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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24. 2024

병신 중에 제일 불쌍한 게 눈병신이여!!!

남편과 함께 경로당으로 출장 안마를 하러 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날 그곳엔 처음 방문한 경로당이었고, 미리 지역 주민센터에서 바우처 안마 신청을 마치고 그중 대상자로 뽑힌 분들께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사업이다.

나는 할머니들이 편하게 안마를 받으실 수 있도록 공동비품을 넣어두는 곳에서 두툼한 매트를 바닥에 깔아 드린 후 남편이 곧 일을 시작한 지 채 몇 분 되지 않을 때였다.

멀찍이서 몇몇 할머니가 화투를 치던 중 한 분이 벽에 기댄 채 먼데를 보며 실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얘기한다.


"병신 중에 제일 불쌍한 병신이 뭔 줄 알어??!!!"


"..........."


"그건 눈병신이여 눈병신~"


아무도 묻지 않은 말에 혼자 자문자답을 하는 까닭은 굳이 상처를 주고 싶어서일까?

정보전달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이고... 마누라는 벙어린게벼~ 벙어링께 눈병신이랑 같이 살지 안 그러면 같이 살겄어?"


'삐리리리리~~....'


"여보세요? 아~ 네네, 안녕하세요~"


"얼레? 전화받는 거 보니께 벙어리가 아닌게비네? 근데 워찌 눈병신이랑 같이 사는겨? 이~~ 그럼 머리가 모지란 병신인게벼~ 둘이서 잘 됐네~ 눈병신이랑 같이 산께 어디 갈 때 데따 주고~"


다른 이들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저렇게 용감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화끈한 노파다.

인신공격으로 고소를 당해도 열 번은 더 당하고도 남을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할머니가 주위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을지 그 인생의 파노라마가 얼추 짐작이 되니 오히려 나이만 무성한 그 할머니가 가엽게 여겨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비수를 꽂는 이런 말과 행동은 수도 없이 받아왔다.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용감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존재한다. 

위에 언급한 노인처럼 크게 배운 것이 없어 어쩌면 순수하고 원색적인 표현을 하는가와 표정이나 은근한 말투로 돌려 까기를 하는가의 차이일 뿐, 식당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어디서도 심심찮게 당하는 일이다.

그게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의 얼굴이다.


지금은 버스 정류장에 몇 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오지만 예전엔 같이 서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기에 옆에 누가, 몇 명이 있는지 모른 채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묻는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지금 몇 번 버스가 오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주위에 사람 소리가 들려 정중하게 물어보는데도 묵묵부답이라 용기를 내어 팔을 뻗어 만져보면 거칠거칠한 가로수에게 인사를 했거나 전봇대였던 경험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모두 제 갈길을 갈 뿐 선뜻 도와주는 이가 많지 않다.

안내 음성이 나오더라도 여러 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도착할 때면  어떤 게 먼저 도착했는지, 그 버스의 간격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어느 날도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중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남편에게 다가와 지금 몇 번 버스가 들어와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친절을 베푼 아주머니께 정중하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느라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데 버스 번호를 알려 주었던 세상 친절하신 그 아주머니가 느닷없는 질문을 한다.


"좋지요?"


"네??? 뭐가 좋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좋잖아요!!!"


"죄송한데 어떤 게 좋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아니~ 안 보이니까 이 꼴 저 꼴 더러운 꼴 안 보고 좋을 거 아니에요!!!"


"아주머니, 방금 절 도와 주신건 고맙지만.. 그게 지금 저한테 할 말입니까? 이 꼴 저 꼴 안 보고 싶은 건 아주머니 사정이지 제가 안 보이고 싶어서 맹인이 된 건 아닙니다...."


더러우리만큼 기분이 상한 황당한 남편이 욱한 감정에 이렇게 되받아쳤다고 한다.


어느 날 남편과 어디 다녀오며 길을 걷고 있을 때, 친정엄마가 쌀이 생겼다며 지금 가지고 가란다.

남편과 길에 서 있는 택시를 잡아타고 친정으로 가고 있었다.


"기사님, 죄송한데 바로 이 앞집에서 뭘 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네, 기다릴게요~"


친정 엄마 집에 들어가 기사님이 기다릴세라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얼른 나와보니 흔쾌히 기다리겠다던 택시가 온데간데 없었다.

이곳저곳 아무리 둘러봐도 차가 없다.

맹인을 손님으로 태웠던 게 얼마나 싫었으면 돈도 받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을까....

8월 초의 뜨거운 태양 아래 남편의 어깨에 이십 킬로의 쌀을 짊어진채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은행에서는 시각장애인은 대출이 안된다고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체장애인도 대출이 되고, 청각 장애인도 되는데 시각장애인만은 절대 안 된단다.

언젠가는 농협에서 대출을 받으려던 시각장애인이 거절을 당하고 장차법(장애인 차별금지법)으로 그 은행을 신고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별다른 제재나 해결책은 없다. 나도 해 봐서 안다.

나 또한 은행에 전화 문의를 하던 중 남편이 시각장애인이라고 밝히자 거부를 당했고, 이미 여러 수십군데서 거절을 당할 대로 당했던지라 제발 부탁이니 좀 도와 달라는 말에 직원은 언성을 높이며 욕을 했다.

전화를 끊고, 분한 마음이 가시지가 않았다.

안되면 안 되는 것이지 욕을 할 건 뭔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은행 본사 홈페이지 고객 센터에 글을 올리고 항의를 했다. 입김이 센 맘카페에도 글을 올리겠다고 했다.

곧 해당 은행의 높은 직급의 책임자가 전화를 걸어와 손이 발이 되게 빌며 아까 전화 응대를 했던 남자 직원이 실은 자기 직원이 아니라 전화 업무만 보느라 단기채용을 했던 사람이라 둘러댄다.

대출 진행을 해 드리겠으니 해당지점에 가시라고 했다.

우리가 은행에 찾아가자 창구 직원은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했는지 '이런데 왜 왔나?' 하는 벙 찐 표정이었는데 곧 다른 책임자가 그 직원에게 다급하게 얘기한다.


"민원 들어온 거야. 잘해 드려..."


참나... 신용만 정상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대출이라면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는데도 받을 수 없다니...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인식개선이 많이들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매일 생겨나고 이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 '안마 자격'은 시각장애인에게만 합법적으로 주어지는 국가공인 자격이기에 다른 장애인보다도 안마사라는 직업이 있어 채무상환 능력 또한 훨씬 좋다.


운이 좋아 대출을 받거나 카드발급을 받는다고 해도 당사자가 오지 않았을 때 대리자가 대신 해야 하는 일을 날더러 하게 한다.

그럼 같이 온 남편은 누구란 말인가....


"제가 당사자입니다. 제가 지금 앞에 앉아 있지 않습니까... 너무 하시네요..."


그제야 '아차' 싶은지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지적 수준이 낮을 거라는 선입견이 많다.

뭔가를 설명할 때도 단지 눈 맞춤을 위한 게 아니라 못 알아들을까 싶어 나한테만 설명을 하며 잘 알려 주라고 한다. 뻔히 옆에 앉았는데도 말이다.


식당에서도 시각장애인은 매운 음식을 못 먹을 거라는 편견을 많이 가진다.

눈이 안 보여서 음식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은 당연히 이해를 하는데 단지 기호의 차이일 뿐인 매운 음식은 왜 못 먹을 것 같은지 참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시각장애인을 아이처럼 생각해서인지 지적 수준이 낮을 것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식 메뉴를 주문할 때면

"그거 매운 음식이에요"

"그거 매운데 드실 수 있으세요?"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딴에는 걱정이 되어 그러는지 남편이 얼큰한 음식을 한 입 뜰 때까지 앞에 서서 지켜보다가 잘 먹는다 싶으면 입을 쩍 벌리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 뿐이랴.....

얘기하자면 3박 4일은 쉬지 않고 얘기해 줄 것이 있다.

그러니 멀쩡한 정신으로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을까....


그러니 왜곡되고 과장되어 보이는 반응을 하는 장애인들을 너무 이상한 눈으로만 쳐다보지 마셨으면 한다.

너무 많은 가시에 찔려 자신을 보호하려다 가슴이 딱딱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모든 장애인이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원치도 않는 장애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나 맨 땅에 헤딩을 이리저리 해 대며 치열하게 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병신 중에 가장 불쌍한 게 눈병신'이라는 할머니의 막 돼 먹은 듯한 그 이야기가 어쩌면 진리의 말씀처럼 생각되는 순간이 아주 많다고 말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장애인 여러분 지금까지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힘내서 이 한 세상을 또 열심히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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