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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Apr 19. 2024

4. 동글이는 울었고, 그는 연애를 하러 갔다.

그날, 진실의 서막이 드러나고 있었다.

2023년 5월 5,6,7일.


세상 모든 어린이들은 모든 날 행복해야 하지만, 특히 이 날은 더 행복해야 한다.

어린이날.

우리집 어린이는. 우리집 동글이는. 행복했을까.

적어도, 불행한 어린이날은 아니었어야 했다.



5월 5일 금요일 아침 7시.

동글이 기상에 맞춰 그에게 톡을 보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동글이가 쓴 어버이날 감사편지와 함께.

내용 중에는 "아빠 요즘 일 때문에 회사(기숙사)에만 있어서 보고싶어요. 5월에 오기로 했는데 넘었잖아요. 속상해요. 꼭 오세요."라는 내용도 있었다.

전날밤 읽으며 마음이 미어지는 편지였다.

3월 31일 결혼기념일 때 오고, 4월 16일 일요일 점심때 잠깐 광명시댁에 가서 보고, 어린이날이 가까워지는데 언제 온다는 연락조차 없었던 그였다.

안 보던 주말에는 감기에 걸렸다, 아프다, 회사에 일이 있다.. 못 오는 상황들이 생겼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2번 상간녀 데이트와 여행 때문에 오지 못했던 건 안 비밀이다. 하, 정말.. 그것도 모르고 자꾸만 감기에 걸리고 아프다고 하여 걱정했던 우리집 식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사위 감기 걸렸다고 따뜻한 추어탕 싸서 보내고, 속 안 좋다고 양배추즙 시켜 배달하는... 우리 엄마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카톡을 보내고 1시간쯤 뒤에 갑자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동글이가 "아빠!!!!!!!"하고 뛰어가 안겼다.

그가 왔다.

엄마도, 아빠도, 동글이도 기뻐하는 티가 역력했다.

어색한 건 나뿐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어린이날, 너무 습해 외출도 힘들었던 어린이날, 오랜만에 동글이와의 이런저런 놀이 끝에 피곤해진 그는 낮잠을 청한다고 방으로 들어갔고,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동글이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무얼 받고 싶냐 물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5월 5일이 어린이날임을 알고 있고, 그가 딸의 선물을 못 살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으나, 그는 빈손이었다.

동글이가 갖고 싶다던 지구본을 외할아버지가 사줬다 하더라도, 동글이가 무엇을 갖고 싶을지 모른다 하더라도, 작은 간식이라도 사 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든.

한참 슬라임에 빠져있던 동글이는 슬라임 지우개라 대답했고, 내게 슬라임 지우개를 쿠팡으로 시키라 했다.

어린이날 선물을 아빠인 그가 사 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문하라고 한 것이다.

어이없었지만, 동글이도 함께 있던 자리에서 '니가 사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쿠팡으로 시키려 보니 로켓 상품은 없고 3-4일 배송이 걸리는 것들 뿐이었다.

그래도 그거라도 시키래서 시켰더니,

한참 뒤에 커피를 사러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2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당근을 했다며, 손에 슬라임 지우개를 5-6개 들고 들어왔다.

그게 끝이었다. 동글이에게 주는 어린이날 선물이라는 것이.. 슬라임 지우개 5-6개.

2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당근을 하러 아주 멀리 다녀왔을 수도,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왔을 수도, 이제와 생각해 보니 바람을 쐰 정도가 아니라 아주 피고 왔을 수도 ㅋㅋㅋ) 그렇게 들어왔다.


밤에 동글이를 재우고 나오니 그는 다시 커피 사러 갔다 온다고 했다며 나갔고, 1시간 정도 지나 들어왔다.

아직 부모님은 이혼 이야기를 모르시니, 우리는 같은 방으로 들어가, 각자의 자리에 누워있다가 그가 침대 밑으로 나를 불렀다.

결.기때도 따로 잤는데, 갑자기 나를 이리 다정스레 부르는 것은 또 무슨 수작인가.

오랜만에 다정스레 불린 내 이름은 어리석은 내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도 했고, 한편 어떤 사탕발림으로 나를 꼬여내 자신의 이혼에 유리하게 적용시킬까 두려움에 떨게도 했다.

곧 서류 내러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어떠냐 그가 내게 물었다.

그는 이런 식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는다.

늘 나의 의중을 떠보고 내 패를 다 본 다음, 거기에 맞춰 자기가 가진 패의 일부만 오픈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이끌어낸다.

'흔들리지 말자. 내 의견을 확실히 얘기하자.' 다짐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힘들지. 그래도 서류 내는 날 떼쓰지도 우기지도 않을 거라고 약속해서 열심히 마음 정리 중이야. 나는 여전히 이혼할 마음이 없지만 그래야만 오빠가 산다면, 그 이혼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런데, 우리가 두 달 정도 이렇게 따로 살아봤잖아. 꼭 이혼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살면 오빠 마음도 편하고, 동글이에게도 안정적이지 않을까? 나는 이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서류에 도장을 찍고 하는 이혼이 아닌 그냥 별거를 하자는 취지였다. 주말부부처럼, 각자 평일에는 각자 인생을 살고 주말에 아이 만나 아이랑 놀고.

가끔 못 보는 주말도 있겠지만, 주말부부도 매주 주말마다 보는 건 아니지 않냐고.


- 사실, 그와 떨어져 지내는 생활이 편하기도 했다.

1. 나의 삶을 내 생각대로 살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가스라이팅 비슷하게 당했고, 그가 말하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저 그의 의견을 따랐던 삶을 살아왔다. 육아마저도 말이다. 이런 육아는 동글이에게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였다.

2.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빠들은 알 텐데, 아이를 재우고 난 육퇴 후 시간이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이 된다. 워킹맘에게는 더더욱이 그러하다. 그와 같이 살면서는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맞추어 생활을 했다. 야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한 나는 야식을 좋아하는 그의 입맛에 맞춰 매일밤 해비한 야식을 먹어야 했다. 그가 티비 예능을 즐겨보아 예능을 보아야했고(예능을 본다는 개념보다 티비를 그저 틀어놓고 그는 핸드폰을 했다.), 그가 잠자리를 원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날에도 잠자리를 가져야만 했다. 그와 따로 살며 동글이를 재우고 난 뒤, 거실에 친정부모님이 계시기에 공간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방에서 나는 미등을 켜고 책을 보았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OTT드라마를 보았다.

3.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의심도 하지 않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핸드폰을 옆에 끼고 사는 그를 볼 때마다 혹시나 상간녀와 연락을 하고 있나, 눈에 불을 켜고 봤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예 의심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다니는지 관심 갖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산 지 오래라서 적응이 된 건지 어디서 무얼 하든 건강하게 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컸고,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말부부에 대해 왜 사람들이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그런 편한 주말부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내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가족으로 살 수 있다면, 살 만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동글이에게도 아빠가 평일에 집에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아빠가 천안에서 일을 하게 되어(실제로 서울에서 일하던 그는 천안 본사의 일까지 맡게 되어, 서울-천안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천안 본사에 딸린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동글이의 친구 A처럼 주말에만 아빠를 만나는 거라고 얘기해 뒀던 터였다.-


그는 주말부부처럼 지내자는, 혹은 별거를 하자는 나의 제안에 그럴 수 없다고 답했고, 시어머니께도 이런 상황에 대해 대략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의 마음이 힘들어 나와 결혼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순간 눈물이 났다.

어머니께서 많이 힘들어하실 게 뻔해서, 조금 더 나중에 아셨으면 했다.

그도 울고, 나도 울었다. 서로 꼬옥 껴안고 숨죽여 울었던 밤이었다.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내게 잠자리를 원했고, 나는 응했다.


다음날 아침, 동글이와 함께 오랜만에 셋이서 동네 뒷산 산책을 했다.

잠시 전화를 받은 그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필요한 짐들을 챙겨 서둘러 떠났다.

지하주차장에서 동글이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울었다.

내일까지 쉬는 날인데, 왜 회사에 가야 하냐고.

어린이날인데, 왜 가야 하냐고, 울부짖었다.

그런 동글이의 울음은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그는 동글이를 끌어안고 "아빠가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울었다.

나는 그런 동글이와 그를 또 안고 함께 울었다.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왜 이래야만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동글이가 안쓰러웠다.


집에 들어와서도 동글이와 나는 계속 울었다.

동글이는 물었다.

"엄마는 왜 울어?"

"엄마도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어."

"아빠는 왜 또 가?"

"아빠가 바쁜가 봐. 동글이랑 엄마가 아빠 바쁜 거, 힘든 거 기다려주자. 그러면 아빠가 안 바빠질 때 또 보러 오실 거야."

내가 그날 울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동글이는 그날 이후 한동안은 아빠 보고 싶다고 떼쓰고 울지 않았다.

엄마가 울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속 깊은, 동글이니까.


그렇게 동글이를 잘 달래서 둘이 카페에 가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먹고  다음날 오후.(7일 오후)

진실의 서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동글이 친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글이 엄마, 어디예요? 우리도 대부도 왔는데~"

"네? 언니, 저희 집이에요~ ㅎㅎ"

"아! 그래요? 동글이 아빠를 본 거 같았는데? 아닌가 보다~ **이(동글이 친구)가 잘못 봤나 봐요~"

동글이 친구가 대부도 어느 카페에서 "어! 동글이 아빠다!!!"라고 해서 봤더니 동글이 아빠가 있었더랬다.

그 전화 이후 동글이 친구 엄마는 대부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정말 잘못 봤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얘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확실하지만 얘기를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진실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그리고 내 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번 상간녀의 외도 증거를 인별을 통해 확보하자, 그는 내게 인별 등 SNS금지령을 내렸었다.

촉을 믿어보기로 했다. 인별 가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학교홍보용 인별 계정 찾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내가 그의 두 번의 외도로 얻은 것이 있다면, 써칭 능력.

인터넷 속 알고리즘은, 나를 그의 외도 현장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연결고리들을 형성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타고 돌아다니기만 하면, 드디어 발견.

별 것 없었지만, 별 것인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회사홍보용으로 쓰는 계정이라 그는 어느 계정에 들어가 '좋아요' 나 '댓글'을 남기지 않았다.

딱 한 계정.

그 계정에는 그가 눌러놓은 '좋아요'와 그가 혼자 남겨놓은 '댓글'이 있었다.

그 계정 주인인 듯한 여자의 사진, 그리고 그 밑에 글.


이제 시작된 진짜 우리 이야기

함께한 그리고 함께할 순간의 기록



연애다.

이건. 연애하는 사람의 사진과 글이다.

그리고, 찾았다.

동글이 친구 엄마가 그를 본 것 같다는 대부도 어느 카페의 입구에서 찍은 사진.

5월 6일, 7일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한 오늘

서로가 큰 기쁨이 되어주길.




아..

아빠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는 사랑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우리집 동글이를 매정하게 집으로 올려 보내놓고

그는.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한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9개의 게시물이 모두 데이트 사진이었다.

그의 얼굴은 없었고, 여자의 얼굴은 있었다.

그의 얼굴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촉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니, 나는 지금부터 이 여자를 2번 상간녀라 칭하겠다.

(실제로 이 여자는 2번 상간녀가 되었다.)


그 데이트 장소 중에는 우리 가족의 추억의 장소도 있었다.

포천.

산정호수.

허브아일랜드.

한화리조트.



사진찍어주는 네가 좋아

#다리길게#이쁘게#사랑스럽게



여길 또 갔구나..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나와의 데이트 때는 전 여친과 가봤는데 좋았던 곳에 데려가기도 했고,

1번 상간녀와의 데이트 때는 나와 가봤는데 좋았던 곳에 가기도 했었고,

2번 상간녀와는 우리 가족과 가봤는데 좋았던 곳에 갔구나..

우리 동글이가 뛰어다니던 그 산정호수를 2번 상간녀와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동글이 사진을 #다리길게 #이쁘게 #사랑스럽게 찍어주던 그 허브아일랜드에서 2번 상간녀의 사진을 찍어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도 안 찬다.

이게 진실이라면 정말 가관이다.


집을 나간 3월부터 5월까지 두 번의 주말을 제외하고 약 대여섯 번의 주말동안 그는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통화를 못한다, 귀에 염증이 생겼다, 회사에 바쁜 일이 생겼다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동글이를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진실이라면, 그는 아프지 않았다. 무려 '연애질'을 하시느라 제 자식 볼 시간을 내지 않았던 것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당장 몰아붙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없지 해보지 않았는가.

확실한 증거가 아닌 것은, 그가 나를 '미친 여자'취급할 여지만 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2번 상간녀가 누군지 모른다.

더 기다리자.

분명 그는 또! 흘리고 다닐 것이다. 수많은 증거들을.


그날 나는 그에게 이러한 톡을 보냈다.

진심이었다.


"아픈 건 어때? 나는 당신 믿을게.."


그에게 답이 왔다.


"응? 무슨 말이야 뜬금없이"


그래, 당신.

뜬금없는 내 톡에 아주 뜨끔 했겠구나.


그렇게 칼답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칼답을 한 걸 보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2번 상간녀의 충격적인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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