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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Jul 13. 2024

두 번째 입시를 시작하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재수생활이 끝났던 2023년 12월 말. 나름 좋은 학교에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다. 그리고 반년 후인 2024년 7월 초, 두 번째 입시가 시작됐다. 목표는 의대 편입. 



작년 말, 미국 의전원에 입학하는 루트가 내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얼마 안 지나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걸 알게 된 나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나 스스로를 보며 나는 또 충격에 빠졌다. 내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되면 말고'가 아니었다. 되어야만 했다. 급히 여러 영어권 국가들의 의대와 한국에 남아있는 의전원을 알아봤다. 수능을 세 번째 볼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등록되어 있는 유학원에서 상담도 몇 번 받고, 영국 의대 입시를 시작하기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올해 3월, 한국 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친구는 없어도, 전공에만 몰입하여 공부하고 이전보다 천 배는 자유로운 생활이 정말, 정말 잘 맞았다. 동기들이 종강을 원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4월과 5월, 올해 겪은 것 중 최악의 우울삽화를 보내며 '의대 따위. 내가 무슨 사람들을 돕겠다고...'와 같은 생각들을 했다. 지금도 큰 심경의 변화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의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죽는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가능성에도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야 한다면, 잘 살아야 한다. (아니, 잘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걸 받아들이질 못해서 상담 때 매번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이전의 열정은 다 소진되고 미미하게 남은 것들이 향하는 유일한 곳이 임상에서 병리와 약리를 연구하고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다른 여러 직군들도 고려해 봤으나 정신과 의사가 나와 가장 잘 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즉 급조해 낸 꿈을 이루기 위함이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근데 안 된다는 걸 작년에 재수를 하며 깨달았다. 내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나는 삶이 의미 없고 행복도 희망도 필요 없다 여기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을 위해 노력해 볼 의향은 있다. 그래서 요즘 내 삶에 나는 없다. 다 타인 위주다. 그리고 이 상태에 별로 불만족하지도 않다. 삶이란 것이 내게 전혀 소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렇다. 재수 종합반을 3월부터 11월까지 다닌 걸로 모자라 또 인터넷 강의 패스를 사고 교재를 잔뜩 샀다. (사실 딱 두 과목인데도 권수가 참 많다..) 일반생물학 1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재밌을 줄 알았다. 들을만하다. 일반화학 2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필기시험 범위인 동시에 이번 2학기에 배우는 내용이라 예습 목적까지 일석이조다. 



면접(MMI)은 은근히 자신 있다. 솔직히,,, 내가 의사가 안 되면 누가 되나 싶다. 시험 점수를 잘 받는 법을 아는 사람들 말고, 의학 공부가 좋고, 정신과 주치의로부터 정신의학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봤으며, 돈이 아닌 사람을 위해 이 직업을 택한 나를 부디 뽑아주시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의학전문서적 코너에만 있는 나를 뽑아주시오. 



토익도 자신 있다. 영어가 나의 가장 큰 능력이기 때문에.



문제는 GPA이다. 1-1 학점은 3.92/4.5가 나왔다. 다음 학기에 아무리 못해도 4.1은 넘겨야 한다. 사실 그것도 부족하긴 한데, 잊지 말자.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서 나를 몰아붙이지 말자. 매일 생물 강의 두 개, 화학 강의 하나를 듣는 게 목표다. 안 되는 날도 당연히 있을 거다. 가령 친구와 노는 날. 



그냥... 꿈도 열정도 다 증발해 버릴 것 같지만 남은 한 가닥씩 소중히 쥐고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자 한다. 



아, 생각해 보니 미적분학도 들어야 한다. 어떡하지.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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