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적어보는 고군분투 새학교 적응기
학교를 옮겼다. 학년도 바뀌었다. 나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난 학교에서 거의 8년 5개월을 근무를 하고 이제 더이상 근무할 수 없을 연차가 되고 학교를 옮겼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누구나 선망하는 그런 학군이다. 학부모 관심도 어느 정도 있고, 아이들도 모나거나 부족하지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고 대체적으로 순수한 그런 학군.
지난 학교 분위기에 너무 물들어있던 탓일까? 새 학교로 오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외롭고 힘들기만 했다. 예전 학교 교사로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매번 실수하고, 이 학교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여러번. 새로 옮긴 학교는 그렇게 한달 이상 우리 학교로 도저히 말이 안나와서 이 학교라고만 불러졌다.
3월 첫 기획회의 부장들 회식하던 날. 죄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나. ‘여긴 어디?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걸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더더군다나 예전 학교에선 성격 좋은 언니, 누님, 동생 하며 어디 갈 때마다 챙겨지는 사람, 어디 한번 빠지지 않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호감있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에선 아무도 나를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도 굳이 내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없어도 모를 그림자처럼 앉아있었다. 누가 묻지 않으면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도 않고 다른 사람 말에 적절한 리액션만 하다가 정말 재미없게 앉아있다가 돌아온 회식이었다. 예전에 그렇게 꿈꾸던 ‘피곤하지 않은 회식’이었으나 늠나 재미는 없었다. 회식이라기 보다는 그냥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먹은 저녁식사였다. ㅎㅎ
학교가 발표되는 날. 나는 이 나라에 없었다. 지난 학교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여유있게 베트남 푸꾸옥에서 겨울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로밍을 해둔 폰으로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학교 발표난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우리학교를 1지망으로 쓰긴 했었지만 학급수가 줄어서 못온다고만 알고있던 나날들이었다. 크게 기대도 않고, 우리학교 대신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바로 옆에 있는 규모가 무척 큰 학교로 가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 우리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암튼 나는 가족과 휴가를 즐기고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새 학교로 적을 옮기는 교사들은 대부분 그 시기를 피해 휴가를 간다. 학교 발표나면 바로 그 학교에 찾아가보는 것이 의례적이기 때문이다.
다들 학교에 찾아가는데 나는 못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충 학년이나 업무는 주는대로 받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6학년 담임에 학교폭력 업무겠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여서는 6학년 부장의 뜻을 물어보셨다. 4년 전에 6학년을 하고는 내리 3년을 비교적 쉬운 3학년을 해오던 터인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6학년 부장의 경험이 있던 터라 크게 고민해보지도 않고 수락을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당장 학교로 찾아가서 무언가를 고르거나 딜을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장을 받은 대신 학교폭력은 아니었으니 그보다 낫지 않은가? 하며 위안을 삼았다.
우리 학년은 총 5개 학급. 나는 전입교사이고, 나머지 4명은 휴직교사들로 채워졌다. 그만큼 6학년은 아무도 선호하지 않는 학년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나를 제외한 우리 학년 다른 반 선생님들은 비록 작년에 휴직은 했었지만 모두 끈끈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나보다 5~10살 정도 어린 MZ세대라 나랑 많이 다른 줄로 알았다.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다섯 명이 모이면 (모일 일이 많다. 회의도 많고, 정할 것도 많고...) 4명은 옹기종기 붙어 앉아 하하호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만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옆반 선생님들은 모이는 것도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낄 수 없는 그런 묘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나를 따돌리는 것은 아니나 나는 은근한 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연구실에 갈 일이 있으면 아침 일찍 다녀오거나, 점심시간에도 연구실에 가지 않으며 최대한 다같이 모이는 비공식 자리를 피하려고 애썼던 적도 있었다. 차라리 아이들이 꽉 찬 교실이 마음이 편했다고 해야할까...
오죽하면 1학기에 회식 한번 못했다. 아니, 이 겁쟁이는 선생님들에게 회식하자고 말도 못껴냈다.
아, 올해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외로운 한 해겠구나… 하며 그렇게 지독한 외로움의 마음고생을 약 석 달 정도 하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도 마음이 풀리고, 옆반 선생님들도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문을 못열고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힘들었다.) 오며가며 웃으며 인사도 나누고, 모여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1학기를 나름 의미있게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물론 옆반 선생님들은 자주 만난다. 하지만 내 마음에 학년 초와 같은 거리낌은 사라졌다. 모여있을 때 나도 같이 끼어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지나치거나 내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어졌다.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모여있으면 나는 섣불리 들어갈 생각도 못했었는데 말이다.
우리 학교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학교와 아이들, 선생님들..에 대한 애정도 하루하루 상승하고 있다.
학년부장이라 학년의 굳은 일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이젠 제법 부장으로서 의견을 이끌 줄도 안다. 무엇보다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에 대해 고맙고 귀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이들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에서,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을 공정하게 지도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이제 졸업까지 두달 반 남았는데 우리 6학년은 함께 협력해서 넘어야 하는 6학년 전용 일들이 여러 개 있다. 그 산을 하나 하나 함께 넘어주는 선생님들이 무척 고마운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