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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2. 2023

사람을 보는 방법

너한테 잘해줘?

뭐가 잘해주는 건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느낌을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책으로 공감을 배울 수 있을까? 언어가 담긴 보편적인 뜻으로 마음을 맞춰갔던 것은 아닌가? 차츰 문자라는 것들이 쌓아놓은 의미들이 한 가정 그리고 한 집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의미와 색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차이가 꼰대,  세대차이와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추상적인 개념은 결혼을 해야 할 시점에서 너무도 어려운 난해한 감각ㆍ감성적인 문제였다. 그 추상을 빠른 시간 내에 알기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다.


잘해준다는 건 뭐야? 친구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편해? 맘에 들어?


_편한 거 같긴 한데 뭐가 맘에 들어야 하는 거야? 넌 뭘 보는데?


그러니까 거 있잖아. 네 말 잘 들어줘? 맛있는 거 비싼 거 잘 사줘?


_음.. 그런 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맞선을 보고 나서 내 친구하고 대화했던 내용이다. 친구에게는 만남의 출처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다. 먼저 그곳을 통해 결혼한 언니의 충고여서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름 일반적인 짐작은 됐기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숨기게 됐다.


친구하고 통화 후에도 잘해주냐는 의미에 대한 답은 뭘까? 알 수가 없어서 이미 결혼한 친언니에게도 물었다. 언니는 또 맛있는 거 사줘? 레스토랑 자주 가? 니 형부는 결혼 전에 갔었는데 후에도 자주가더라고 말해줬다. 아 레스토랑 갔었지. 그런데 그래도 모르겠던 마음 그게 뭔지를 몰랐다. 가족들은 와~대박 직장 좋으니 괜찮아라고 했다. 그리고 전에 다닌 최초의 직장 후배는 "와 대박 언니 성공했네. 축하해. 사모님 소리 듣겠네ㅎㅎ."다들 좋아하는데 나는 뭔지를 모르겠었다. 그래서 커플 매니저께 상의드렸다. 그가 18,000원 되는 삼겹살을 왜 내 돈 주고 내가 먹지도 않은 고기를 내가 사야 되냐에 대한 생각을 여쭸다.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아이고 힘드셨겠어요. 그분을 실제로 뵙을 때 꽤 괜찮은 분인 것 같았어요. 요즘 그렇게 자가로 집을 가지고 있으신 분도 드물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아버지 한분이라 힘드실 거예요. 어머니를 잃으셨다고 하니 얼마나 어렵게 사셨을까 생각돼요. 앞으로도 회원분이 다른 만남에 있어 더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위로드릴게요. 또 언제든지 힘들고 궁금한 점 있으시면 전화하시고요...


라고 했던 것 같다. 난 그 말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게 나의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이해는 제삼자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업무적일 일에는 효율적이고 굉장히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연인에 있어서 이해는 당사자에게서 직접 구했어야 한다. 이해를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에게서 받고 나는 성자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의 아들, 사이비종교관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이다. 무기력증은 무관심을 동반한다. 누군가는 일방적인 말을 할 것이다. 옆사람은 타박할 경우가 잦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외골수에 강성 나르시시스트다.

"어째 네 엄마는 젊었을 때 나를 그렇게 나쁘다 했을까. 아직도 모르겄어."

라고 3년을 말씀하셨다. 남편의 차 안은 그들의 독백의 공간이자 회한의 공간 성자 앞에 고백의 공간과도 같았다.(이제 결혼하자마자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낯선 며느리, 그것도 임신한 여성은 어린 생명을 품은 성자가 아닌가. 마음상태가 태교라 하는데 무엇을 신랄하게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투쟁하거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사이비다. 선한 척 얄팍한 언어의 가면을 두고 속삭이듯 위선의 모습,  비열함.) 그들은 그것으로 모든 죄를 씻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들은 내게도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는데, 인간이 여든이 다되어서도 깨닫지 못하신다면,  그렇다면 저 사람과 나도?라는 불안만 커졌던 지난 5년의 위협스럽던 남편의 차 안 40여 . 


그들의 회한과 독백과 같은 고백은 위협이 됐다. 내 마음과 귀에 칼을 휘두르고 말한다. 그들은 듣는 귀가 없다. 그들은 경청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온전히 자기 안에 갇혔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받든 자의 다짐이라 하겠지. 억지스러움. 그들은 죽은 자를 다시 소환해 매도질 한다. 아들의 며느리를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쳤던 고인을 불러들여 돌팔매질을 한다. 아버님의 독백으로 고인이 되신 어머님의 설움을 보듯이 느꼈다. 그 어떤 추함과 설움을 느껴야 하는 달리는 공간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그윽하게 깔려오는 스산한 어둠의 그림자. 다가오지 마. 속삭이지 마. 난 다르게 할 거야. 난 달라. 난 달라. 난 다르니까.

경청은 속삭임이 아니야.

경청은 고독하고 거룩한 침묵의 귀야.



대학원에 가니 같은 과에 다른 전공을 하시는 10살가량 많으신 선생님께서 내게 그러셨다.

아이고 그게 정말 힘든 건데,  그러니까 결혼생활을 거의 성직자처럼 사셨구나. 대단하시네요. 사실 저도 이혼했어요. 10여 년 됐습니다. 아하 이런 고백을 하게 되네요. 그러니까 니체글을 읽고  외우면서 버티셨다는 게 거의 성직자들의 삶이거든요. 사람들이 결혼 전에는 서로를 채우려고 반쪽의 다른 사람을 고르는데,  살면서 완전해졌다고 착각하거든요. 사실은 그 옆사람 때문에 채워진 건데. 그래서 그 착각으로 또 이혼을 하고 다시 결핍으로 살게 되죠. 하하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상담직을 했거든요. 아이고 하하 의도치 않게 말이 나오네요.


인생의 지혜가 담긴 따뜻한 말씀이셨다. 누구보다 큰 위로와 위안이 됐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말씀을 하지 많았는데 더 큰 위안을 받게 되는 건 뭘까. 따스했다. 그냥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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