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배틀로얄> 21세기 과소평가된 작품.

by Film Note by Evan

한 작품의 평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단순 한 방향으로만 평가받을 때 특히 아프게 다가온다.


21세기 초반 일본에서 개봉한 <배틀로얄>은 지금까지도 슬래셔 무비의 상징으로 불리는 동시에

한편으로 ‘슬래셔’ 한 영화로만 여겨지곤 한다.


즉, 이러한 평은 이 작품이 효과에 치중한 반면 내용의 측면에서는 비교적 아쉽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과연 이 작품이 잔인한 효과에만 집중하였으며

내용적으로도 일본의 당대 시스템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정도에서 멈추는 작품일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작품의 ‘고어’를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배틀로얄>의 형식이기도 한 ‘슬래셔’는 말 그래도 이 작품 속 가장 중요한 형식이며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정말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 이 형식이 지엽적인 의미로의 ‘스타일’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고어’는 이 영화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 속 섬에서 벌어지는 사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속 크게 3그룹으로 나뉘는 구성원들의 형태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일단 첫 번째 집단은 이 게임에 순응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게임의 승리이며,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하여 동창생들을 살인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그렇기에 팀 또한 이루지 않고 주로 단독적으로 활동한다.


두 번째는 혁명 파인데, 이들은 이 게임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대항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다른 학생들이 아닌 ‘기타노 다케시’를 포함한 이 게임의 설립자들이며 그렇기에 앞선 집단과는 반대로 이들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동창생들과 팀을 이루어 활동한다.


양산형 오락영화들은 이러한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두 집단의 충돌에 주목할 것이며

이 결투 속 승자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자체로 치환될 때가 많다.

그러나, <배틀로얄>은 전형적인 오락영화와는 달리 전혀 다른 지점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 속해 있으며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세 번째 그룹이다.


이 집단은 얼핏 보면 앞 두 집단의 교집합이며 그렇기에 여집합이기도 하다.


이들은 배틀로열이라는 게임의 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렇기에 서로 간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등 마치 혁명파와 같이 팀을 이루며 활동한다.


하지만 이 집단은 ‘기타노 다케시’의 단 한 줄의 경고로 인하여 불안이 갑자기 극에 달하기도 하며

이러한 심리적 불안정은 어제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인물들에게 총을 겨누게 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주목하고자 하는 집단은 어느 한 체제에도 적응 혹은 순응하지 못한 방황자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을 방황하게 하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이 작품의 극 초반부 시퀀스에서

수련회를 가기로 되어있던 버스 안 학생들은 원인 불명의 가스로 인하여 잠들게 되고

이 장면 후 카메라는 이 버스가 안개 자욱한 장소로 진입하는 것을 연이어 촬영한다.


즉, 이들은 아무런 정보와 준비 그리고 동의 없이 서로를 살육해야 본인이 살 수 있는 게임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이 게임은 운영진이 순서대로 주는 가방 속 총 그리고 사시미 칼 등 무기의 레벨 또한 다른 것으로 보아

애초에 공정성 또한 부재한 게임이다.


이러한 미스터리 가득하면서도 잔인하며 불공평한 게임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는 섬을 우리가 현재로 사는 세계의 상징으로 생각해 본다면

결국, 인간은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 세상은 불가항력으로 가득한 동시에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측면들을 종합해 본다면

이 작품이 주목하고자 한 것은 잔혹면서도 (마치 이 작품의 고어한 장면들처럼) 심지어 미스터리 가득한 이 세상인 동시에

3번째 집단처럼 이러한 세상의 불가항력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 극 후반부 게임의 막바지에

도저히 외부 요소 혹은 다른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들과 연관하지 않고는 설명불가한 장면들이 즐비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이 게임의 참가자들이, 혹은 이 세상 속 누구도 풀 수 없는 미스터리의 메타포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이창동’ 감독의 <버닝>처럼

<배틀로얄>의 스토리는 ‘해석’의 영역이 아닌 ‘포용’의 영역이다.


마지막 결국 게임에서 어쩌다가 승리하게 된 이 게임의 우승자들은 도쿄로 돌아오게 되고

그들이 위치해 있는 시부야는 버스가 진입하였던 장소처럼 안개로 자욱하다.


그리고 블랙 스크린 위 어찌 보면 ‘그냥 달려’의 의미를 가진 문장이 그려지고

이후 이 인물들은 이 안갯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작품은 끝나게 된다.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할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달리라고 말한다.

이 달리기가 단순 방황일지 혹은 방황을 필두로 한 성장으로까지의 연장일지

이 판단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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