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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20. 2023

다섯 살 때부터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다섯 살 때부터 나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장아장 걷던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거리를 걷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배우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바로 학원을 등록해 주셨고 전자피아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주셨다. 당시 집에서 해맑게 전자피아노를 치는 사진을 지금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사진 속 나를 집중적으로 봤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나보다 당시의 집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 방 하나 딸린 살림으로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는데 자녀를 위해서라면 피아노뿐만 아니라 뭐든 망설이지 않고 해주는 부모님이셨던 게 확실하다.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나는 꽤 오래 피아노를 배웠다. 주변 친구들의 경우 대부분 초등학교 6학년을 기준으로 음악 학원을 관뒀는데 나는 중학교 3학년까지 다녔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배우면서 각종 연주회와 콩쿠르에 나갔고 제법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아찔하고 짜릿한 순간엔 늘 부모님이 계셨다. 콩쿠르에 나가면 심사위원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연주할 수 있다. 종소리가 울리면 멈추고 내려와야 하는데 그 소리가 울릴 때 나만큼 크게 반응했던 사람은 부모님과 지도해 준 선생님이셨다. 초등학생 4학년 때 콩쿠르에 나가 2등을 한 적이 있다. 순위를 발표하는데 내 이름이 나오자마자 무대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기뻐했던 사람이 부모님이셨다. 그 정도로 나와 피아노의 조합을 진심으로 응원했던 분들이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뒀을 땐 잠시 멈추기를 바라는 눈치를 보내셨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피아니스트가 진짜 되고 싶은지 나의 마음에 대한 의문이 처음으로 들었다. 피아노를 다섯 살 때부터 쭉 치면서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레슨비를 비롯한 경비 문제와 피아노로 어떤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정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나의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제법 진지한 고민을 했다.      


  감사하게도 주변에는 나의 고민을 들어줄 어른들이 있었다. 먼저 음악 학원 원장 선생님. 원장 선생님은 여덟 살 때부터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는데 약간의 칭찬과 제법 많은 쓴소리를 번갈아 해가며 지도를 해주셨던 분이다. 어느 날 레슨을 받다 원장 선생님께 “선생님, 피아노로 전공을 선택해도 괜찮을까요?”라고 여쭤봤다. 약간의 정적 후 선생님은 “소라야, 피아노는 취미로만 즐기렴. 피아노 말고도 재밌는 것들이 많아. 소라 피아노 잘 치는 거 선생님도 너무나 잘 알지. 그런데 다른 선택의 폭도 무시하지마.”라는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이어서 “고등학생 되고 나서도 방학 때마다 언제든지 놀러 와. 언제든지 와서 마음껏 피아노 쳐도 돼.”라며 피아노와의 연을 이어갈 수 있게 힘을 주셨다. 당시에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으면 피아노와 끝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곡을 마음껏 칠 수 없는 상황이 될까 두려워했는데 원장 선생님의 말을 듣고 피아노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있어 안도했다.     

 

  부모님은 내가 피아노를 좋아하는 걸 알기에 상처 입을까 그만두라고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두 분 모두 너의 선택이니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하셨다. 피아노를 계속 치겠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지원을 해주겠지만 하고 싶은 다른 일들도 없는지 고민하고 결정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돌아보면 그런 존중이 학창 시절의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됐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해야 하구나, 내 길이구나. 나와 맞는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진로 탐색 시간을 가진 끝에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왜냐면 당시 나에게는 피아노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 동방신기 오빠들이 있었다. 이 뜨거운 마음을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 방송국에 취직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방송국에서는 정당하게 오빠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오빠들을 보겠다는 엄청난 포부로 피아노에 대한 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든지 학원을 찾아와도 된다는 원장 선생님의 말을 잊지 않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음악 학원의 문을 몇 번 두드렸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있을 때는 연주하다 틀리면 스스로 질책하고 어떻게 해야 연주를 틀리지 않고 잘 마칠지 고민하기 바빴다. 그런데 피아노를 가볍게 접근하니 피아노를 더 즐기게 됐다. 피아노가 주는 즐거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주목받을 수 있다. 연주가 시작되면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좋다. 연주의 시작과 마침을 정하는 건 나니까,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 신난다. 둘째,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연주가 그렇겠지만 피아노 연주는 흐름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도’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힘으로 쳤는지에 따라 음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만큼 집중이 필요한데 낮에 받았던 스트레스, 인간관계 등을 잠시라도 떠올리는 순간 연주는 연습의 수준에 그치고 만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음악에 그리고 연주하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연주를 위해서 손가락의 끝, 팔목의 힘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나의 상태를 직시하게 되고, 바깥의 상황과 한 발짝 멀어질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 그냥 잠시 피아노 건반 소리를 듣고 싶을 때 거실에 놓인 피아노 뚜껑을 든다. 그러곤 일곱 살 때 나간 콩쿠르에서 연주한 소나티네부터 중학교 3학년 때 학예회에서 연주했던 쇼팽의 즉흥 환상곡, 그리고 2년 전에 배운 글린카의 종달새까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중간중간 음이 틀리고 박자도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곡들을 다시 만나면 그때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나름의 추억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소나티네를 연주하면 음악 학원 방마다 흘러나오는 다양한 소나티네가 겹쳐 들리는 것 같다. 쇼팽의 흑건을 치면 중학생 시절 한창 인기 있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를 같이 연주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피아노란 마음도 달래주고 추억여행도 어렵지 않게 시켜주는 참 좋은 취미다. 


  사실 요즘도 종종 만약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했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 물론 지금보다 뛰어난 연주를 할 테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더 성숙해졌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을까? 그리고 피아노를 즐기며 칠 수 있을까? 직업이 되어버리면 가벼운 마음을 갖는다는 게 쉽지는 않다는 걸 알기에 이런 의문이 드는지도 모른다. 서른한 살인 지금 중학생인 나를 만난다면 안아주고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많이 힘들지. 너무 속상해 하지 마. 잘했어. 넌 이제 피아노를 즐기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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