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가 끝나가는 이맘때쯤 5학년 실과 시간에는 자신의 용돈을 관리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작년에는 아이들의 용돈 금액을 조사해 글을 썼다. 당시 아이들이 받는 금액은 일주일에 3,000원에서 10,000원 정도이고, 한 달씩 받는 친구들은 5,000원에서 30,000원까지 다양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부모님께 필요할 때마다 타서 쓰는 건 동일했다.
나는 올해도 같은 조사를 해봤다. 그랬더니 작년 하고는 또 다른 결과가 나와 흥미로웠다. 먼저 올해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학용품 같은 것은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전부 준비해 주시고 간식도 집에 다 있단다.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하면 그때마다 돈을 타니 평소에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어떻게 하루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말이 안 된다고 내가 되물으니 아이들은 진짜라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용돈의 개념을 반대로 뒤집어 무엇에 필요해 용돈을 받아 지출하는지를 물었다. 과연 우리 반 아이들은 어디에 돈을 쓸까?
아이들은 만화방, 인형 뽑기, 보드게임카페, 아이돌 팬 활동, 피규어 구입, 편의점 간식, 학용품, 게임 머니 충전, 독서, 반려동물 물품, 친구와 가족의 생일선물, 커피, 저축, 투자에 용돈을 쓴다고 답했다. 역시 고학년이다 보니 친구들과 노는데 가장 지출이 컸다. 개인적으로 자기의 취미를 즐기는 데 용돈을 소비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으며 가족을 챙기는 데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이 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게임 머니 충전과 커피 그리고 투자였다.
라떼는 게임에 현금 결제를 하면 집안이 폭삭 망하는 줄 알던 시대라 게임 머니 지출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선했다. 오히려 부모님께서 게임 머니를 충전해 준다고 하니 새삼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도 이제는 자연스레 커피를 마신다고 답했다. 몇 년 전 어른스러웠던 우리 반 여학생 한 명이 커피를 마신다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요즘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아이가 늘었다. 마지막으로 감탄을 자아낸 대답은 투자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용돈을 적금한다고 하고, 다른 아이는 주식을 산다고 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터놓고 실제적인 경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수많은 매체에 노출이 되면서 모방 소비나 충동 소비가 이루어지기 쉽다. 따라서 아이들이 주어진 용돈을 계획적이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소비,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이는 훗날 아이의 자존감과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해 교실에서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 2009년 카이스트에 300억 상당의 땅을 기부한 김병호 회장은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다. 그러나 이렇게 모은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커서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적 소비를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