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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금 Jan 15. 2024

감정의 출발점을 찾아

이별의 순간, 나는 여섯 살 아이가 된다.

네? 퇴사한다고요?


2년째 다니고 있는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세 명의 사람을 떠나보냈다. 세 번의 이별을 겪었고, 이제는 네 번째 이별이니 퇴사 소식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퇴사한다는 동료들의 말은 언제 들어도 여전히 힘들다. 누군가와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심장이 뛰며 극도로 불안해지고, 정체 모를 공허함과 우울감이 밀려온다.      


뭐 그렇다고 퇴사한 사람들과 속마음을 나누거나 사생활까지 공유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몇 년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 일종의 동지애, 전우애를 나눈 사이가 아닌가. 그들과의 관계는 친구, 연인, 가족과의 관계처럼 명백하고 뚜렷하지 않아 표현하기가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그래도 어떠한 운명에 이끌려 만나게 된 특별한 인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료의 퇴사 소식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다소 과했다. 그 정도의 불안함과 우울감은 깊은 유대를 맺거나 도움을 많이 주고받은 사람이 떠날 때나 느낄 감정이 아닌가 싶었다. 더군다나 '대퇴사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에 누구나 한 번쯤 퇴사를 고민하고 – 나를 포함하여 - 누군가 퇴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분명 이 감정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르는 이 감정의 출발점을 찾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감정의 출발점은 여섯 살 때였다. 대부분 유치원을 다니는 나이에 나는 어린이집을 다녔다. 재취업을 위해 학원에 다니시는 엄마를 대신해 나를 장시간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뛰어든 엄마는 나를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아빠가 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역할을 담당했고, 그렇게 나는 아빠의 회사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차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낯선 서울의 땅 어딘가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은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가정집이었다. 그곳에는 7~8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여섯 살인 내가 가장 최연장자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나보다 한참 어렸다. 이유도 모르게 우는 아이들과 걸음마를 막 떼어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여섯 살인 내가 장성한 어른처럼 느껴질 정도로. 선생님의 관심과 돌봄이 오직 아이들에게만 향해도 서운해하거나 토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어린이집의 일상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자유 시간과 점심시간, 낮잠 시간이 전부였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과 낮잠 시간을 제외하면 약 여섯 시간 정도가 자유 시간이다. 자유란 적당한 책임과 의무가 있을 때나 달콤하고,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나 빛을 발하는 법. 또래 친구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여섯 시간의 자유 시간은 그저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매일같이 가기 싫다고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떼를 써도 결국엔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선생님이 틀어주신, 너무 여러 번 봐서 질릴 대로 질린 만화 영화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나더니 선생님이 현관문 쪽으로 나가셨고, 곧이어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선생님은 나랑 동갑 친구라고 설명해 주셨고,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어린이집의 최연장자 터줏대감답게 어린이집의 생활에 관해 설명해 주었고, 그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생기면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나가지 못한 놀이터에 가서 ‘뺑뺑이’를 탔다. 한 명이 타면 한 명이 돌려주며 사이좋게.


그렇게 친구와 함께하는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우린 뺑뺑이를 타러 놀이터에 나왔고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 친구는 내가 타고 있는 뺑뺑이를 한 번 세게 돌리고 서서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마디를 했다.


나 내일부터 여기 안 와. 엄마가 이제 안 가도 된다고 했어.


 그 말에 내 마음이 그날의 날씨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나마 온기가 돌았던 마음이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에게는 감옥과도 같은 어린이집에서 누군가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곳을 탈출한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놀람과 부러움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아이와  만날 수 없음에 슬펐지만, 그 아이는 나와 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다. 다음날 그 아이는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았고, 나 또한 다시 놀이터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명의 친구들이 어린이집에 들어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똑같은 말을 하고는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경험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이별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그렇구나'라고 덤덤하게 대답하는 것이나 잘 지내라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것쯤이나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은 분출되지 못한 채 차곡차곡 쌓여 갔다. 재밌게 나누던 이야기를 내일 이어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넓고 삭막한 어린이집에 또 나만 혼자 남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서글픔이 마음속에 턱턱 쌓여 갔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퇴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비슷한 상황에 툭 하고 튀어나온다는 것을. 만약 그때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쳤다면 어땠을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떼를 쓰거나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슬프다고 엉엉 울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마음이 더 큰 슬픔과 외로움으로 변해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했을 수도 있고, 이별이 또 다른 만남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별의 순간, 나는 여섯 살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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