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프로세스로 공직사회는 돌아간다. 때문에 관리자의 리더십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팔로우십보다는 리더십의 비중이 훨씬 크다. 팔로우십이 아무리 좋아도 리더의 능력과 그릇에 따라 행정수준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공직사회에서 관리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일단 가장 작은 규모의 직원들을 통솔하는 팀장이 있다. 3~10명 정도의 실무직원을 지휘한다. 그리고 그 팀이 3~5개가 모여 한 부서(과)를 이루는데 이를 지휘하는 부서장(과장)이 있다. 또다시 이 부서가 몇개가 모여 하나의 국·실 등 조직을 이루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국장 및 실장이 있다. 이중 팀장은 중간관리자라고 부르기도 하며 플레잉코치 성격으로 실무와 관리를 동시에 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장들은 게을러서 실무는 아예 손을 놔버리고 관리업무만 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 관리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으며 안다 해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직무유기를 대놓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는게 일이다. 놀기 위해 출근한다. 그들에게 관리업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며 그저 결재할 일이 있으면 몇마디 코칭해주고 결재하는게 관리자의 모든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관리자들도 소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도 관리업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는 서투르다.
그렇다면 관리자의 업무란 무엇일까? 크게 보면 업무를 관리하는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일로 나뉜다.
관리자가 해야 하는 일
1. 업무관리
-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조직의 전체적인 업무추진상황 확인 및 검토
- 실무자가 보고하는 각종 업무사항에 대한 판단과 결재
- 자신보다 상위 관리자의 업무지시를 받아 추진
- 실무자가 업무추진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경우 구체적인 업무코칭
2. 직원관리
- 직원 간 공정한 업무분장
- 직원 근태관리
- 직원 업무량 관리
- 직원 간 사전 갈등요소 차단, 갈등이 일어났다면 적극 중재하여 사태해결
- 격려와 질책을 통한 공직기강 확립
- 소속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개인생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워라밸 관리
이에 따라 관리자의 등급을 나눠 본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A등급: 업무관리와 직원관리에 모두 열심인 자
B등급: 직원관리에만 열심인 자
C등급: 업무관리에만 열심인 자
D등급: 직원관리 업무관리 모두 하지 않는 자
E등급: 직원관리 업무관리 모두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직원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자(갑질상사)
필자는 1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관리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났지만 A등급 관리자는 딱 1명만 만날 수 있었다. 90% 이상은 D등급이나 E등급이며 C등급 관리자가 소수를 이룬다. B등급 관리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귀유형인데 직원 입장에서는 매우 편안한 관리자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관리자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업무보다 직원관리다. 업무에만 집중한다고 사람이 따라오지는 않지만 사람에 집중하면 업무성과는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공만 쫓아다니는 축구는 동네축구다. 주말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이나 어르신들 축구경기를 보면 우르르 공만 쫓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월드컵 경기를 보면 선수들은 공이 아니라 공간에 집중한다. 공간을 확보하면 공의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골도 넣게 된다. 관리업무도 이와 같다. 업무에만 집중하는 관리자는 하수 중에 하수다. 그보다는 사람 관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직에 있는 관리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혹은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힘들기 때문이다. 그 힘든 일을 하라고 돈을 많이 주고 진급시켜서 관리자의 일을 맡긴 것인데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안분지족만 원하며 탱자탱자 시간만 보내고 월급을 받는다.
업무관리는 상대적으로 쉽다. 중간관리자인 팀장만 해도 최소 10년의 공무원 근무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10년동안 쌓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실무자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어떻게 이 일을 추진해야 하는지 한눈에 훤하다. 쉽게 코칭이 가능하다. 공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부분이 반복업무다. 아주 새롭게 일을 벌여 추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랜 경력에서 쌓인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지시하면 그만이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직원관리는 어렵다. 정말 어렵다. 심지어 공직경험이 수십년 쌓여도 어렵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게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변화무쌍하다.
일단 공정한 업무분장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이란 무엇인가? 직원들이 처한 사정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직원은 아픈 부모님을 혼자서 부양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직원은 맞벌이 부부인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아직 아이가 어려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출근하는 것 같다. 또 어떤 직원은 극히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금만 섭섭한 일이 생기거나 힘들어도 눈물을 흘린다. 또다른 직원은 호탕하고 시원시원하게 일을 하지만 세밀하고 꼼꼼한 면에서는 부족하다. 사람이란 이렇게 모두가 다르다. 지구에 사는 70억 인구 중 그 어떤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과 업무스타일을 파악하여 어느 한 직원이 너무 고생하거나 놀고만 있지 않도록 공정하게 업무를 배분해야 한다. 만약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직원을 배려하여 그 직원에게 다른 직원보다 적은 업무를 할당했다고 가정해본다. 다른 직원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개인사정은 말그대로 개인의 사정일 뿐인데 그것을 고려해서 업무를 적게 배정한다는게 말이 되나? 무슨 결혼하고 애 낳은게 벼슬인가?’ 당신이 관리자라면 이렇게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러한 사정을 봐주지 않고 정말 칼같이 공정하게 업무를 배분한다면 그게 공정한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정답은 없고 직원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관리자는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맡고 있다.
직원 간에 일어나는 갈등관리도 중요하다. 사람이 함께 모여있다 보면 갈등은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이유가 너무 다양해 열거할 수도 없다. 초중고 학교시절을 떠올려 보자. 같은 반 모든 학생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는 없다. 수만가지 이유로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고 편이 갈린다. 관리자는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이러한 갈등을 수습해야 한다.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하지만 갈등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만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양쪽 이야기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다. 관리자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떤 조치를 내려야 갈등당사자인 직원들의 상처를 봉합하고 우리 조직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그 누구한테 조언을 구해봐야 답이 나올리 없다. 왜냐하면 그 조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신. 담당 관리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담당 관리자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해결해야 한다.
격려와 질책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일도 관리자의 기본업무다. 우리나라 직장문화를 가장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화 ‘미생’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장그래가 근무하고 있는 팀에 격려 방문한 회사 임원이 그 팀이 이루어낸 성과를 칭찬하면서 관리자로서 자신의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잘한 사람 있으면 상 주고 못한 사람 있으면 벌 주고 그게 내 일 아닌가?’ - 미생
관리자의 업무를 가장 알기 쉽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또한 관리자들은 하지 않는다. 잘한 사람에게 격려와 칭찬도 하지 않고 명백하게 잘못한 직원에게도 질책하지 않는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칭찬도 중요하지만 질책도 중요하다. 그런데 욕 먹을까봐, 이 직원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두려워 질책하지 않는다. 직원이 지각을 해도, 정당한 이유없이 업무를 회피해도 질책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고생하는 사람만 고생하게 된다. 관리자는 고독한 자리다. 사랑받는 자리가 아니라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자리다. 직원과 친하게 지내면 안된다. 친구가 아니다. 관리자와 관리받는 공적 관계다. 엄정한 상벌로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칭찬과 격려에 신경을 쓴다 해도 그 경중을 조절하지 못하는 관리자들이 대부분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일을 해낸 직원에게는 과도한 칭찬과 격려를 쏟아내고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저 수고했다 한마디에 그친다면 직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그 기준이 관리자 본인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관리자는 항상 직원들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야구감독 중 한 명인 김성근 감독은 본인의 저서 ‘김성근이다’에서 자신의 리더십 철학을 대중에 공개했다.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부분은 어떤 선수가 홈런을 쳐도 그 선수에게 눈빛 한번 주지 않았다는 대목이었다. 보통 선수가 홈런을 치면 감독이 하이파이브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하는데 본인은 눈빛도 주지 않고 그냥 무표정으로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선수를 혹시나 편애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에 그것마저 절제했다고 한다. 그리고 홈런뿐만 아니라 희생번트를 잘 댄 선수, 도루를 한 선수, 수비를 잘한 선수 모두 그마다의 가치가 있기에 홈런 친 선수만 특별히 격려하고 칭찬한다면 팀의 기강을 흐뜨릴 수 있다는 감독의 판단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종류는 모두 다르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만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공통 특징은 있다. 바로 끝없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일이다. 정답이 없기에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했듯이 공직에서 근무하는 관리자들은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는 완전히 손을 놓고 직무유기한다. 왜냐하면 힘들기 때문이다. 힘들긴 하다. 하지만 그 일을 하라고 진급시켰고 리더의 자리를 맡겼다. 당연히 말단 실무 공무원보다 월급도 많이 준다. 그런데 안한다. 개인적으로는 범죄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 직무유기로 실무 직원들이 받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 최근 공직에서 벌어지는 직원 간 갈등으로 정신적 상해를 입고 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약으로 버티는 직원들이 많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공무원들도 늘고 있다. 극단적 선택으로 순직을 청구한 공무원의 수는 2019년 20건에서 2022년 49건으로 단 3년 사이에 두배가 넘게 늘었다. 사람들은 갈등 당사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원인은 관리자의 직무유기다. 관리자가 고민하지 않고 업무분장을 했기 때문에, 관리자가 누군가를 편애했기에, 관리자가 질책할 상황에서 질책하지 않았기에, 관리자가 중재하고 조정할 상황에서 그러지 않았기에, 작은 갈등으로 끝날 상황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가 공직에서 계속 일어난다.
D~E등급의 무능한 관리자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공직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 힘도 권한도 없는 9급 공무원들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고통 속에 체념할 뿐이다. 정말 견디기 힘들다. 공무원 자살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같은 공무원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무능한 관리자들만 도처에 널려 있고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나를 지켜줄 관리자는 직무유기 중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조직이 공직사회다.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는 관리자만 널려 있는 직장.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 당신이 이런 곳에서 평생동안 고생할 이유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