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돌듯이 하루하루의 일정이 타이트했던고등학생 때와 달리 대학생 때는시간적으로자유로웠다.시간이자유로운 만큼대학교 학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계획하고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
모든 계획과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해야 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도 받아들여야 했다.점수를 후하게 주는 교수님이 있는 반면 점수를짜게 주는 교수님도 있었다.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노력이 가장 중요했지만 어떤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하냐도 중요했다.
1980년대 말에는 수강한 과목들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최종 성적표가 학과사무실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게시된 성적을 확인한 학우들은 받은 점수에 따라 기뻐하기도 한숨을 쉬기도 했다. 성적을 확인한 학우들 중 점수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학우들은 이의제기 기간 내에 담당교수님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성적확인 기간을 놓쳐 점수확인을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교양과목이나타학과과목을 수강한 경우가 특히 그랬다.이럴 경우에 성적을 알려면 담당학과에 문의해야 했다.이렇게 학과사무실에 게시된 과목들의 성적을 확인하여 메모해 두었다가 전자계산기로 평점을 계산해 보기도 했다. 물론 점수확인을 못한 과목은 제외하고 말이다. 성적표는 성적확인 기간이 끝난 후 보름 이내에 우편으로 집에 배달되었다. 성적표를 개봉할 때면 평점이 얼마나 될지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평점이 얼마야? 3.0 넘어?"
평점이 3.0 이상이면 식구들에게 성적을 말했지만 3.0 미만이면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고만 말했다. 1, 2학년 때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아버지가 내 성적표를 보고는 대학교 성적은 평생 따라다니니까 평점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점 3.0은 B학점을 의미하며 학우들에게 있어서 취업이나 진학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었다. 나에게도마찬가지였다.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보면 대체로 지원자격에 졸업평점이 3.0 이상이어야 지원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따라서 다수의 학우들은 어떻게 해서든 졸업평점이 3.0을 넘기도록 애썼다.
3학년이 되면 전공과목 교수님들이 대체로 성적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학과에서 학우들의 취업이나 진학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3학년이 되어서 학우들이 받은 성적들을 보니 대체로 그랬다. 군에 다녀온 후 3, 4학년이 되었을 때 수강했던 전공과목들은 절대평가인 과목이 많았다. 교수님들이 후하게 준 점수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점 3.0을 넘기기가 어렵지 않았다.
평점이 낮을 경우에 평점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졸업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공과목 수강을 줄이고 교양과목 수강을 늘리는 방법도 있었다. 교양과목은 공부하기가 비교적 수월하고 난이도가 평이했다. 예를 들면 '결혼과 가정', '현대사회와 경영'과 같은 과목은 성실하게 출석하고 리포트와 기말시험을 망치지 않고 어느 정도답안을 작성하면 대개 B이상으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집에서 통학하지 않고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통학시간이 많이 줄어드니 도서관에서 오래 있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우리 학과 학우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수업내용이나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은 평점을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