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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Dec 03. 2023

상담선생님, 보고 싶어요.

부제: 선생님께 하지 못하는 말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상담이 20회를 넘어가는 지금, 상담사 선생님과 나는 라포(Rapport: 친밀한 유대관계)가 상당히 끈끈한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선생님을 많이 좋아한다. 안 그래도 낫기 싫은데, 상담 종결할 생각하면 더욱 낫기가 싫어진다. 객관적으로 얼굴이 예쁘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따뜻하신 분이다.



짧은 침묵 때마다 서로 눈을 바라보다가 한쪽이 씩 웃으면 상대방도 따라서 씩 웃는다. ;) 내가 이 얘기를 친구에게 해주자, 친구는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선생님의 학번으로 유추하건대 우리 엄마와 나이 차이가 거의 안 나시는데, 자식도 있는 여성 분이시고, 나는 이성애자인 여성이라 우리가 그런(?) 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0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두터운 유대관계가 형성된 것이, 당사자인 나도 신기하다. 선생님께서 훌륭한 상담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거의 편집증 수준으로 의심이 많고 방어기제가 단단해서, 이렇게 누군가가 좋다고 찬양하는 게 참 오랜만이다. 당장에 이 글도 보고 싶은 마음을 해소하려 쓰고 있다.



나는 환자이고 마음이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선생님은 나무, 나는 그 말단에 달린 나뭇잎인 셈이다. 나의 왜곡된 인지를 선생님께서 고쳐주시는데, 그 과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무가 나뭇잎에 양분을 제공하듯 ‘떠먹여’ 주신다. 왜냐면 적지 않은 우울증 환자들은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의지나 의욕조차 없기 때문이다. 죽을 용기가 생기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면, 나는 올해 재수 생활을 하며 자기혐오가 극심했다. 우울증은 의지가 없어지는 병이라서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해내는 게 정상인들에 비해 더 어려운데, 그럼에도 나는 나를 심하게 질책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나를 보며 자책은 더 심해졌다.



이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건 모두 선생님 덕분이다. 상담 극초기부터 아마 매 회차 하셨던 말씀일 거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못 해도 괜찮다고. 이젠 그 사실을 나 역시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강 신경증 환자인 나는 아직 선생님과 함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치의 선생님이나 상담선생님께 가능한 솔직하려 한다. 그게 옳으니까. 그럼에도 모든 얘기를 상담 때 꺼내지는 못 한다. 괜히 양측이 의식하게 될 것들 특히.



예를 들면, 나는 상담선생님이 아무리 좋아도 (내 딴에는) 제한적으로 표현한다.


“상담 시간만 기다려요.”

“종결 안 했으면 좋겠어요. “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선생님 덕분이죠.”

“SNS에서 본 건데, 여러 상담사 유형 중에, 선생님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이에요.”



대략 열 번의 상담동안 내가 한 표현이라곤 이게 전부다. 이전에 상담 시간을 늘려달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굉장히 미안해하시며 거절하셨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상담 시간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투명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것 같다. 솔직히 당장 전화번호라도 달라고 하고 싶다. 규정상 불가능하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는다.



혹은 선생님의, 엄마로서의 모습도 궁금하고, 나의 사고 체계가 너무 이상하지 않은지 대답해 달라며 직설적으로 물을 수도 있다. 만약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선생님은 과연 어떻게 대답하실까. 곤란해지실까 봐 그냥 일방적인 토로에서 그치려고 한다.



또는 이런 류의 말도 못 한다. 우울증이 심했을 때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다. “제가 죽어도 슬퍼하지 말아 주세요. “



마지막으로, 나는 거의 무신론자인데, 선생님께서 아니시라면 어떡하지..? 그러나 이미 물은 엎어졌다. 니체 말마따나 신은 죽었다고 신나게 얘기했던 게 몇 주 전이다. 왠지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양측의 가치관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대처하실까?


됐다. 나는 내담자다. 더는 고민 안 할 테다.



다음 상담은 12월 6일이다. 그날만 기다린다. 얼른 뵙고 마주 앉아서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이르듯 우울증이 이번 한 주간 나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다 말해버리고 싶다.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니 가족들에겐 못 하는 얘기까지 (일방적이지만) 다 할 수 있는, 특별한 관계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꼭 대학 붙어서 자랑하고 싶어요. 매번 웃어주시고 좋은 얘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곧 봬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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