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철학> 3주차. 2025. 3. 20. 春分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에 통달하기 전까지는 세상의 어떤 기술로도 인간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시킬 수 없다.”
―브라이언 로빈슨
엊그제 수업에서 연기학과 학생들이 말하길, 연기를 하면서 경험한 큰 변화는 “자기표현에 주저함이 없어진 것”이라 했다. 원래부터 그런 성향은 아니었고 반복되는 연습과 활동을 통해 그렇게 됐다는 것인데, 이는 자존감 내지 자신감의 상승과 맞물려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좀 더 얘기를 들어보니 그 원리가 드러났는데, 연기를 하는 중 배역에 몰입하면서 자기 내부에 정박된 상태가 되고 이를 반복하는 동안 내적 변용이 일어난 것이었다.
안으로 파고들면서 자기를 밖으로 표출하는 행위, 나는 이것이 창작 활동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존재의 알(껍질) 또는 심리적 저항을 깨는 수행적 기능을 한다. 심리적 저항이란 무엇인가? S. 프레스필드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부패시킴”으로써 “신이 우리에게 정해준 인생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힘”이다. 프레스필드는 또한 “소명이 강할수록 이를 저지하는 힘도 크다”고 했는데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영웅의 힘과 빌런의 힘은 비례한다. 그래서 ‘영웅의 여정’에서는 출발 단계부터 저항의 작용, 즉 ‘소명의 거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현실 생활에서는 자주, 신화나 이야기에서도 드물지 않게, 우리는 소명에 응하지 않는 답답한 경우를 만난다. 다른 데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기에 자신의 소명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만든다. 타성이나 괴로움, 또는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부 1장 2절 <소명의 거부>)
그러나
"주저한다고 해서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마음은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른 부정적 상태는 뜻밖의 해방의 원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고의적 내향성은 창조적 정신의 고전적 방편 중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 장치로 응용할 수 있다. 이 방편은 심적 에너지를 심층으로 몰아 무의식 및 원형적 심상이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활성화시킨다.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의식의 초인적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저항 내지 어둠의 힘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빌런의 힘에 눌린 상태에서 영웅이 ‘깨어’ 있(으려 하)게 되면 그 의식은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가 된다. 맨 위 인용구처럼 이러한 시간을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에 통달하게 되면서 빌런의 에너지까지 영웅의 내구력에 흡수되게 된다. 이것이 앞으로 직면할 곡절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되기에, 영웅의 여정에는 이러한 에너지 통합 작용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무위의 기술에 먼저 통달해야 진정한 잠재력(Self)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의식적인 무위 단계가 끝나면, 팽팽하게 정지돼 있던 화살이 발사되듯 강한 유위(有爲)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이 경우 행위의 주관자는 작은 나(ego)가 아니라 큰 나(Self)가 되는데, 그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에고의 화살은 강력하고 정확하게 엑스텐을 향해 날아간다. 이때 에고는 셀프의 충실한 도구 내지 친구가 되어 큰 뜻을 이루는 데 한마음으로 합작한다.
춘분(春分)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영웅과 악당이 용호상박으로 맞서다가 오늘의 분기점을 통과하며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