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초등에서 이십 년간 근무해 온 딱 한 사람의 교사가 쓴 개인적 의견이니 너무 가볍게도 너무 무겁게도 읽지 말고 그저 그러려니 하십시오.
가볍게 읽어도 될 근거는 딱 한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이고, 무겁게 읽어도 될 근거는 한 직장에서 이십 년간 매년 수십 명의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쓰기는 니가 써놓고 받아들이는 건 내 몫이냐?' 따지고 싶겠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법입니다.^^
통지표의 사전작업인 학생생활기록부를 작업하는 시기에 저는 '이상형'을 떠올립니다.
저의 이상형은 조인성 같은 큰 키에 이종석처럼 뽀얀 피부, 소지섭처럼 넓은 어깨에 조나단의 유머감각, 이동욱의 그윽한 눈빛에 공유처럼 천진난만한 미소, 유재석의 리더십에 조세호의 공감능력.. 과연 이 모든 것을 겸비한 자가 존재할까 싶지만 잠시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남자가 내 남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느새 광대승천!
어쨌든 누구에게나 이상형은 현실과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그저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이지요.
담임교사로서 이상적인 학생상, 즉 학생으로서 이상형을 생각한 건 2급 정교사에 머물러 있던 3~4년 차즈음이었습니다. 그땐 혈기가 왕성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경계조차 몰랐던 철부지였고 '아이들의 역량 또한 내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지요.
하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나'는 한계가 분명한 초라한 존재일 뿐이고 모든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결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며 그 결점을 극복하며성장하는 삶이야말로 아름답다는 여유도 배웠습니다.
고로 저의 통지표해석은 댁의 귀한 자녀를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시간이 갈수록 통지표에 적을 수 있는 '학생 성장을 위한 교사의 솔직한 의견'은 줄어든 데다부정적인 표현은 멸종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통지표의 담임 의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1. 학생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학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교사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 학부모님이 먼저 학생의 결점에 대해 알고 계시고 이야기를 꺼내주시면 조금은 쉽게 제 의견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말씀하시지 않더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싶다면 교사가 먼저 연락을 드리기도 합니다.하지만 사소한 문제나 그저 조언으로 드릴 수 있는 의견을 교사가 먼저 말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공 받을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갑자기 딱딱한 농구공을 던져주는 느낌이랄까요?
2. A4 양면 가득 채워져 배부되는 학년말 통지표 중 학생에 대해 참고할만한 유의미한 문구가 몇 퍼센트나 될까?
- 유의미한 의도로 넣었으나 이 또한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라 대부분은 무의미하게 다가가고 말 것임을 교사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칭찬은 대부분 확실한 것을 적으므로 부모님께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테고, 발전을 위한 조언이나 충고는 생활기록부에 남겨두기에는 적절치 않기에 기록되기 어렵습니다. 고로 교사는 고민에 고민을 더해 적으나 부모입장에서 자녀교육에 도움이 될만한 유의미한 문구는 10% 안쪽에 머물 것 같습니다.
3. 그럼 초등학생 통지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행동발달상황은 참고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아이의 학교생활 전반에 걸친 내용은 아닙니다. 그저 참고하시되 조언이나 충고, 디테일한 정보가 필요할 경우 담임선생님께 문자나 전화로 먼저 상담을 요청하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