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필요해지는 이유
내가 챙기지 못하고 지나쳐도 가끔씩 잊지 않고 찾아주는 친구와 지인들의 안부는 언제나 반갑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이곳에 와 알게 된 지인의 전화다.
쉬는 날도 아닌데 연락이 와 오늘 출근 안 했냐고 했더니 갑자기 눈에 문제가 생겨 sick day 휴가를 냈다고 한다.
여행을 간다고 해서 한동안 연락을 못했는데 오랜만에 그동안의 근황과 가족들 특히 비슷한 나이또래의 자식들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 동안 아줌마 수다를 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갈수록 전에는 없던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나 생활이 편리하게 바뀌는 대신 거기에 맞춰 많은 것들이 변해 가면서 점점 같이 보다는 혼자가 더 익숙해지고 있다.
지금보다 부족한 것이 많아도 불편한 줄 모르고 당연시하며 살던 예전에는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뭔가를 우걱우걱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함께 밥 먹어줄 친구도 없어?"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산 거니?"
할 것 같은 시선이 따갑기도 하고 창피해서 인가?
누구와 함께가 아니면 차라리 굶는 쪽을 택했겠다던 불굴(?)의 의지로 주책없이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꼬르륵 소리를 배를 움켜쥐고 감내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참 친절하기도 하지...
그런 이들을 위한 배려를 해 준다.
혼밥 손님을 위해 도서관 열람실처럼 자리마다 칸막이를 설치해 줘 내 얼굴도 니 얼굴도 보이지 않으니 혼자라는 부담 없이도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캐셔가 없어도 키오스크에 있는 버튼들을 꾹꾹 누르면서 기기들과 소통을 나누고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기계가 알아서 척척 결제를 도와주고 서커스단 단원도 아니면서 곡예하듯 큰 접시를 양팔에 가득 올려놓고 홀을 누비고 다니는 서버들 대신 로봇이 쓱~쓱~지나다니면서 주문한 자리로 음식 서빙을 해 준다.
그뿐인가? 다 먹고 난 후에는 먹은 접시까지 수거해 가니 컴퓨터를 접해 본 적이 없는 노인들 말고는 사람들과의 대면 없이도 잘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람이 필요한 우리 부모님 세대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 것도 힘든데 때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먹기도 그렇고 누군가 준비해 주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만 한숨 쉬며 바라보게 되고 없어진 입맛 탓에 가끔씩은 맛난 것도 사 먹고 싶은데 자식들이 없으면 이제 밖에서 외식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굶으라는 건가?
그 옛날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릴 만큼 예의만은 지키면서 살았는데 이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저 세상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도 않다.
컴퓨터가 대세인 세상이라 컴퓨터만 켜면 모든 정보들이 촤라락~~ 한눈에 펼쳐지니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발품 팔면서 싼 곳을 찾아다녀야 했던 오프라인의 작업이 온라인에서도 까딱 까닥 커서 하나로 가능해지다 보니 굳이 때 빼고 광내면서 시간 빼앗기고 돈까지 써야 하는 비 효율적일 수 있는 외출을 할 필요도 없다.
무엇이든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모든 제반 시설들이 갖춰져 가고 그런 사회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다 보니 너도 혼자 나도 혼자... 더 이상 혼자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스트레스와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그럼에도 그걸 견뎌내느라 힘들어하면서까지 같이 해야 할 이유도 점점 없어져 간다.
정작 사람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고 사람끼리 부대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묻히면서 문명의 이기가 주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경험한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엔 공상 과학 영화에서 나오는 로봇의 출연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2000년이 오면 과학이 발달해서 로봇이 집안청소는 물론 설거지도 해주고 장도 봐준대"
그러면서 아침이면 세수도 시켜주고 양치도 치카치카... 진수성찬이 식탁 위에 짜잔~ 하고 준비가 되어있는 행복한 상상은 하면서도 "영화에서나 가능한 그런 날이 과연 오긴 올까? 설마~ "의심했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도와주라고 길들이던 로봇들이 스스로 진화해 도리어 인간을 공격하고 점령하는 끔찍한 장면도 영화에서는 이미 보았지만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화면을 통해서나마 그것을 실현해 보고자 하는 작가나 감독의 초월적 상상력이 낳은 결과물이고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그들이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를 투사해 봄으로써 간접 경험을 즐기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우리가 사는 동안은 아니고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글쎄... 아직은...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던 때가 그리 멀지 않은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주변에 비슷한 일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어떤 예능 프로에서 홀로 사는 남자배우가 입양(?)했다는 로봇(Robot) 인형을 앉혀놓고 아니 코봇(Cobot)인가?
우리 딸이라고 부르면서 기계사람과 부녀간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보면서 신기하다기보다는 좀 겁이 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 아닌 로봇이라 정형화된 듯한 말소리에 사람의 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묻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알아서 척척~ 게다가 아빠가 건강식이라고 말하는 식단이 제대로 되었는지 체크까지 하는 듯한 모습(?)을 보니 실제 사람이랑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긴 했다.
말동무가 절실히 필요한 외로운 사람을 위해서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다는 단순 차원으로만 본다면 꽤 획기적인 도우미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일을 감정 없는 그들이 대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로봇 말고도 언제 서부터인가는 인간의 학습, 추론, 지각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具現)하려고 만든 첨단 과학 컴퓨터 시스템의 일환인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에 소리소문 없이 슬며시 자리 잡고 앉는다.
인간이 사전에 입력시킨 논리 회로에 의해서만 작동된다는 로봇만으로도 무서운데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것을 스스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점진적으로 진화해 가면서 내용을 바꾸고 인간 두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처리까지 할 수 있다고 하니 그 보다 더 심각한 듯하다.
창작의 고통으로 머리를 뜯어가며 자신과 싸우고 진한 엑기스 뽑아내듯 쥐어짠 끝에 겨우 나오는 작곡과 편곡은 물론 이미 알파고를 통해 증명되었듯 바둑이나 스포츠까지 모든 방면에 사람을 능가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니 그 활용도야 높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영역을 초월해 자신들의 세를 넓혀가는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무한능력이 두렵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인간이 이 세상에 발붙일 곳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SF급 공포로 다가온다.
혼자 지내는 삶도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간절히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최면을 걸면서 혼자가 좋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다른 한편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 관계유지를 위한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없이도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이런 로봇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반대로 받는 일도 많다.
조직 안에서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움직여 줘야 하는 순간도 있고 함께 하려면 뭔가에 계속 맞춰 줘야 할 것도 같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자기반성을 하다 보면 자신이 싫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들도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럴 때면 이런저런 엮어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아무런 연관 관계없는 어디론가 혼자 무작정 떠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은 결국 혼자니까
모든 일이 그렇듯 자신의 루틴을 유지하는 가운데 무리로부터 잠시 빠져나와 아무도 터치하지 않고 아무것도 해야 할 필요 없는 편안한 순간에 누려보는 혼자만의 시간은 꿈속처럼 평온할 수 있고 어쩌다 누리게 되는 것들에는 행복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계속된다면 일상이 된다.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낼 수 있는 그 시간 속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있으니 그 순간에는 마냥 좋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매일 혼자의 삶이 지속된다면 그 또한 익숙해지기야 하겠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을 것이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무인도에서의 삶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곳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서 톰 행크스라는 배우가 주인공 페덱스(Fedex)사 직원 척 놀랜드(Chuck Noland) 역할로 분해 태평양에 홀로 남겨지면서 배구공으로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의 친구 윌슨(Wilson) 과의 이야기는 영화 내용 전체를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윌슨이었지만 그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음으로써 아무도 없는 곳에 자기만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고 상호 간에 오고 가지는 못해도 혼자만의 감정적 유대감을 만들어 감으로써 혼자라는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아닌 척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세상으로부터 혼자만 떨어져 나와있는 듯한 지독한 외로움과 자신이 구조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까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은 무인도에서의 삶을 그는 그나마 윌슨이 있어 그 생활을 버티며 익숙해져 갔을 것이다.
어느 날 몰아친 폭풍우에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떠내려간 윌슨을 구해내지 못한 죄책감과 그곳에서 살아내는 동안 자신의 유일무이한 동반자였던 친구에 대한 상실감으로 그의 세상이 무너져 버리니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
영화 전체를 본다면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어떤 공감도 이끌어 낼 수도 줄 수도 없는 배구공에 불과한 윌슨을 이름까지 지어주며 인격화시켜서라도 주인공이 늘 곁에 두었어야만 했듯이 그에겐 친구가 필요했고 인간은 혼자가 아닌 타인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도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 진다.
살다 보면 하나씩 알아가는 것들이 있다.
혼자가 익숙하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긴 하지만 함께라서 위로받는 경우도 많이 있다.
로봇이나 AI들이 설쳐대 인간이 발 붙일 곳 없어지고 따뜻한 정이 없어 험악하다고 느껴질지언정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좋을 때도 힘들 때도 같이 공감해 주고 곁에서 아무 말 없이도 내 이야기를 그저 들어줄 수 있고 잘하지 않아도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래서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이가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혼자가 익숙해도 때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