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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aphic Jan 03. 2024

전통의 떡국을 찾아서

동그란 엽전 모양의 특별한 국물 요리


특별한 날, 특별한 국물을 들이키는 우리     



 우리에게는 상고시대(삼국시대 이전)의 음복 음식으로부터 전해지는 -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특별한 날에 특별한 국물을 들이키는 것은 정말 한국인의 전통인가 보다. 떡국을 한 그릇 다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했는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 그릇 더 먹으면 2살 먹는 것인지 여쭈어봤던 일은 어느 집에서나 있는 추억일 것이다. 닭의 뱃속을 찹쌀로 가득 채워 삼계탕으로 끓여 먹는 쌀과 밥과 곡기의 민족인 만큼, 떡국은 과거 호화로운 정체 탄수화물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떡을 썰어 끓여 먹는 명절 음식이다. 지금은 보통 가래떡을 날카로운 타원형으로 썰어 떡국에 넣지만 이는 유래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와 ‘부자되세요’를 한 그릇에     



 일단 떡국의 주 재료인 가래떡은 희고 긴 모양으로 그 자체로 장수를 상징하며 한 해를 밝게 보내자는 뜻이 있다. 그리고 이 가래떡을 둥글게 자르면 당시 화폐인 엽전 모양과 비슷해, 많이 먹는 것이 곧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 보았는데, 엽전 모양을 본 따 썰었다는 떡국 떡은 왜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타원형인지 늘 궁금했다. 그런데 어릴 때의 나는 그냥 혼자 머릿속으로 궁금해하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리는 그렇고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3n년 만에야 ‘내가 동그랗게 썰어 먹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드디어 실행에 옮겨보았다. 연말에 너무 바빠 떡집에서 가래떡을 통으로 사 올 시간은 되지 않았고 문 닫기 전 겨우 마트에 갔는데 온통 어슷하게 이미 썰린 떡국 떡밖에 팔지 않았다. 그리고 베이커리 옆에 작게 마련된 떡코너에는 안에 팥 앙금이 들어있는 하이브리드 가래떡 밖에 없었다. 포기할 찰나 떡볶이 재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는데 구이용으로도 먹을 수 있는 통가래떡 봉지를 판매하길래 냉큼 집어들어왔다. 그런데 이미지만큼 큰 가래떡은 아니고 떡볶이떡 보다 살짝 더 큰 떡들이 들어있었다.     




전통의 떡국을 찾아서     



 신정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마자 떡부터 썰어보았다. 떡을 썬 뒤에 20-30분 불려놔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가래떡이라 적혀 있지만 떡볶이보다 살짝 더 큰 저 떡으로 내 상상 속의 엽전 모양의 떡국을 끓일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썰고 보니 너무 귀여웠다. 신이 나서 떡을 물에 불려놓고 계란을 흰자 노른자 분리하여 지단을 만들었다. 다른 것은 휘뚜루 마뚜루 해도 색색깔의 계란 지단은 꼭 얹어야 새해 떡국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계란 지단이 식을 동안 레토르트 사골곰탕을 끓이다가 떡을 넣어주었다. 떡이 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가끔 저어주었더니, 둥둥 떠다니면서 입수와 잠수를 반복하는데 매우 낯선 모습이었다. 작고 동그란 떡들이 둥둥 끓는 모습이 생각보다 귀여워 만족감이 컸다. 사실 이 정도면 얌전하게 말한 것이고 너무 귀여워 탄성을 질렀다. 산책하는 귀여운 강아지를 본 것처럼 꺅꺅대며 떡국을 마저 끓이고 먹었다.  




   

파일럿을 정규편성으로     


 예전처럼 대가족을 위한 떡국을 준비할 때에는 동그란 엽전 모양보다 어슷하게 타원형으로 썰거나 이미 썰어진 떡을 구매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구성원이 그리 많지 않거나 한 번쯤은 색다른 떡국을 먹고 싶다면 이렇게 만들어보는 것을 권유한다. 떡국의 유래와도 맞닿아 있고 가족, 연인, 친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육수는 레토르트 곰탕으로 대체한 마당에 전통과 유래를 언급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옛 방식대로 꿩 육수를 어디에서 준비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모든 이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생활에 가능한 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떡국 떡이 엽전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면 편의 중간을 네모 모양으로 뚫어 만드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했는데, 떡의 성형방식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나 하나 뿐은 아닐텐데 남들이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 이렇게 실험을 해 보았으니 다음에는 본가에 동그란 떡국을 전파할 예정이다. 그리고 떡이 작아서 귀엽기는 했지만 50원 짜리 동전을 먹는 느낌이라 이왕이면 100원짜리, 500원짜리 크기의 진짜 가래떡을 준비해서 다양한 크기의 떡이 있는 떡국으로 발전시켜 볼 것이다. 아직 구정 설이 남았으니, 모두 각자의 가정에서 의미있고 맛있는 떡국 한 그릇 드시면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부자 되세요!     



* 조선시대 궁중에선 동그랗게 썬 떡국을 끓여 겨울 밤참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떡국의 떡이 지금의 모양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실제로 경북지역에는 떡국 떡을 동그랗게 써는 ‘태양떡국’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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