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그리고 지나온 여정
원래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4대강 종주길을 따라 인천 도착,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 강릉에서 동해안 종주길을 따라 다시 부산까지 내려오는 10일간의 대 여정을 계획했으나 경기도쪽에 계속되는 비예보로 망설여 졌다. 엄청난 양의 비 예보가 있었 던 건 아니었고 일주일간의 날씨 예보여서 충분히 변동될 가능성도 있었다. 무언가를 이행함에 있어 이정도의 변수는 가볍게 무시 할 수 있는 수준인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작년 8월 예상치 못한 빗길 차사고로 오랫동안 타던 자가용을 폐차시키고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테니스 도중 발목을 크게 접질러 수술까지 했던 일이었다. 한달 새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고를 두 번이나 겪은 것이다. 라이딩을 하다 내리막 빗길에서 미끄러지는 상상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결국 경로를 수정하여 동해안 종주길로 따라 올라가기로 하였다. 원래는 부산 도심을 지나 기장,울산,포항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일반 도로가 많았고 터널을 지나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달리다 차에 부딪히는 상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포항부터는 90%이상 자전거 길로 이어져 있어 트라우마가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상상은 들지 않았다.
결국 포항까지 버스로 이동 하기로 했다. 부산터미널에서 오전8시 버스를 타면 여유있게 강릉까지 3일이면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오전 8시 표를 예매하지 못했다.
또다른 트라우마가 있었다.
밀양에서 거주 할때 주말이 되면 본가인 마산을 자전거로 오고 가고 했던 시기, 가끔 버스에 자전거를 실어서 이동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버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실었는데 그날 좌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대분의 승객이 커다란 짐을 대동하고 있던거였다. 한칸을 독차지 하고 있는 자전거 때문에 일부 승객들은 커다란 짐을 낑낑대며 승차해야 했다. 그 중 한분이 자전거를 버스에 실으면 어쩌냐고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당황스러움, 미안함, 민망함 그리고 억울한 감정이 이동하는 내내 떠나지 않아 무척 괴로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여객버스 화물을 규정을 확인해 보았다.
(자전거를 버스 화물칸이 실으면 안된다는 규정은 없음, 단 바퀴하나를 분리해야 화물로 취급됨)
물론 바퀴를 분리하진 않았지만 규정을 어기지도 않았는데 꾸지람을 들었다는 억울한 감정이 지금도 가끔씩 불쑥 찾아온다.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출발일자의 오전 8시 전후는 거의 만석이었다. 절반의 승객들이 캐리어를 화물칸에 실는다면 분명 자리는 부족할 것이다. 물론 바퀴하나를 분리하면 그때 처럼 누군가 언성을 높였을때 반박할 수 있지만 나는 싸움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결국 승객들이 한산한 11시 버스를 예매하였다.
생각해 보면 매 순간의 선택은 트라우마를 포함한 과거의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서 판단과 선택을 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문득 나는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다.
이것 또한 지나온 나의 여정이기에 떠오르는 대로 글로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