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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Aug 02. 2024

땅따먹기 하자는 건가?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손에 흙을 잔뜩 묻혀가며 땅따먹기 놀이를 하곤 했다.


땅따먹기는 내 영역을 늘려가는 게임이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이긴 사람이 먼저 돌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돌이 움직인 만큼 슥슥 선을 그어 경계 표시를 하고 할 때마다 새로운 선이 생기면 원래 있던 것을 지우면서 땅을 계속 넓혀가는 놀이였는데 친구들과 공기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바꿔서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러 오기 전까지 마무리로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땅에 그려놓은 그림이 넓을수록 이기는 게임이었지만 이겼다고 그곳이 진짜 자기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니 그에 따른 보상이라곤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상대방 손목 때려주기, 꿀밤 주기 등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재미로만 즐기던 놀이였는데 여기는 내 땅 하고 말뚝 하나 박아놓으면 정말 내 땅이 되던 고리적 옛날도 아니면서 막무가내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 온통 초록 초록하게 물이 든다.

게다가 비까지 오면 빗물을 양분 삼아 먹고 자라난 아이들의 성장판에 자극이 닿는지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린다.


머리가 길면 덥수룩 하니 지저분해 보여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가 예쁘게 잘라주어야 하듯 잔디도 너무 길게 자라면 삐죽삐죽 보기가 안 좋아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전문 미용사가 바리깡을 이용해 오르락내리락 현란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자유자재로 밀어대는 반면 특별한 전문 기술 없이도 잔디 깎는 기계만 있으면 그걸로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군인 아저씨 머리처럼 짧지만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정돈이 된다.

그런 이유들로 이 집 저 집 모두 잔디 이발사가 되어 잔디 가꾸기에 열심이다.


우리 집도 남편이 앞마당 또 다른 날은 뒷마당으로 번갈아 가며 한 번씩 잔디의 미용을 책임져 가꾸고 있다.


늘 하던 일이라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에 잔디 깎는 일을 마치고 난 어느 날 오후...

누군가 "띵똥" 벨을 누른다.


이곳은 밖에 있는 누군가가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낯선 이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그 흔한 모니터 시스템이 없어 문을 따고 활짝 열지 않으면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끔씩은 어떤 단체에서 기금 마련을 위한 임무를 맡은 어른이 혼자 다니거나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같은 이유로 꼬마애들이 집집마다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마치 핼러윈데이에 사탕을 얻기 위해 "trick or treat"

을 외치듯 Donation 하라고 문을 두드리거나 벨을 누르는 일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함부로 대답을 할 수도 없다.

그날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거니... 별 의심하지 않았고 저녁때쯤에는 아예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

대문에 붙어 있었다고 하는데 노트를 반으로 각 접어 조심스럽게 손으로 찢은 듯한 하얀 종이에 나름 정성을 쏟아 적어놓은 까만색 글씨가 보인다.


자세히 읽어보니 

"너희가 잔디를 깎는 과정에서 내 땅을 넘어오는 크나 큰 실수를 범했다. 

우리 땅은 절대 손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너희가 오늘 아침 그걸 해버렸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명확하고 확실한 주의를 주고 싶어 이 메시지를 남긴다.

추신: 그 문제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연락해라"라고 쓰여 있었다.

헐!~~~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니 이번에도 역시 옆집 혼자 사는 백인 할머니였다.

보통의 사람들이면 묵과하고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들까지 하나하나 따지는 스타일의 소유자로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재주가 유독 뛰어나다.


블루 프린트 설계도상에는 정확히 그려져 있을지 몰라도 눈으로 보기에는 토지의 경계가 확실히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 대충 반으로 나눠 이 정도 하는 거지 군사 분계선처럼 철조망을 쳐놓고 "이곳을 넘어오면 절대 안 된다"라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니 땅 내 땅이 어디 있다고... 땅따먹기 하자는 것인가?


정말 어이가 없긴 하되 짧고 간단하지만 말도 안 되게 단호하기까지 한 이 편지글로 컴플레인을 해왔으니 나가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확인을 해 본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뭐가 문제라는 거지? 

하도 이상해서 몇 번을 살피고 다시 자세히 보니 평소보다 한 5센티 정도가 그쪽으로 좀 더 깎여 있는 것 같긴 하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겨우 찾아낸 것처럼 사실 몇 센티인가 자를 들이대고 눈금까지 정확히 세면서 뚫어져라 보지 않으면 표도 나지 않는 사이즈이다.


대충 2미터 정도씩 양쪽으로 4미터도 족히 넘는 앞마당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 맞춰 딱딱 재고 반으로 똑바르게 선을 그어 자르는 것도 아닌데 잘 보이지도 않는 5센티 정도 더 밀렸다고 "감히 내 땅을 건드리다니... 너 가만 안 둬" 하듯 땅의 소유권을 운운하면서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싶은 것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거지?

기가 차네! ~~~.


설사 기계를 밀다가 자신의 집 쪽으로 잔디가 조금 더 밀렸다 한들 잔디는 머리처럼 또 금세 자라게 될 테고 그러면 언젠가는 본인도 숱을 치듯 가위질해줘야 할 일을 본의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쪽으로 좀 더 민 덕분에 5센티만큼 자신의 수고를 덜어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 판에 오히려 화를 내다니...


그러고 보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우리가 잔디 이발을 마치고 나면 늘 나와서 자기네 땅으로 넘어왔나 여부를 이제껏 점검해 왔다는 거잖아... 소오름!~~~

그간에 겪은 여러 일들로 인해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참으로 유별나다!" 싶다.


그녀가 너무 멀리 가긴 했지만 메시지가 전하는 뜻은 충분히 알았으니 앞으로는 잔디 깎을 때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넘어가 않도록 눈금자를 들고서라도 주의를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덮고 지나가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또다시 누군가 벨을 누른다.

우리를 좀 더 혼내주지 않고는 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울그락 불그락 혼자 저 세상 난리를 겪은 듯 잔뜩 성이 난 얼굴이다. 


메모를 남겼으니 찾아와서 죄인이라도 된 듯 굽실 거리며 잘못했다고 빌기라도 할 걸 기대한 걸까? 아니면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약이 오른 걸까?

도대체 그녀가 뭘 얻고자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큰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분쟁거리도 안 되는 일로 이웃과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면서 힘 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잔디를 자를 때 그녀가 억지 주장하는 그녀의 땅으로 침범(?) 하지 않도록 좀 더 신경 쓰면 되는 거니까...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우리의 미응답이 화를 부추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얼굴 붉히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다 보니 우리도 그녀의 신경질적인 행동에 때마다 대응하기조차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그녀의 뒷마당에 있는 미루나무 가지중 하나가 바람에 반으로 꺾이면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우리 집 펜스를 넘어와 큰 키 답게 축 처져 길게 누워 있는 통에 지나다닐 때마다 깔딱깔딱 걸리적거리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으로 넘어온 부러진 가지를 잘라내버리고 싶지만 우리가 손을 댔다가는 성격상 자기네 나무를 맘대로 했느니 어쨌느니 할 것 같아서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불편을 감내하고만 있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이웃끼리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 주는 게 이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배려조차도 없는 그녀에겐 그래 줄 필요가 없었는데...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 굳은 얼굴로 열심히 쏟아부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온한 우리의 표정과 나름의 이유가 있는 대답... 게다가 듣고 싶던 미안하다는 사과의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으니 더욱이 찢어질 듯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키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갑자기 머릿속에 왜 함부라비 법전이 떠오른 걸까?

그녀가 원하는 사과대신에 "우리 집으로 넘어온 당신네 나무 때문에 너무 불편하니 잘라내던가 묶던가 해서 넘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하고는 유치하지만 되돌려주듯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을 해버렸다.


폭주하다 차마 보지 못한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멈춘 듯 당황한 모습으로 가만히 우리를 쳐다본다.

관객이 재미없어하는 원맨쇼가 얼마나 민망했을까만은 곧 죽어도 큰소리를 한번 더 치면 우리가 쫄까 "다시는 내 땅에 손대지 마" 하고는 휙 들어가 버린다.

기가 막혀!~~~.


잔디가 잘린 만큼 그걸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것도 아닌데 히스테리 부리듯이 저러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피해의식 쩐 괴팍한 성격? 아님 혹시 인종차별?

무엇이든 간에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이슈 거리도 안되고 이해는 더더욱 안 되는 문제로 매번 홀로 흥분해서 다큐를 막 찍어대는 행태는 고집스러운 억지라고 밖에는 뭐라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뜻으로 이웃사촌이란 말을 한다.


그 말처럼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더 없는 복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우리가 이민 새내기로서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자기가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면서 먼저 손을 내밀면서 친한 척하고 마주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손 흔들고 인사하길래 좋은 이웃일 것이라 착각했다.

잘도 숨겨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본색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녀는 결코 좋은 이웃은 아닌 게 확실하다.


뒤통수치듯 저렇게 이상한 심술을 한 번씩 부려 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야말로 이웃사촌이기라도 한듯 만나면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드는 건 또 뭔지 이래 저래 이해 불가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짓밟고 다녀도 반복되는 자기만의 삶이 있으니 잔디도 민들레처럼 기다리거나 원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곧 또 자란다.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터질까 애지 중지가 아닌 방목하듯 밥을 안 주고 방치해도 제멋대로 너무 빨리 자라는 통에 수시로 밀어주어야 하는 작업이 일상처럼 익숙하긴 하지만 때로는 선생님이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라도 해야 하는, 정말 하기 싫은 숙제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잔디 다듬는 일로 우리 쪽으로 넘어왔네 어쩌네 하면서 땅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런 문제로 이웃과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다.


이제 잔디 깎을 때마다 땅따먹기 놀이가 생각날 듯하다.

어릴 때의 재미있게 놀던 좋은 추억으로 가 아닌 기막혀 헛웃음이 나오는 묘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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