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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귀분 Jan 24. 2024

내 어머니 이삿날

 어머니가 입원을 하셨다. 독감이 전국을 휩쓸던 해 어느 겨울이다. 50대부터 해소가 있어 숨쉴 때 목에서 바람소리가 났지만 잘 견디시며 70이 넘었다. 입원당일 밤 10시부터 갑자기 혈압이 고르지 않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혀가 둔 해졌다. 울고 있는 막냇동생을 손짓으로 부르더니 동생의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울지 말고 찬송가 불러라.” 허공을 가리키며 “나 데리러 천사가 저기 와 있다.너는 안 보이니?”  굳어가는 혀로 간신히 아버지를 향해 “저녁 잡수러 가세요.” 가 마지막 말씀이었다. 목사님이 도착하고 임종예배를 드렸다. 어머니가 평생 부르던 찬송”만세 반석 열 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모두 울음을 삼키며 찬송을 불렀다. 어머니는 가슴위에 얹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환~하게 빛이 나고 미소 띤 얼굴. 주무시는듯 혼수상태가 되었다. 새벽 6시.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편안히 가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떠 날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정갈하게 정리 정돈하고 곧 다가올 그때를 대비하는 것 같았다.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을 떠나 새 집. 새 살림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이는 사람처럼 보였고 오랜 방랑을 끝내고 그리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같았다. 어머니는 세상 떠나는 것을 하늘로 이사 간다 하셨다.


어머니는 근동에 소문난 미인이셨다. 서글서글하고 큰 눈. 여자 코가 너무 높다 소리를 듣던 오뚝한 코. 우유 빛 피부. 갸름한 얼굴 선. 후덕하고 다정한 인품까지 갖추신 분이다. 딸 셋이 모두 어머니를 닮지 않았다. 특히 나는 외모 뿐 아니라 단호하고 냉정하며 고집센 성품. 안장다리 걸음까지 아버지와 똑 같다. 사춘기때 아버지 닮았다는 소리가 너무 싫어서 뒤꿈치 들고 직선을 걷는 피 나는 연습으로 안짱다리 걸음을 그예 고쳤지만 고쳐지지 않는 성품은 어쩌란 말인가?      

      

병상 머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어머니 임종 순간에 “아이고. 내 수족이 떨어졌네. 나는 어찌 살까?”하셨다. 나는 임종한 어머니 머리맡에서 자신의 불편 하게 살 걱정만을 하는 아버지를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아버지~.할말이 그것 밖에 없어요?”치를 떤다는 말을 이런 때 쓰나 보다. 내가 6~7세때 기억 속 무섭고 싫던 아버지는 성인이 되면서는 무서움 대신 증오심을 키웠다.  함께 늙어가면서도 어머니를 종처럼 부리던 아버지. 아버지의 명이라면 지엄한 법으로 알고 복종하던 어머니. 마지막 혀가 굳어 가면서도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던 어머니 모습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랑이라는 걸까?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질기고 질긴 집념과 애틋함이 소름이 돋도록 싫었다.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병실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수런거리고 간호사가 뛰어왔다.

 

넓고 큰 강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작은 배들이 줄지어 떠있는 선착장이 눈앞에 있다. 강이 갈라져 T자로 작은 샛강이 흐르고 나는 그 샛강 가에 앉아서 누구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복을 입은 어머니가 강 너 나타나셨다 나는 너무 반가워 강을 건너려고 한발을 물에 담갔다. ”서두르지 마라. 그 자리에서 잠시만 기다리면 너를 데리러 수상택시가 올 것이니 그것을 타면 된다.” 삼 년 전 어느 날 새벽 꿈이 였다. 


나는 미국에서 맨하튼과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혼잡으로 유명한 맨하튼으로 가는 차량이 죠지 워싱턴 브리지에 빽빽하게 서 있었다. 그때 허드슨 강에 사람을 가득 태운 수상 택시가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 위를 질주한다. 배에 탄 여자들의 긴~금발머리와 멋스러운 머플러 가 개선장군의 깃발처럼 휘날린다. 운 좋은 날은 배가 지나가며 일으킨 물 안개에 무지개가 뜬 것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 광경을 가끔 내려다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 수상택시를 꼭~타 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출 퇴근용 회원제여서 타 보지 못했다. 


나는 평생을 신안 고난 살았지만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80이 지나면서  죽음의 문제를 놓고 지척이며 가족을 힘들게 하지 말고 속히 데려가시라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샛강 언덕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 는 꿈속 어머니의 전갈은 죽음에 대한 내 기도의 응답이다. 늘~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간절히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의 심연에 조용히 엎드리면 어느 날 신 새벽 꿈에서 번득이는 예지몽으로 응답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깨는 순간 은유로. 묵시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또렷이 분명하게 깨닫는다.


나는 기다리던 수상택시가 오면 재빨리 타기만 하면 된다. 신호등도 교통체증도 없는 강을 질주하는 수상택시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만물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품으며. 모두를 용서하며 사신 어머니. 천사 같은 어머니는 딸들과 이별의 인사조차 나눌 새 없이 황망하게 가셨지만 가시는 순간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리신 듯 차분하고 평안했다. 


나는 어머니보다 십년을 더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해방과 사변. 419와 516. 12.12. 518. 문민정부의 탄생까지 나라의 굴곡진 역사의 폭풍우 속을 지나오며 운 좋게 살아남았다. 지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깨끗이 지우고 싶은 누추한 내 삶의 흔적들이 부끄러울 뿐. 바라는 것도 세상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다. 내 이삿날은 언제일까? 이미 정해졌겠지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 만날 날이 다가옴일까? 보고싶고 그리워도 좀처럼 볼 수 없던 어머니를 요즘 꿈에서 자주 만난다. 염치없게도 어머니처럼 가고 싶다.

                                         2024.1. 15.  강 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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