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유행했던 외국 영화 중에 007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 영화는 첩보원이 상대 진영의 비밀 정보를 캐내는 첩보 영화였다.
이러한 첩보물에 빗대어 회자되어 왔던 광경이 있었으니 과거 대학입시지원서 제출 마감일 모습이었다. 1980년대 TV 뉴스를 보면 대입지원서 제출 마감날의 학교 학과별 경쟁률과 지원서 접수창구의 매우 혼잡한 모습을 시청할 수 있었다. 특히 무전기를 들고 서로 무언가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은 007 시리즈를 방불케 하였다.
대입 학력고사는 340점 만점(체력장 20점 포함)이었다. 1987년 입시까지는 선시험 후지원 제도였으므로 수험생은 본인의 성적표를 받고 대학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마감날 수험생간 눈치작전이 심한 대학교 학과들이 발생하였다.
특히 전년도에 경쟁률이 높았던 서울대 법대 등 명문대학교 학과 중에서 수험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느라 거의 지원을 하지 않는 일부 학과들이 있었다. 결국 미달 사태가 발생한 학과가 생겼고 점수가 매우 낮은 수험생이 배짱 지원했다가 운 좋게 합격하기도 하였다.
나는 접수 마지막날 오후 2시쯤에 접수를 하였다. 다행히 마지막날 종료시간에 임박해서 접수를 하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심하게 눈치작전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대입지원서 제출 마감날 H대학교 A교수 연구실에 있었다. A교수는 H대학교 교수인 아버지의 동료 교수였다. A교수가 아버지보다 몇 살 많은데도 아버지가 편하게 말을 놓는 것을 보니 평소에 꽤 친한 사이 같아 보였다.
"얘가 이 성적 가지고 어디로 지원해야 될지 모르겠어"
아버지는 푸념 섞인 말투로 A교수에게 말했다. 내 모의고사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보더니 지원할 학과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교는 성적이 안될 것 같고 분교로 지원해야 할 거 같아. 너 어느 학과 가고 싶어?"
"산업공학과"
나는 아버지의 질문에 말꼬리를 흐리듯이 대답했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본교를 놔두고 멀리 경기도에 있는 분교로 지원한다는 것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산업공학과가 뭘 공부하는 학과인지 몰랐다. 고3 담임선생님이 입시 상담 중에 대학입시 배치표에 있는 산업공학과를 보더니 앞으로 유망한 학과인 것 같다고 말했던 것만 기억났다. 그래서 산업공학과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당당하게 여러 학과들을 살펴보고 골라 지원할 성적이 되지 못했던 나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산업공학과? 뭐 하는 학과인지는 몰라도 좋은 학과인 것 같긴 해'
공학 분야는 내가 어렸을 때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재미있는 과학 현상들을 보고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떤 때는 TV를 보거나 백과사전을 읽다가 우주 사진을 보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고 어떤 때는 집에 있는 화단 속 예쁜 꽃들을 보고 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 미래의 진로를 생각하다 보니 공학 분야가 취업이 잘 되고 사회의 수요가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공학 분야의 학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까짓것 한번 지원해 봐"
아버지는 A교수와 대화를 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나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A교수에게 취업을 염두에 두면 공대 쪽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산업공학과를 1지망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A교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와 A교수의 의견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딱히 다른 좋은 대안이 없어서 그대로 하기로 했다.
당시 대학입시는 요즘보다 입시 프로세스가 많이 단순했다. 전기, 후기, 전문대 입시가 있었는데 전기이든 후기이든 전문대이든 대학교에 지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쳤다. 입시마다 한 군데 대학교만 지원할 수 있어서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했다. 보통 전기 입시에서 불합격하면 후가 입시를 보던가 아니면 재수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대입지원서에 1지망학과를 산업공학과로 2지망학과를 생화학과로 적었다. 그리고 오후 2시 가까이 되어 분교 접수창구에 가서 접수를 했다. 이렇게 나의 대학입학지원서 제출날의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