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단점은 경제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주체적인 의사결정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다. 오로지 상사의 뜻대로 그들의 입맛에만 맞게 모든 일이 진행된다. 내 의견도 주민의 의견도 그 누구의 의견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윗분의 뜻. 그것뿐이다. 과정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과에 과정을 끼워맞춘다. 그 결과는 당연히 기관장이, 관리자가 결정한다.
A라는 상사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기관장일 수도 있고 기관장 바로 아래의 임원급 관리자일 수도 있다. A가 (B)라는 사업을 추진해 보자고 지시하면 그 절차는 아주 기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단, 그 사업을 왜 추진해야 하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무조건 긍정적’인 통계자료와 이유들을 긁어 모으기 시작한다. 이 사업의 부작용이나 안좋은 점 등은 애써 무시한다. 언급한다 해도 비중을 줄여 잘 눈에 띄지 않게 한다. 보고자료를 직접 작성하는 직원도 알고 그 자료를 검토하는 윗사람도 안다. 이렇게 보고서를 만들면 안된다는 것을. 이 사업을 시행함으로써 따라오는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A 상사는 내 근무평가점수를 결정하는 사람이고, 좁디 좁은 공무원 사회에서 내 평판을 결정짓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내 공무원 커리어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의사결정과 정책추진 과정이 항상 이런 식으로 돌아가니 합리성이 보장될리 없다. 모든 업무가 이런 식이다. 합리성과 객관성, 투명성은 뒷전이다. 오직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국가도 없고 국민도 없다.
언뜻 보면 생각없이 복종하는 바보들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일반 기업처럼 각종 성과관리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공무원 세계에서는 경쟁의 장이 ‘진급’에만 한정되어 있다. 내 근무평가점수를 주관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관리자, 기관장이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의 심기를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된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공무원 문화도 한몫 한다. 이 사업이 잘못되면 내 잘못이 아니라 지시한 관리자의 잘못으로 몰고 가면 된다. 굳이 이 사업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소신 있게 의견을 냈다가 내 말이 틀리면 어떡할 것인가? 그냥 관리자나 기관장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게 편한 길이다.
공직사회에 만연한 이 잘못된 업무문화의 근본원인은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배우지 못했고 배웠다 해도 자신의 권한을 극한으로 행사하고 싶어하는 기관장과 관리자들에게 있다. 관리자의 지성과 교양 수준이 매우 낮다. 내 뜻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직원은 일 못하는 직원으로 취급한다. 싸가지 없는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사회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50대 시니어 관리자들의 인식이 딱 이정도다. 아무 희망이 없다. 어찌보면 이들도 불쌍하다. 평생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 온 이 사람들도 다 이런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보고 배운대로 그대로 할 뿐이다.
얼마 전 춘천시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된 일이었다. 최근 MZ세대 공무원들이 임용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조기퇴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신규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이름표를 나무에 달고 그 나무를 시청 인근에 직접 심는 행사를 개최했다. 내 이름이 걸린 나무를 신규 MZ 공무원들이 직접 심으면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정이 붙고 조기퇴직도 줄어들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이였다. 신규 공무원들이 자신의 이름표가 걸린 나무를 심는 행사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의 조롱리플이 줄을 이었다. 왜 신규 공무원들이 임용되자마자 퇴직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고 제도적으로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의미 없는 겉치레 행사를 개최하는 그 행태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업이 어떤 절차로 결정되고 실제 시행되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눈에 선하다. 어떤 관리자가 자기 이름이 달린 나무를 심으면 공직에 애정을 갖지 않겠느냐며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실무직원들은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관리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좋은 사업같다며 추진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행사를 준비하고 신규 직원들을 불러다 나무를 심고 사진을 찍고 보도자료를 냈을 것이다. 그리고 사고가 터졌다. 전 국민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작태인가. 내 이름 달린 나무를 심으면 MZ세대 공무원들이 공직에 잘 적응할 것이다라는 그 생각은 참을 수 없이 고루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공무원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그 말을 입에 올릴 수 없다. 무조건 복종. 상사의 뜻에 반하지 않게.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사고가 터져도 그의 책임이니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괜히 내가 반대의견 냈다가 찍힐 수 있으니까. 이것이 공직사회의 의사결정 알고리즘이다.
차라리 군대의 의사결정 체계가 깔끔하다. 군대는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상관의 명령이 불합리하더라도 절대 거역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무릅쓰고 적에게 돌격해야 하는 전시상황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군령이 무너지면 군기가 무너지고 군기가 무너지면 필패하기 때문이다. 상관은 모든 책임을 지고 명령을 내리며, 병사들은 그 명령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위선으로 점철되어 있다. 실상은 군대처럼 무조건 복종을 원하는데, 겉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척 국가와 국민을 기만한다. 회의는 그렇게도 많이 하면서 알맹이는 없다. 그저 기관장의 훈화를 열심히 듣고 메모할 뿐이다. 그래서 결국 엉뚱한 일이 터지고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되면 서로 남탓을 한다. 실무직원들은 관리자의 뜻대로 했을 뿐이라며 관리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관리자는 이 사업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보고받았으며, 그 자료에 근거하여 결정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심한 공직문화 속에서 MZ세대 공무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자율성과 다양성은 조직 발전의 필수요소인데, 이러한 긍정적 요소들은 공무원 조직에서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문화를 비판하고 바꿔야 되겠다 열을 올리다가 1년 1년 연차가 쌓여갈수록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체념한다. 그렇게 자신이 욕하던 상사들을 닮아간다. 뻔히 아무 효과도 없어 보이는 사업들을 그냥 시행한다. 어차피 국민 세금이다. 내 돈 아니다. 내가 결정한 일도 아니다. 그저 관리자 뜻대로 기관장 의지대로 해주고 진급이나 해서 내 잇속이나 챙기자라는 철저한 공무원식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그렇게 나만의 주관, 나만의 공직철학은 설 곳이 없어진다. 얼굴도 공무원스러운 얼굴이 된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말을 않는 것이 버릇이 되어 버린 얼굴’ - 펄벅 '대지'
유일한 해결책은 공직사회를 통솔하고 있는 시니어 관리자들의 인식 변화다. 내 지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 지시에 반대의견을 내는 부하직원들을 우대해야 한다. 사실 이런 부하직원들이 가장 고마운 직원들이다. 내 실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사로서 권위가 있기에 내 뜻에 반대되는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부하직원이 있으면 잠깐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표해야 한다. 그게 윗사람이 당연히 할일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만 언뜻 훑어봐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제도나 규정, 환경을 바꿔서 해결될 내용이라면 뭔가 희망이 있을텐데 해결의 중심이 ‘사람’이기에 의미가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대상이 10~20대도 아니고 사회생활하면서 단물쓴물 다 맛본 50대의 중년이라면? 이들의 사고방식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세계에 꽉 막혀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분들 중 비교적 연령대가 어린 분들이 공무원생활을 20년 이상 하고 결정권자의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뭔가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공무원 절대 하지 마라. 그렇게 선한 의지를 갖고 열정을 갖고 자신을 절제하며 개방성과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젊은이라면 월급 2백만원 받으면서 20년 버텨 공직문화 바꾸는데 투신하지 말고 더 높은 곳에서 더 넓은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그에 맞는 사회적 대우와 열매를 성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