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해줄까? 그러면 쌀 수 있겠어?”
A가 내 휜 페니스를 쥐며 천장만을 응시하는 나를 걱정한다. 긍정의 대답이 딱히 도움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 몇 분간의 애무로 성공한 사정이 주는 쾌감이 그리 좋지 만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물티슈로 내 아랫부위를 닦는다. 하기 위해선 일단 사귀고 보자는 안일하고도 비통하고도 부채 의식 가득한 생각은 항상 뒷전이고, 몸을 섞고 나서야 상기된다. 이불도 덮지 않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나체의 A를 옆, 말보로 골드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곤 창 밖에 비친 달을 바라본다. 넌 좋겠다, 한 달이 지나도 넌 그대로여서. 관계는 식탁 위의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기까지의 기간만큼만 지속된다.
그녀와 나는 상경대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앵두 같은 입술, 높이는 낮지만 그 끝이 날카로웠던 코, 한 여름밤의 호수 같은 눈망울에 반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이 시작됐다. 그녀도 내가 첫사랑이었다. 둘 다 처음이라 서툰 부분이 많았다. 손을 잡을까, 뽀뽀는… 아니 키스는 언제 하지? 일주일에 몇 번 보는 게 안정적일까. 하지만 사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런 질문들이 다 무의미하다는 듯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대화에선 향긋함이, 만남에선 은은함이, 스킨십에선 야릇함이 둘 사이를 뒤덮었다.
음식과 사랑의 차이는 유통기한의 확인 유무, 그리고 그 야속한 기한이 지나고 난 먼 미래에도 맛을 상상할 수 있다와 없다이다. 이별은 예고 돼 있었지만 예측할 수 없었다. 사유는 여느 커플이 헤어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그러나 허공을 뚫고 매일 찾아오는 후폭풍을 견디기 위해선 그녀가 피면 입을 찢어 버리겠다던 담배가 필수로 작용했다.
A에게 팅팅 부어버린 볼을 선사받은 후에도 내 입에는 여전히 담배 한 개비가 자리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모든 관계는 쾌락에 대한 욕망에만 기인하기에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엔 오직 공(空)만이 있다. A가 떠난 후 문득 꽁꽁 숨겨두었던 그녀와의 추억이 보고 싶어 진다. 윗 서랍엔 사진, 그 밑 서랍엔 편지, 맨 밑 서랍엔 그녀와 섹스를 하려고 아껴두었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콘돔이 있다. 헤어진 직후 태워버리려고 했던 그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기한이 지난 콘돔 하나를 뜯어본다. 비릿한 그것의 냄새에 괜한 상념에 젖어 버리는 것도 잠시 문자 소리 ’띵!‘. 내 귀를 두드린다.
- 공아, 잘 지내? 1년 반만인가? 오랜만에 우리 한 번 볼까?
207호 열쇠를 받은 그녀가 익숙한 듯 모텔 방문을 연다. 거진 만날 때마다 했던 우리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녀의 새빨간 입술, 쉐딩으로 높아진 코, 렌즈를 껴 달라진 홍채, 민트색 블라우스 속 누드 브라, 검붉은 H스커트에 검은 망사 스타킹까지. 아니 그게 이상한 게 아니다. 그것을 보는 것이, 그녀와 나의 입술이 닿는 것이, 촉촉한 그녀의 혀로 젖는 내 귀가, 뭉툭한 내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유두의 감촉이, 응당 챙긴 기한 지난 콘돔을 내 페니스에 씌우는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이상하다. 도무지 사정을 하지 못한다.
“입으로 해줄까? 그러면 쌀 수 있겠어?”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그녀는 내 입을 찢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