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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aphic Dec 15. 2023

경희궁 트랜스포머

직업군인일 때 경희궁에서 프라다 전시 보고 온 이야기로부터



내가 여기 와 본적이 있던가...?


 요즘 궁궐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서울 5대 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중에 경희궁을 한 번도 안 가봤네?’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놀라운 과거를 기억해 내었다. 때는 2009년 여름,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직업군인이었던 나는 UFG 훈련에 워게임 작전장교로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명예로운 일이면서도, 근무지였던 부산을 벗어나 수도권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에 설렘도 느꼈다. UFG 훈련은 을지프리덤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 훈련의 줄임말로 1954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된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며, 나는 동두천에 위치한 미군 부대인 Camp Casey(캠프 케이시)로 2주간 파견을 발령받았다.

     


 훈련은 주중에만 이루어져, 주말에는 외출·외박을 나갈 수 있었는데 당시에 연고가 없던 나는 서울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PC방에서 검색을 하다 특이한 이벤트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PC방을 먼저 찾아야 하던 때였다. 그 특이한 이벤트란, 패션 브랜드인 프라다가 전시를 하는데 그것도 궁궐 안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한국에서 패션쇼와 전시, 팝업스토어 등을 개최하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아 매우 신기하게 여겨졌었다. 명품 브랜드에서 전시를 궁궐에서 하는 것도 신기했고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를 예약해서 간다는 것도 낯설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뭔가 민간인 다운 경험이었달까.      


경희궁과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경
프랜스폼 중인 트랜스포머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는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경희궁 앞뜰에서 진행되는 설치 프로젝트이며 4면체의 임시 건축물로 구조물 전체가 회전하는 이색공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육각형, 원형, 십자, 사각형 모양의 한 면으로 결합된 사면체의 구조물이 각 면에 해당하는 행사(패션, 영화, 미술 등)가 끝날 때마다 크레인을 이용하여 회전한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눈앞에서 구조물이 역동적으로 확확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궁궐 안에 미지의 전시공간이 구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꼭 보고 싶었다.


2009년 8월 16일에 직접 촬영한 전시 안내판
역시나 2009년 8월 16일에 직접 촬영한 프라다 트랜스포머


 막상 가니 경희궁 내에 트랜스포머 구조물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이게 다인가 다소 황당함을 느끼긴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부 사진촬영이 불가했는지 다른 사진이 없는 점이 아쉽다. 일정상 세션 3에 해당하는 Art Exhibition이 진행 중이었지 않았을까 예상하며 인터넷으로 옛 기사와 프라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십여 년 전의 추억여행을 이어갔다.

      

 당시 근무지가 부산이었지만, 소속 함정이 정기수리 기간이라 UFG 훈련을 참여할 수 있었기에 운이 좋게 프랜스포머 전시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기 태세 유지 때문에 서울에 오긴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풋풋했던 어린 군인에게 감흥을 주었던 전시와 경희궁을 십여 년이 지난 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니. 그 와중에 땡볕의 서울에서, 훈련 중간에 맞이한 주말의 짜릿(할 수도 있었을)한 외출·외박을 궁궐에서 열린 전시를 보러 갔던 그때의 나도 참 웃기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궁궐과 박물관을 가는 걸 좋아하고 전통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결국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으로 돌아오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트랜스포머 그 자체, 경희궁



 이렇게 옛 추억이 떠오른 김에 오랜만에 경희궁을 방문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유난히도 아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경희궁 자체를 트랜스포머라고 불러도 무방할텐데, 보수공사가 또 진행되고 있었다. 부분 관람 제한이 아니라 부분 관람 가능이 아니냐는 나름 블로그에서 유명한 현수막도 발견했다. 그래도 보수가 한창인 와중에도 부분적으로나마 개방하여 많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9월부터 12월 25일까지 4개월 여 동안 비교적 짧게 진행되는 공사가 곧 끝나니 크리스마스 이후부터는 선물처럼 보수가 끝난 경희궁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예전부터 복원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어서인지,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한 전각이 있는 궁궐의 느낌보다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사당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경희궁에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궁궐보다는 걷기 좋은 공원의 느낌이 나서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과 비교하면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이지만 이 또한 지금의 경희궁 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을낙엽과 함께 산책하기에 특히 좋은 궁궐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가을은 보수공사로 인해 어려웠을 테니 다가올 많은 계절들을 기약해 본다.  



 



사진 출처 모음

표지 : Visit Seoul https://korean.visitseoul.net

1. Camp Casey(캠프 케이시) 전경 : 경인일보

2. 경희궁과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경 : 프라다

3. 프랜스폼 중인 트랜스포머 : 프라다

* 해당 페이지 https://www.prada.com/kr/ko/pradasphere/events/2009/prada-transformer.html#

4. 2009년 8월 16일에 직접 촬영한 전시 안내판

5. 역시나 2009년 8월 16일에 직접 촬영한 프라다 트랜스포머

6. Visit Seoul https://korean.visitseoul.net

7. 경희궁 내부 : 직접촬영

8. 경희궁 내부 :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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