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우리가 만난 그 겨울로 시계태엽을 감는다. 너는 첫눈에 반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웠고 나는 뭐 나름 주변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외형을 갖췄다. 내 눈 안에 담긴 너는 일순간에 내 마음에 거센 너울을 일으켰다. 주저하며 떨리는 내 손은 어느샌가 자판기 앞으로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캔 하나에 향해 있었다. 그리 멋지지 않은 글씨로 멋쩍은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을 캔에 붙여 너의 사물함 안에 두었다. 아차, 전화번호를 안 적었네… 다시 사물함을 열려던 찰나의 너와의 눈맞춤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수업을 듣다가도, 신촌 길거리를 걷다가도, 담배를 피우다가도, 꿈속에도 네가 없는 자리가 없었다.
시계태엽은 몇 백번을 돌고 돌아 째깍째깍, 제 일을 다시 한다. 이불을 개고, 창문을 연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한다. 책상 두 번째 서랍을 열어 우리만의 것이었던 작은 상자를 꺼낸다.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리한다. 사진은 종이일 뿐이고 인형은 플라스틱일 뿐이다. 추억은 먼지처럼 흩어진다. 누구의 잘못도 없다. 죄책감도 나누지 않는다. 눈 내리는 겨울하늘, 그 사이 매섭게 춤추는 찬바람에 물결치며 떨어지는 잎사귀들, 코트 깃을 세우고 바닥만 응시하며 신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내 세상, 그 밖으로 너를 보내련다.
이뤄지지 않는 것. 이를테면 다시 코끝에 겨울이 오지 않는 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