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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YUNA Jun 13. 2023

뉴욕 한복판에서 한식을 외치다니

한식이라 쓰고 정(情)이라 읽는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수도 없이 해봤으나 한 번도 한식이 생각난 적이 없었다. 철이 없던 나는 그것을 혼자 자랑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번 뉴욕여행에서는 한식이 미친 듯이 당겼다.  


퇴사 후 충동적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항공권을 발권하고 출국까지 딱 이틀이 걸렸다. 한마디로 계획 없이 뉴욕 한복판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여행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천차만별인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 그리고 가장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음식이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 정도는 찾아봐도 유명한 음식점은 잘 알아보지 않는다. 미국 여행은 그런 점에서 좋았다. 어떤 음식이 유명한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엔 강경 한식파들이 있다. 그들은 짧은 해외여행길이라도 꼭 한식을 챙겨간다. 못해도 고추장이라도 들고 간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려 한다. 그를 A라고 하겠다. A는 이전 거래처 사람으로 40대 중반의 평범한 남성이다. 그 사람과 함께 미국으로 일주일 정도 해외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해외 거래처는 우리에게 매일 밤 고급 음식점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고급 스테이크, 유명한 피자 등등. 


그 당시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미국은 처음이라 모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문제는 A였는데 며칠이 지나자 거의  그의 낯빛이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는 4일 차쯤에 한식이 먹고 싶다며 나에게 포기 선언을 했고 나는 그를 위해 주변 한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왔다. 정말 놀랍게도 한식을 먹자마자 그의 얼굴색이 핑크빛으로 변했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10개국을 다녔으나 한 번도 한식이 생각난 적이 없어, 이번 뉴욕 여행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확히 여행 5일 차 밤에 라면이 너무나도 생각났다. 주변에 먹을 것은 많았으나 뭐든 좋으니 한식을 입에 넣고 싶었다. 


다행히도 숙소 주변에 한인마트가 있어서 밤이었지만 라면을 구할 수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한 젓가락 먹자마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던 것이 아니라 한식을 그리워하고 있던 것인가. 앉은자리에서 국물까지 싹싹 먹었다.


식사를 끝낸 후 가만히 앉아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음식 때문에 힘든 이유가 뭘까 고민해 보았다. 지금까지 여행과 다른 점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기회가 없으니 여행지에서 간단하게 햄버거나 피자로 때우고 시간이 없으면 길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먹었다. 챙겨 먹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느낌으로 먹었다. 


이제야 답을 알 것 같다. 이역만리 해외에서 먹은 그 음식들은 위장을 배 불려줄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채워줄 수는 없던 것이다. 누군가와 밥상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소박한 기회조차 없었기에, 몸에서 스스로 누군가의 온기라도 느껴보고자 한식을 찾아다녔나 보다. 아마 A 부장도 그랬겠지. 처음 가는 낯선 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만 먹다 보니 탈이 났던 것이다. 


더해서, 한국인들은 유난히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 얘기를 많이 한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든가 하는 그런, 대부분 실제로 대답이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닌 질문들. 헤어질 때도 다음에 밥 한 끼 하자고 하지 않는가. 그런 우리에게 음식이, 특히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한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야 알았다. 앞으로 어딜 갈 때 라면 하나쯤은 챙겨가야겠다. 먹지 않게 되더라도 정이라도 느껴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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