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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Apr 02. 2024

심계항진과 우울

봄과 겨울 사이

어느덧 4월이다. 나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고,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며 전보다 나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 비교적 고차원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대학교 공부가 나와 훨씬 잘 맞을 것임이 뻔했다. 공부를 능동적으로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들이 들고 가슴이 아픈데,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멀쩡하고 맑아진다. 새내기답게 닥치는 대로 약속을 잡고 있는 요즘, 나는 2016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물론 이 평온은 상대적이다. 사는 게 여전히 힘들다. 힘듦을 느끼는 시간이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동기들과 함께하는 건 물이 새는 독에 임시방편으로 얇은 테이프 한 장을 붙여 놓은 것과 같다. 술도 자주 마신다. 내 우울은 호르몬 문제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를 고통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화학적 물질인 알코올에 의존 아닌 의존을 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싶진 않기 때문에 처량하게 혼자 술을 까거나 하진 않지만 매 순간 알코올이 필요한 느낌이다.




동기들과 함께, 과제를 하는 것과 수업을 듣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해 격한 토로를 하다가 살기 싫다는 말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이렇게 살 바엔 살기 싫은 거라고 덧붙였고 동기들은 아무 신경 안 쓰겠지만, 오래 우울에 잠식되어 있는 나로서는 이게 '정상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들렸는지 알 수 없다. 나한텐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있잖아, 모든 게 싫증 난다. 공부하는 것도 이전보단 훨씬 재미있지만 동시에 지겹다. 낫기 싫다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강하게 드는 것도,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인해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픈 척하는 걸 경계하는 것도 지겨워서 미쳐버리겠다. 그 경계를 가장 심하게 하는 시간인 심리상담도 슬슬 지겨워진다. 정말 매우 간절히, 내가 확실히 낫거나 완전히 악화되었으면 좋겠다. 괜찮지도 안 괜찮지도 않은 지금의 애매한 상태가 괴롭다. 힘든 척하는 것 같은 내가 혐오스러워서 상처를 내어서라도 벌을 주고 싶다. 안 힘들면서 힘든 척하는 거 진짜 싫어.


같이 과제를 하던 동기는 떠났고 나는 선배들과의 밥 약속 시간까지 혼자 카페에 남아있기로 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아리고 요동치는 심장. 그런 걸 처음 느낀 건 열두 살 때였다. 당시 상황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뛰는 것은 참 불쾌한 느낌이다. 공황 발작이 일어날 때는 지금보다 배는 더 강하게 온다. 워낙 오감이 예민한 탓에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판단되어 심박수를 재보면 분당 100회가 될락 말락 한다. 그렇게 빠른 건 아니다.


내가 태어났다는 것에, 그것에 대해 답도 안 나오는 실존적 고민들을 멈출 수 없다는 것에 미친 듯이 화가 나서 이 노트북을 부숴버리고 싶다. 세상도 싫고 나도 싫다. 그냥 다 싫다. 긍정적인 사고 회로가 멈춘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삶이란 게 어렵거나 힘들거나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둘 다라니.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날 좀 구원해 주세요.


내가 낫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우울증이 낫게 되면 더 이상 병 뒤에 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쉴 수 없게 된다. 즉, 나는 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파야만 쉴 수 있는 사람이고, 성과를 내거나 1등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잘해야 한다. 이유는 없다. 비논리적이라는 걸 아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또한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불안장애 뒤에 숨을 수 있다. 나는 환자니까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낫는다면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두 번째 큰 이유는 세상을 사는 게 두려워서 그 고통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악화되어야 죽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건강한 정신 상태로는 날 사랑해 주는 이들이 눈에 밟혀 죽지 못할 것이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나에게 사랑을 주지 말고 매몰차게 떠나 줘요. 여태 고생했으니 이제 편해져도 된다고 말해줘요. 이기적이라 미안해요. 저를 미워해 주세요. 제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지 말아 주세요. 나는 신의 실수로 지구에 태어난 이방인 같아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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