가 일어나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캔음료 위의 점자에는 '음료' '탄산' 이렇게 표기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시각장애인들이 설마 그게 음료인 줄 모르겠나... 이왕 써 주는 거면 '콜라' 사이다' 주스' 이 정도쯤은 표기해 주면 고맙겠다.

받침이 많은 '음료'를 쓰는 것보다 받침 없는 '사이다'가 훨씬 표기도 쉽고, 적은 칸이 이용될 테니 말이다.


예전에는 책이 읽고 싶은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 학교 등으로 보내놓고 조용한 집에서 약 서너 시간 동안 약간 빠른 속도로 소형 녹음기에 일일이 책을 읽어 녹음을 시켜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전자도서관으로 책이 많이 나와줘서 책 제목을 입력하면 기계음성으로 읽어주기도 하니 내 할 일이 훨씬 줄었다.

그래도.... 예전엔 내 목소리가 예쁘다며 모든 시각장애인 기계음을 내 목소리로 다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이 '미친놈'이라며 내 남편에게 군소리를 했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입꼬리가 귀까지 걸리며 배시시 웃었다.


나도 내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을 생각이나 해 보고 살았겠나...

철없는 내가 철들자고 남편을 만났는가 보다...

그러나 아직 세상 이치를 깨닫기엔 요원한 나 자신이지만 이나마라도 깨닫고 알게 된 그들의 세상을 조금씩 소개해주고 싶다.


우리는 더불어 살며 서로 돕고, 도와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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